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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이라 쓰고 투자사기라 읽는다

‘150조 보물선’ 돈스코이호 투자사기 사건 전말

유지만 기자 ㅣ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0(Mon) 07:26:06 | 1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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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팟’인 줄 알았다. 약 150조원에 달하는 보물이 바다 아래에 잠겨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이들은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한 사업가의 끈질긴 도전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가 싶었다. ‘150조 보물선’ 돈스코이호에 투자한 이들은 곧 바다 위로 올라올 일확천금을 꿈꿨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신기루였다. 보물의 행방은 온데간데없고 ‘투자사기’란 딱지가 나붙었다. 근성 있는 사업가인 줄 알았던 이는 정체조차 불분명했고, 인양사업을 주도한 업체는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란 사실이 드러났다. 또 대표자와 측근들이 투자자들의 돈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보물을 미끼로 거대한 ‘투자사기’를 벌였다는 의혹에 경찰까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신일그룹이 추진한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이 대규모 투자사기 사건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사저널은 7월 초 돈스코이호 인양 소식이 들린 직후부터 경찰 수사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전 과정을 취재했다. 그 결과, 주요 내부 제보자의 증언과 투자사기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파악했다. 투자자들은 피해자 모임을 결성하고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투자사기 사건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나서는 한편, 신일그룹 관계자들을 연일 소환하며 사기 의혹을 파헤치고 있다. 

 

돈스코이호 인양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전형적인 투자사기 사건, 주가조작 사건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관련 회사들은 인양 발표를 기준으로 주가가 급등해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점은 신일그룹 측이 가상화폐를 앞세워 투자자를 모집했다는 것이다. 현재 마땅한 규제가 없는 가상화폐 시장의 빈틈을 노려 투자자들을 현혹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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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조 보물선 발견’에 주가 요동

 

돈스코이호가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은 7월17일부터다. 이날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를 경북 울릉 앞바다에서 발견했다고 밝히면서 이 배 안에 금화와 금괴 5000상자 등 150조원 규모의 보물이 실려 있다고 주장했다.

 

엄청난 규모의 보물이 실린 보물선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주식시장이었다. 신일그룹 관계사로 지목된 상장사 제일제강의 주가는 1년여 동안 1000~1500원 선에서 횡보하다가 7월3일부터 13일까지 10거래일 새 1840원에서 3960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돈스코이호 발견 직전 신일그룹이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업체였다. 돈스코이호 보도가 대대적으로 쏟아진 7월17일 제일제강은 상한가(30% 상승)를 찍으며 대미를 장식했다. 

 

돈스코이호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의문도 뒤따랐다. 돈스코이호에 정말 보물이 묻혀 있는지, 과거 러시아의 군함이었던 것에서 오는 소유권 문제, 인양에 따른 법적 문제 등이 꼬리를 물었다. 여기에다 발굴을 허가받기 위해서는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에 발굴보증금으로 추정가액 150조원의 10%인 15조원을 내야 하는데, 이만한 현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남았다. 

 

신일그룹의 정체도 모호했다. 신일그룹은 6월1일 자본금 1억원으로 설립된 회사다. 사업 분야는 인양이나 발굴과는 거리가 먼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이었다. 또한 신일그룹 홈페이지에 계열사로 소개된 신일건업산업, 신일바이오로직스, 신일국제거래소, 신일골드코인 등은 법인등록조차 돼 있지 않았다. 돈스코이호에 실려 있다는 보물의 실체를 따지기 전에 신일그룹이라는 조직의 정체에 대한 의문부터 커지기 시작했다. 

 

의문은 싱가포르 신일그룹 회장이라는 유지범씨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더욱 커졌다. 유씨는 그동안 보물선 투자 사업의 핵심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의 본명은 류승진으로 현재 기소중지자 신분이다. 부동산 투자, 재건축조합 관련 사업 등을 벌이는 과정에서 여러 건의 사기 사건에 연루됐고, 7년 전쯤 한국을 떠나 현재 베트남에 머물며 보물선 사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일그룹 법인 등기부등본에 나오는 첫 번째 대표이사인 류상미씨(여·48)는 유 회장과 친남매 사이로 밝혀졌다. 

 

베트남에 있는 유 회장은 이메일로 설립비용 1싱가포르달러짜리인 싱가포르 신일그룹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물론 이 회사의 정체는 페이퍼컴퍼니다. 유 회장이 본명인 류승진을 버리고 ‘유지범’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것도 이 즈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 회장이 꺼내든 카드는 가상화폐였다. 그는 신일그룹 명의로 배에 실린 200톤의 금괴를 꺼내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특히 회사 가상화폐 ‘신일골드코인(SGC)’을 1개당 120~200원에 판매해 인양 시에는 100배(또는 코인 1개당 1만원으로 상장)로 돌려준다고 약속했다.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를 설립하고 5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프리세일(사전판매)을 진행했다. 개당 200원에 공개(ICO)하고 9월30일쯤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할 것이라며 상장 예정가격은 1만원이라고 했다. 상장시키는 순간 50배의 수익을 약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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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방식으로 투자 유치

 

신일그룹은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모으는 데 철저히 다단계 방식을 이용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신일골드코인 운영방침에 따르면, 신일그룹 측은 200만원어치 코인을 구매하면 자문위원 및 센터장, 300만원은 팀장, 500만원은 본부장의 직함을 줬다. 다른 사람을 추천해 코인을 구매하도록 할 경우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한 변호사는 “결국 현금이 아니라 코인을 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실체도 불분명한 코인을 앞세워 투자자들을 현혹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일그룹은 이런 과정을 통해 모은 투자자들을 ‘우수센터’ ‘자문위원’ 등으로 표시한 회원 리스트도 별도로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정식으로 거래소에 상장됐을 때에나 현금화가 가능할 뿐이다. 유 회장을 잘 아는 인사는 “가상화폐 발행에 필요한 채굴기술이나 백서가 전혀 없다. 말만 가상화폐일 뿐, 사실상 쓸모없는 ‘딱지’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추정되는 피해 규모는 약 1000억원에 달한다. 한때 유 회장 측과 일했던 홍건표 전 동아건설 비서실장은 “유씨가 처음에는 ‘가상화폐로 3000억원을 투자받을 것’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지나고 보니 투자 사기 규모를 그만큼 잡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신일그룹 측은 줄곧 돈스코이호에 담긴 보물의 실체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언론의 의혹이 커지자 신일그룹은 7월26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미디어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새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며 등장한 최용석 대표는 “현장 탐사원이 단단한 밧줄로 고정된 여러 개의 상자 묶음을 확인했으며, 지금까지 자체 파악한 자료와 많은 업체가 돈스코이호 발견을 위해 자본을 투입한 점으로 미뤄 생각할 때 재산적 가치가 충분한 무언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또 신일그룹의 실체에 대해서도 “신일그룹은 그간 의혹이 제기됐던 신일광채그룹과 신일유토빌건설, 제이앤유글로벌, 신일골드코인 등과 전혀 다른 법인”이라며 “순수하게 돈스코이호의 탐사와 발견, 인양을 목적으로 설립됐다”고 주장했다. 신일그룹은 “기업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다”는 이유로 같은 날 사명을 ‘신일해양기술주식회사’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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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의혹 증폭되자 경찰 수사 나서

 

각종 의혹이 쏟아지면서 결국 경찰이 나섰다. 과거 돈스코이호 인양에 도전했었던 동아건설 측에서 투자사기가 의심된다며 신일그룹 경영진을 경찰에 고발했고, 경찰은 서울 남부지검으로부터 수사지휘를 받아 본격적으로 수사에 돌입했다. 

 

사정 당국이 나섰음에도 유지범 회장 측은 태연했다. 그는 경찰이 주요 관계자를 출국금지 조치한 7월30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각종 언론보도로 전 세계에서 신일골드코인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며 “8월6~15일 신일골드코인과 관련한 백서를 공개하고 회원에겐 개인 전자지갑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8월16일 현재까지 공개된 백서는 없다. 

 

경찰은 8월1일자로 유 회장을 인터폴에 수배 요청했다. 이어 신일그룹의 새 대표로 등장한 최용석 대표가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모든 일은 유 회장이 주도한 것”이라며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 대표 역시 현재 수사선상에 올라 있으며, 유 회장이 과거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유 회장과 측근들이 가상화폐 투자금 중 일부를 사적으로 유용해 왔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은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하고 투자금의 사용처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신일골드코인 투자자들의 투자금은 법인 계좌가 아닌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대표 유아무개씨의 개인계좌로 들어갔다. 국제거래소 측 관계자는 “대부분은 법인 통장으로 받았지만, 투자금 중 상당부분이 유 대표의 개인계좌로 들어갔다”며 “유지범 회장과 유 대표는 직접적인 인척 관계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은 투자자들을 상대로 구체적인 투자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를 집계하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일확천금을 바라는 이들이 투자금을 쉽게 회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투자자 중 일부는 피해자모임을 결성하고 법적 대응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신일그룹은 여전히 30여 개에 달하는 지역별 센터를 운영하며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다. 센터장은 투자 유치액의 10%를 수수료로 받고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여전히 돈스코이호에 담긴 보물이 진짜일 것으로 믿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그 때문에 진술을 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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