모텔 없는 북한, 그래도 커플은 사랑을 나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8.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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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내 1호 ‘평양 순회특파원’ 진천규 작가가 전한 북한의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읽은 책, 일명 ‘문프셀러’가 서점가를 휩쓸었다. 청와대는 8월3일 문 대통령이 여름휴가 기간에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등 3종의 책을 읽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8월5일까지 사흘 동안 이들 책은 교보문고에서 그 전 일주일에 비해 20배나 많이 팔렸다.

 

“굉장한 영광이지만 제가 썼다고 유명해진 건 아니라고 봅니다.” 《평양의 시간은…》을 쓴 진천규 작가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대통령의 독서 목록이 공개된 건 시사저널이 진 작가를 만나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8월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14길21 민재빌딩 끌레마 출판사에서 진천규 작가 인터뷰. ⓒ 시사저널 최준필

 

 

국내 1호 ‘평양 순회특파원’ 

 

진 작가는 스스로를 ‘평양 순회특파원’이라고 소개했다. 평양에 상주하진 않지만 비정기적으로 방북취재를 해왔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 창간 기자 출신의 그는 2001년 미국 영주권을 얻었다. 덕분에 2010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제재조치 이후에도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북한에 갈 수 있었다. 

 

진 작가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7월 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북한을 취재했다. 그 내용을 토대로 7월30일 포토 에세이 《평양의 시간은…》을 펴냈다. ‘에세이’인 만큼 작가의 주관적인 문구도 들어있다. ‘북한 주민들은 굶주림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활력이 넘치는 모습’ ‘​려멍거리 아파트 주민들은 걱정이나 불안 없이 평화롭게 생활하고 있다’​ 등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그렇게 좋으면 월북해라”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얘기를 꺼내자 진 작가의 목소리가 다소 거칠어졌다. 

 

“저는 40여 일 동안 북한을 돌아봤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모습을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보여줬다고 확신합니다. 기자는 그래야하기 때문이죠.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얘기합니다. 40일? 4일은커녕 단 4시간, 4분조차 본 사람이 없습니다.”

 

 

“북에 대한 국내 인식, 과거에 머물러 있어”

 

그는 “북한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옥수수죽을 먹고, ‘꽃제비’들이 구걸하는 장면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진 작가는 “종편 등에 나오는 탈북자나 소위 북한 전문가들은 몇 십 년 전 상황을 마치 지금도 그렇다는 식으로 얘기한다”며 “한 달 전에 갔다 온 북한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자면?

 

“아리랑폰(북한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퇴근 뒤엔 대동강 맥주를 마신다. 출근 시간에는 지하철이든 버스든 만원이다. 서울의 출근길 풍경과 똑같다. 바쁠 땐 택시도 탄다. 지금 같은 더위엔 문수 물놀이장으로 피서를 간다.”

 

나이트클럽이나 모텔도 있나?

 

“그건 없다. 젊은 사람들은 보통 호프집에서 맥주잔을 부딪치거나 모란봉 공원에서 데이트를 한다. 커플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땐 지인들이 자신의 집을 비워준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생각하는 게 비슷하다.”

 

 

진천규 작가가 저서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모텔은 없지만, 지인이 집 비워줘”

 

인터뷰 내내 진 작가는 수차례 “북한이나 남한이나 별다를 게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책 제목을《평양의 시간은…》처럼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 작가는 “알게 모르게 지난 10여 년간 남북은 여러 모로 많이 닮아갔다”고 했다. 올 4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표준시를 한국과 맞춘 점도 관련 있다고 한다.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풍경은 어떻게 달라졌나?

 

“‘미제타파’처럼 반미를 주장하는 선전물이 모두 사라졌다. 대신 ‘과학교육 총매진하자’ ‘사회주의 경제강국 세우자’ 등 건설적인 내용의 선전물이 들어섰다. 문재인 대통령과 남한에 대해서도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이 미남이다’ ‘민족통일이 빨리 와야 한다’ 등의 얘기를 들었다.” 

 

혹시 북한 당국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줬던 건 아닐까. 이에 진 작가는 “적어도 나는 일부라도 보고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평양과 달리 지방 사람들은 헐벗고 배고플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평양뿐만 아니라 남포와 원산의 시골도 가 봤습니다. 평양하고 지방이 다른 건 맞아요. 그게 문제가 됩니까? 서울과 강원도 홍천도 당연히 다르지 않나요? 일단 주민들이 굶주린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주민 250명 정도와 대화도 해보고 하는 얘기에요.”

 


“반통일 세력이 북한 실상 왜곡해”

 

진 작가는 평양을 취재하는 도중 안내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조선(북한)에선 남조선 기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나쁩니다. 허술한 모습만 찍어 낡은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전체가 그런 것처럼 왜곡 보도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도해주세요.” 

 

이 말을 전하며 진 작가는 “반통일 세력이 북한의 실상을 왜곡해 전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예로 국내 한 유력 일간지의 기사를 들었다. 이 매체는 마식령 스키장에 관해 ‘대북 소식통’을 인용, “사고로 여러 번 영업이 중지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대한스키협회 관계자’를 빌려 “국제 기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낙후 시설”이라고 썼다. 올 1월18일자 보도다.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15일, 진 작가는 마식령 스키장을 직접 취재했다. 그의 말은 위 언론의 보도와 전혀 달랐다. “시설은 상당히 좋았다. 국내 전문가도 국제경기 개최에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 기사는 팩트 없이 익명의 소식통에 의존한 참사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분위기가 무거워질 때쯤 음식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평양냉면의 맛은 이미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진 작가는 대신 명태식해를 가장 인상 깊은 북한 음식으로 꼽았다. 이는 꾸덕하게 말린 명태에 엿기름과 고춧가루, 마늘 등을 넣어 삭힌 것이다. 진 작가는 “자연의 온도로 말린 방법의 맛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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