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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도는 靑①] “문제는 김동연·장하성이 아니다”

관료 통제 딜레마 현실화 5년 단임 대통령에겐 ‘청와대 정부’가 현실적 대안

김종일·구민주 기자·김윤주 인턴기자 ㅣ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3(Thu) 11:00:00 | 1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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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점휴업 상태.” 최근 청와대 정책파트에 대한 내부의 자조 섞인 평가다. 청와대 정책실 내부에서조차 “일이 안 돌아간다” “새로운 내용의 보고서는 볼 수가 없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집권 2년 차를 맞아 대선공약을 실천하고 민생·경제 이슈에 집중해야 할 정책실이 대체 왜 ‘개점휴업’ 상태가 됐을까. 

 

이 질문에 대한 유력한 대답이 세 가지 있다. 먼저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충돌하면서 청와대 정책파트가 헛돌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른바 ‘김앤장’ ‘장앤김’ 논란이다. 다음은 청와대와 관료사회의 갈등설이다. 청와대에 끌려가던 관료집단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정부 내 균열이 표면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은 청와대가 관료에 대한 장악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가설은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8월9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 확산됐다. 박 전 의원은 어떤 자리에서 한 청와대 핵심 인물을 만났는데 ‘대통령 말도 안 듣는다’ ‘자료도 안 내놓는다’ ‘조직적 저항에 들어간 것 같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소개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갈등과 대립의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 사이에 정책 수립과 운용에 임하는 관점이 달라 티격태격하는 일은 어느 정부에서나 집권 2년 차에 불거졌었다. 집권 초기만큼의 장악력이 발휘되지 않으면서 청와대 조직 개편과 개각이라는 카드도 늘 이때쯤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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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공’과 ‘어공’의 대립 역사

 

대표적 예가 노무현 정부 2년 차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관료들의 입김이 세졌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다. 이 부총리로 대표되는 ‘늘공’과 당시 386그룹(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으로 상징되던 ‘어공’은 경제에 대한 인식 차이가 컸다. 이들은 아파트 원가 공개 등 민감한 경제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이 부총리가 “386그룹은 경제 하는 법을 모른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결국 이 부총리는 취임 1년 만에 옷을 벗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문재인 정부는 중간선거 성격이 짙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최근 민생·경제 정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관료들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할 만큼 흔들리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청와대 정책파트를 ‘개점휴업’ 상태에 빠뜨린 걸까.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최근 청와대는 부처의 비협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두고 내부 회의를 가졌다.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 여겨지는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이 회의 때 관련 사안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청와대에서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청와대 내부에서는 “개각 말고는 관료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정책에 있어 관료에 대한 의존성이다. 청와대는 정책 프로세스에서 절대적으로 관료집단에 기대고 있다. 관료집단을 신뢰하든 그렇지 않든 지금의 난관을 돌파할 정책은 기획재정부로 상징되는 부처에서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어공’들은 뛰어난 정무적 감각으로 선거에 이겨 정권을 잡는 데 압도적 실력을 갖췄지만, 집권 후 민생을 해결할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는 ‘늘공’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교수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대선캠프가 있지만, 규모나 가용자원 등에서 관료집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청와대라는 공적 영역이 사적 영역인 대선캠프에 의존하는 것은 민주적 원리에도 맞지 않다. 

 

대통령이 반드시 관료를 통제하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대로 집권 2년 차 즈음부터 “정권이 관료들에게 포섭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 가능하다. 문제는 5년 단임제라는 제도적 성격상 정권의 성공이 꼭 관료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공’들은 임기 동안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바로 일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늘공’은 그렇지 않다. 고한석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누가 정권을 잡든, 그 정권이 성과를 내든 말든 이들에겐 별 상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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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의 고민 ‘관료 통제’

 

그렇기에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에게 관료조직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복지부동’,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관료 물갈이’, 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관피아’ 등은 모두 대통령의 관료 통제 문제와 직결된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대통령들은 불리한 조건에 직면하게 됐다. ‘87년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했다. 제한된 시간 내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데 정작 대통령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은 많지 않다. 이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한 신현기 가톨릭대 교수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은 권한과 자원이 현저히 감소한 반면 자신을 둘러싼 의회, 대중, 정당, 미디어 등 정치제도와의 관계에서 협상의 불확실성은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무슨 말일까. 과거와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과거 권위주의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강압과 미래의 보상이라는 인센티브를 통해 관료들의 순응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장기 집권했기 때문에 관료들은 정권 교체에 대한 불안감 없이 현재 권력에 충성하면 그 대가로 가까운 장래에 승진과 같은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정치권력의 교체가 현실화되자 현재 권력에 대한 복종과 미래의 보상이라는 교환관계는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었다. 신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료들은 독자적인 권력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합리적 대안이 된다. 권위주의 대통령들이 정치권력의 영속성을 통해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했던 데 반해,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그런 기제가 사라지고, 이를 보완할 다른 제도적 대안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무원의 기회주의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사실 한국 대통령은 매우 어려운 자리라 할 수 있다. 기대치도 높다. 국민들은 국가적 재난이나 경제위기에 대통령이 등장해 얽히고설킨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길 기대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설명처럼 박정희로 상징되는 강력한 리더십 아래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에 성공했던 발전국가의 유산은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더 키웠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시간적 제약 내에 국정과제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조급증을 갖게 됐고, 청와대 비서실로의 강력한 집권화를 추진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로의 권력 쏠림 현상에 대한 대표적 비판이 바로 ‘청와대 정부’다. 정치학자 박상훈 박사는 대통령이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 정부를 운영하는 형태를 ‘청와대 정부’로 규정하고, 퇴행적 국정 행태라고 비판한다. 그는 대통령만 바라보는 정치는 민주정치의 기능을 해낼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체계적인 조직인 정부를 통해 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와대 정부’ 담론은 문 대통령도 겨냥한다. 논리는 이렇다. 청와대 규모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줄였고, 박근혜 대통령은 변화가 없었는데, 문 대통령은 오히려 늘렸다. 청와대 직제, 예산, 인원을 따져보면 청와대가 거대해지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때다. 대선 때 ‘민주당 정부’를 약속한 문 대통령은 청와대가 내각과 당을 이끌고 나가는 ‘청와대 정부’를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잇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여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당 책임 정부, 내각의 역할을 중시하는 책임총리 또는 책임장관은 원리적으로는 옳다”면서도 “실제 국정운영의 현실과는 일치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제한된 임기 안에 국정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다. “관료조직의 저항, 여당의 비협조, 의회관계의 비예측성, 여론의 비일관성 등 대통령이 재임 중 부닥치는 온갖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대통령 주변으로의 집권화는 대통령에게는 어쩌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 부원장도 비슷한 설명을 한다. 그는 “청와대 정부가 문제라면 민주당 정부가 돼야 하는데, 그건 영국과 같은 의원내각제에서 가능한 얘기”라면서 “영국의 경우 총리실을 제외하고도 100여 명의 의원들이 행정부에 들어가 각 부처의 장·차관과 정책보좌관, 기조실장 등 정부의 주요 요직을 장악한다. 이게 바로 정당 정부의 모습이다. 그런데 한국은 대통령제라 정당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불가피한 ‘청와대 정부’ 

 

오히려 고 부원장은 “청와대와 행정부 관료조직 간 정책방향과 이해관계를 일치시켜야 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면서 “지금 청와대 규모로 거대한 관료조직을 장악하기엔 태부족하다. 청와대가 커서 문제가 아니라 작아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뭘까. 신 교수에 따르면, 관료가 강한 저항을 펼칠 때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통제 수단은 ‘정치적 임명’과 ‘청와대 집권화’ 두 가지다. 대통령제를 갖고 있는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정무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5500여 개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130개가 안 된다. 이 정도의 정무직 규모로 행정부의 거대 조직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 대통령은 정치적 임명보다는 청와대 주변으로 권한과 인력을 집중시키는 집권화를 선호한다. 이른바 ‘청와대 정부’다. 이는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백악관을 갖고 있다. 흔히 청와대 비서실에는 490명, 백악관 비서실에는 374명의 인원이 일해 한국의 청와대가 비대하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두 정부의 행정체계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에 가깝다. 

 


 

“미국 백악관과 한국 청와대를 단순 비교하게 되면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된다. 우리가 보는 백악관은 우리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이다. 백악관에는 ‘대통령 집행부(Executive Office of President·EOP)’라는 거대한 정책 집행부서가 존재한다. 집권당의 ‘어공’들이 대거 들어가 있는 EOP는 각 부처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고, 이를 기반으로 확실한 부처 장악력을 발휘하며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추진한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청와대 안보실과 정책실, 국무조정실 그리고 과거 기획예산처를 합친 규모다.” 고 부원장의 설명이다. 올해 8월 기준 백악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EOP엔 1800명이 넘는 인원이 있다. 사실상 백악관에는 2100명이 넘는 인원이 일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행정체계에서 EOP와 유사한 곳은 국무총리실과 대통령 직속 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둘 사이의 차이는 크다. EOP 소속 공무원들은 ‘어공’이다. 정권의 성공과 이해관계가 같다. 반면 한국의 국무조정실은 ‘늘공’이 대부분이다. 고 부원장은 “국무조정실은 전체 정부 부처 중 ‘적당히’ 정신이 가장 잘 먹힐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며 “국무조정실이 놀고 있어도 부처 일은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즉 ‘어공’의 EOP는 백악관을 위해 뛸 유인이 충분하지만, ‘늘공’의 국무조정실은 정권이 아닌 자신이 파견 온 부처를 위해 뛸 유인이 크다는 지적이다. 

 

고 부원장은 대안으로 담대한 주장을 펼친다. 먼저 국무조정실 핵심 직위에 ‘어공’을 대거 임명하거나, 이들을 ‘어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제안은 일종의 ‘공공부문 환류 시스템’ 도입이다. 행정고시 출신 고위공무원단이 승진을 하려면 일정한 리스크를 지고 정당의 정책전문위원으로 들어간다. 정당의 선거 승리를 돕고, 집권 후엔 집권당의 정책을 집행하는 핵심 역할을 부처나 청와대에서 수행하게 하자는 제안이다. ​ 

 

※‘헛도는 청와대’ 특집 연관기사

☞[헛도는 靑②] “지금 청와대론 관료조직 장악 태부족” 

[헛도는 靑③] ‘책임총리·책임장관’? 국정운영 현실과 거리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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