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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치인과 쇼맨십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장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6(Thu) 14:00:00 | 1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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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지난 양차 세계대전에서 공중전을 이기는 방법은 어떻게든 적기의 뒤에 자리 잡고 기관총을 사격하는 것이었다. 이러던 것이 미사일이 발명된 후 양상이 크게 바뀌었다.  멀리서부터 적기의 후면뿐 아니라 정면에서 미사일을 사격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기가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도 격추시킬 수 있는 ‘가시거리 밖’, 즉 BVR(Beyond Visual Range) 전투도 가능하게 됐다. 미사일을 적기를 향해 날아가게 만드는 방식은 ‘호밍(homing)’이라고 하는데 이는 다시 ‘적외선 호밍’과 ‘레이더 호밍’으로 나뉜다. 예전에 레이더 호밍 방식은 미사일을 발사하는 비행기가 적기에 레이더를 계속 쏘아야 미사일이 적기를 향해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암람(AMRAAM)’ 같은 최신식 미사일은 자체에 레이더가 달려 있어 발사만 하면 미사일이 ‘알아서’ 적기를 향해 날아간다. 그런데 이 미사일은 계획단계에서 1991년 실전 배치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 중 하나는 전투기 기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레이더를 직경 17.7cm의 미사일 탄두에 줄여 넣는 작업이 ‘지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 : 필자가 한 대기업에 다닐 때였다. 당시 가장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최고경영자에게 중요한 사안을 단 한 페이지로 요약해 보고하는 것이었다. 복잡다단한 사안을 ‘정수’만을 골라 보고하는 것은 레이더를 미사일 탄두에 ‘꾸겨 넣는 것’과 같아 며칠을 고민한 적도 있었다. 최고경영자는 시간이 없고, 일부 전문분야는 알 수 없으니 보고서 내용이 어렵거나 길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 과정에서 ‘윗분’이 정말 파악하고 이해해야 할 상당수 정보는 빼놓을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내려진 경영 판단은 가끔은 ‘잘못’된 것이었다. 

 

#3 : 1980년 말 49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레이건이 당시 현직 대통령인 카터를 크게 이겼다. 이 선거 결과는 극심한 인플레와 불황, 이란의 미 대사관 점거 등 카터가 불리한 점도 많았지만 할리우드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의 ‘쇼맨십’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배우가 대통령 후보를 ‘연기’하는 것처럼 목소리, 표정 등 TV 토론에서 ‘흠잡기 힘든 모습’을 보인 반면 카터는 가느다란 목소리에 수비에 급급한 아마추어의 이미지였다. 레이건은 임기 내내 ‘이란-콘트라 스캔들’ 등 정치적인 궁지에 몰릴 때마다 특유의 쇼맨십으로 직접 국민들에게 호소하며 이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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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인들은 쇼맨십이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경제, 외교, 사회 현상은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데, 인터넷 등의 발달로 정치체제는 갈수록 직접민주주의를 향해 가고 있다. 국민들은 정치인들로부터 매번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간단명료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최저임금 인상이 어떻게 일자리를 없앨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면 가장 쉬운 경제학 이론이라도 가져다 써야 하나 이를 쉽게 이해하거나, 이 ‘지루한’ 이야기를 경청할 이들은 적을 것이다.

 

그래서 갈수록 정치인들은 보다 직관적인 쇼맨십을 택하게 된다. 야당은 대통령을 ‘쇼통’이라고 부를 정도로 현 정부도 이 점을 신경 쓰는 모습이다. 얼마 전 퇴근 후 호프 모임에 대통령이 깜짝 방문한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다음 날 한 종편은 이 방문이 사실은 모 행정관이 ‘연출’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서울시장도 지난달 하순부터 이 폭염에 옥탑방 생활을 ‘체험’ 중이다. 야당은 물론 인터넷상에서도 이것도 ‘쇼’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래도 다 좋다. 그런데 콘텐츠, 즉 전문성과 진정성보다 컨테이너, 즉 포장과 연기가 더 중요시되는 시대 같아 뒷맛이 쓰다. 아무리 컨테이너가 좋아도 콘텐츠가 부실하면 사상누각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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