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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특집①] 그들의 광복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끝나지 않은 소송…국가는 뿌리치고, 침묵하고, 방해했다

조유빈 기자 ㅣ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5(Wed) 08:00:00 | 1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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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은 지난했다. 길게는 30년 동안 법정 투쟁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이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에 대해 ‘사적(私的) 소송’이라며 개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일본 전범기업은 책임을 회피했다.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에 모두 진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마지막 희망을 쥐고 우리나라 사법부의 문을 두드렸다. 승소 판결이 나왔지만 배상은 받지 못했다. 사건은 몇 년째 대법원에 묶였다.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던 고령의 피해자들이 한이 맺힌 채 또 세상을 떠났다. 최근에는 소송이 계류된 원인이 박근혜 정부 당시 사법부와 행정부의 ‘재판 거래’라는 의혹까지 드러났다. 대일관계 악화를 우려한 정부의 눈치를 보던 사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더 옥좼다. 사적인 일이라며 발을 뺐던 정부는 사법부의 뒤에서 오히려 피해자들의 소송을 방해하고 있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부터 ‘국가총동원법’을 근거로 한반도의 인력을 수탈하기 시작했다. 주요 군수사업에 투입할 인력들을 강제로 동원한 것이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그 대상이 됐다. 급기야는 평균 14세의 어린 미성년자들까지 희생양으로 삼았다. 현재까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국내에서 제기한 소송은 모두 15건이다. 그러나 마무리된 소송은 단 한 건도 없다. 이 중 3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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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소송으로 ‘재판거래’ 의혹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 주식회사(구 신일본제철)를 상대로 한 대법원 ‘2013다61381사건’이 그중 하나다. 원고인 고(故) 여운택씨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공고에 속아 당시 일본제철에 들어갔다. 그러나 기술과는 관련 없는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식사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고, 임금을 받으면 낭비할 우려가 있다며 임금도 지급받지 못했다. 경찰은 징용된 한국인들이 도망쳐도 잡을 수 있다고 협박했고, 기숙사는 감시인을 둬 도망치려는 이들을 구타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한 이후에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던 여씨는 1997년 일본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1년 패소했다. 이듬해 항소도 기각됐다. 

 

여씨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피해자 3명과 함께 2005년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을 속여 일본으로 동원한 후 강제노동을 시키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제철의 후신인 신일본제철이 이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신일본제철은 “이미 일본에서 동일한 내용의 소송이 패소 확정됐고, 1965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인해 모든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여씨의 위자료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08년 여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법원도 여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지난 2012년이 돼서야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파기환송했고, 서울고법은 2013년 7월 대법원 판단을 인용해 신일본제철이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신일본제철은 2013년 상고했다. 결국 여씨는 대법원 판결을 보지 못하고 그해 사망했다. 2014년 법리검토를 개시했다는 대법원은 지금까지도 판결을 선고하지 않았다.

 

 

피해자 소송 고의로 지연시킨 미쓰비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미쓰비시)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도 마찬가지로 계류돼 있다. 고 박창환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2000년 제기한 소송에 대해,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청구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대법원은 2016년 5월 원심을 깨고 부산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부산고법은 2013년 7월 피해자 유족에게 8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미쓰비시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소송은 이제 5년째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17년을 넘긴 긴 재판 도중 피해자 4명이 세상을 떠났다.

 

여성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도 여전히 대법원에 묶여 있다. 전시 노동력 조달이 목적이었던 일본은 일본어 교육을 강요받았던 소학교(초등학교) 6학년 재학생과 갓 졸업한 어린 소녀들을 근로정신대로 동원했다. 학교 교장과 담임은 “일본에 가면 여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급료를 충분히 받아 집안 살림을 도울 수 있다”고 회유했고, 일본에 가지 않으면 가족들을 처벌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동원된 어린 소녀들은 감금 상태의 환경에서 기숙사와 공장을 오가며 극심한 노동에 시달렸다. 제대로 식사조차 할 수 없었고, 지진에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었다.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고, 고향에 돌아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일본의 패전 이후 간신히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일본에 갔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위안부’라는 굴레에 갇혀 살아야만 했다. 

 

뒤늦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투쟁에 나서는 것도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피해자들은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 청구취지문 첫 문장으로 ‘배상’이 아닌 ‘사죄’를 요구했다. 그러나 사과조차 받을 수 없었고, 결국 패소했다. 2009년 일본 정부는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금으로 99엔(1300원)을 지급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두드린 문이 우리나라 사법부였다. 2012년 양금덕씨 등 5명의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광주지법은 총 6억8000만원의 위자료 배상 판결을 내렸다. 미쓰비시는 항소했다. 광주고법이 2015년 6월 5억6208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미쓰비시는 또다시 판결에 불복했다. 미쓰비시가 상고하면서, 소송의 진행은 또 대법원에서 멈췄다. 

 


 

외교부 “청구권 인정하면 외교적 문제 발생”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미쓰비시를 상대로 총 3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 모든 소송이 지난하게 이어진 데는 미쓰비시의 ‘고의 지연’이 있었다. 미쓰비시 측은 본질적으로 소송과 상관없는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재판을 지연시켰다. 소장 번역문의 페이지 순서가 바뀌어 있다거나, ‘주차장이 협소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는 문구가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피해자들은 미쓰비시의 억지 주장에 허송세월을 해야 했다.

 

그러나 소송을 방해한 것은 미쓰비시만이 아니었다. 외교부는 2016년 11월, ‘외국의 경우 국가 간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우리나라에서 개인 청구권을 인정할 경우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법원행정처장에게 보냈다. 외교부는 “일본 공사가 외교부를 방문해 이 판결이 확정되지 않도록 강력히 요구했다”는 비공식 입장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하고, “손해배상을 할 경우 한국은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밝힌 의견서를 법률대리인 김앤장 로펌을 통해 대법원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재판에 개입한 정황도 밝혀졌다. 

 

이국언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일본 외무성은 미쓰비시 소송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공동대응을 하고 있다”며 “한국 외교부는 소송을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하려고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외교부가 아니라 외무성 한국지부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대법원은 여전히 침묵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그동안 “대법원이 판결을 주저하는 사이 피해자 가운데 적지 않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다”며 “일제 강제동원 피해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와중에 대법원이 사건들을 수년 동안 방치했던 이유가 ‘재판거래’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작성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이라는 문건에는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사건(대법원 2013다61381, 2013다67587)에 대하여 청구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 기대할 것으로 예상’이라는 대목이 담겼다. 박근혜 정부 당시 이병기 비서실장이 주일대사 출신으로, 한·일 관계를 우호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에 강제동원과 관련된 소송을 기각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문건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전범기업 상대 소송이 대법원에 접수되자 법원행정처 간부가 청와대를 찾아가 소송에 대해 논의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8월3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획조정실장으로 있던 2013년 10월 청와대를 방문해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을 면담하고 강제징용 소송의 진행 상황과 향후 방향을 설명한 단서를 확인했다. 이때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소송의 재상고심이 대법원에 접수된 직후였다. 신일철주금 소송은 2013년 8월, 미쓰비시 소송은 같은 해 9월 접수됐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있던 한 현직판사는 “미쓰비시 판결이 한·일 외교관계에 큰 파국을 가져오는 사건이니 다시 한번 검토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번에 재판거래 의혹이 떠오르고 나서야 대법원은 5년간 계류돼 있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올해 안에 심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의 김정희 변호사는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은 역사 청산의 문제고, 일제강점기 당시 피해가 우리 모두의 피해라는 공익적 입장을 대변한다. 피해자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와 국가기관이 그들의 삶을 도외시하고 역사 문제도 외면했다”며 “오히려 피해자들을 패소시키겠다는 재판 전략을 짰다. 삼권분립이 엄연한 나라에서 대법원의 수장이 청와대에 재판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은 것은 헌법 파괴”라고 지적했다. 또 “이번에 심리를 시작한 신일철주금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된 다른 소송과 쟁점이 같고 동원 양상만 다르다. 판결 선고가 나면 다른 사건의 조속한 판결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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