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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로에서] 눈카마스

김재태 편집위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0(Mon) 17:00:00 | 1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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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서울시청 별관으로 가는 길은 분하고 비참했다. 가인쇄된 대학신문을 들고 방에 들어서면 군인 몇 명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서 신문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더욱 괴로웠다. 왜 구구절절한 말로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지부터가 납득되지 않았다. 설명이 끝나면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다시 건네줬고, 그들이 들어낸 부분은 끝내 독자들에게 전해질 수 없었다. 그렇게 제목이 지워지고, 기사 전체가 비워져 신문은 그야말로 누더기가 된 채로 발행됐다. 1980년 초 계엄 시절 신문은 신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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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듣거나 보지 않아도 될 줄 알았던 그 ‘계엄’이란 말이 다시 우리 앞에 등장했다. 어두운 광장을 촛불이 환히 밝히던 그때 한 무리의 군인들이 그 지독한 망령을 서류 속에 되살려냈다. 지난해 3월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기무사령부의 이른바 ‘계엄령 문건’ 내용은 경악스러울 만큼 정교하고 치밀했다. 신군부가 주도했던 1979년의 계엄 속으로 시간을 건너뛰어 되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줬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이라는 69쪽짜리 기무사 문건에는 20대 국회 상황을 감안해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막기 위한 방안까지 들어 있어 그들이 얼마나 간교하게 계엄 상황을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신군부가 저질렀던 악랄한 검열 행위는 문건 속에서 더 진화해 나타났다. 중앙 매체 방송 22개사, 신문 26개사, 통신 8개사는 계엄사 보도검열단에서, 지역 매체 방송 32개, 신문 14개는 지구 지역 계엄사에서 통제하라고 상세하게 명시한 것은 물론이고, 현실에 맞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관련한 대책까지 제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일부 못된 생각을 가진 군인들과 아직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그 윗선이 촛불 정국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들의 집단 이익을 위해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적 상황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재연하려 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두렵고 놀라운 것은 국가안보를 책임진 군이 그 안보를 아무렇지 않게 내팽개치려 했다는 점이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일선 전투부대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다른 곳으로 빼낼 계획을 꾸민 것만으로도 우리 안보에 이미 큰 구멍이 뚫린 셈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일부 시대착오적인 그들 정치군인으로 인해 전체 군의 이미지가 훼손되고, 지금 이 시간에도 사명감 하나로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일반 군인들의 사기조차 적잖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계엄령 문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기무사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바꿨다고 다 해결될 일은 아니다.

 

우리와 똑같이 군사정권의 폭압에 시달렸던 아르헨티나에선 군부독재 시절 발생한 실종자들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1983년 국가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들이 활동을 끝내고 발행한 보고서의 제목이 ‘눈카마스(다시는 안 돼)’다. 군부의 무력을 정치 도구로 전락시킨 계엄이라는 끔찍한 기억이 우리에게 지금 그 ‘눈카마스’를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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