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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야기 그림 - 그림 이야기

김정헌 화가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3(Thu) 08:00:00 | 1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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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그림이란 작가가 생각한 가상의 세계를 물질(안료)로 화면 위에 재생시키는 일이다. 그렇지만 가상의 세계는 일종의 환영(Illusion)이다. 화면  위에 작가가 펼친 이 환영을 관객은 자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결합시켜 또 하나의 환영으로 만들고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림 읽기는 재미있지만 어려운 마술의 세계다. 문학 장르는 언어를 매개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마술의 세계인 그림(시각예술)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기독교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인류의 기원을 이야기하지만, 인류학적으로는 말씀보다는 그림이 먼저 있었다. 언어가 없었던 몇만 년 전에 인류는 동굴(알타미라, 라스코 동굴벽화)에다 자기들의 사냥감인 들소나 사슴들을 그리지 않았는가. 그 동굴벽화들은 그 부족들에게 이야기(동굴 속에 자기들의 먹잇감을 풍족하게 가두어 놓았다는)를 전달하는 주술적 소통의 광장이었다. 인류에게는 ‘이야기 그림-그림 이야기’가 먼저 있었던 셈이다. 또한 기독교의 중세나 고려시대 불교에서는 모든 절대자의 말씀을 그림(도상)으로 읽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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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술은 죽은 자들을 위한 의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죽은 자를 위해 제사 지내듯이 고대 서양세계에서도 죽은 자를 살아 있듯이 모셨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스 드브레는 《이미지의 삶과 죽음》이라는 저서에서 ‘묘소가 박물관이 없던 문명에서 박물관 노릇을 했듯이 우리의 박물관은 더는 분묘를 세우지 않는 문명에서만 볼 수 있는 무덤인 셈이다’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그리스 사람들의 사례는 흥미롭다. 그리스 사람들은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처럼 숨 쉰다는 것이 아니라 본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숨을 거두었다’고 말하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눈길을 거두었다’고 했다.

 

그러니 이 ‘눈길’ 즉 ‘본다는 것’이 사람의 살고 죽음을 의미했으니 여기에 얼마나 많은 이미지(그림)가 탄생했을까. 그 많은 이미지가 다 그림은 아니지만 죽음과 관련된 이미지는 수많은 형상과 색채, 상징과 기호를 탄생시키고 그것은 또한 순환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발화시켰다.

 

다시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림에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독해하는 것을 리터러시(문해력)라고 하는데, 시각예술에서는 이를 비주얼 리터러시(Visual Literlacy)라고 한다. 교육에서 이 리터러시 얘기를 처음 꺼낸 이는 브라질의 파울로 프레이리다. 그는 브라질 민중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글자를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도 시각적으로 읽고 쓸 수 있어야 시각적 문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림을 읽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가? 일단 그림 앞에 서면 어렵고 낯설다. 두렵기까지 하다. 이 그림 앞에서의 공황장애를 어떻게 벗어날까? 

 

먼저 그림과 대화를 할 의지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엔? 자기의 감성을 끄집어내어 작품을 조용하게 응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일종의 감성적 대화다. 자기가 작품이 되고 작품이 관객이 되면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한 ‘미메시스적 감응’이 일어난다. 그런 다음 작가가 환영 뒤에 감추어 놓은 은유를 읽을 수 있으면 아마 최상의 관객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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