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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역술(易術)의 정치학

정두언 국회의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8(Tue) 08:01:00 | 15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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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易術). 사전에서 찾아보면 ‘주역을 바탕으로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기술’로 나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점술을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가 배운 바로는 고대 원시사회에서 지역의 통치자는 제사장을 겸하고 있었다. 역술과 정치가 한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첨단과학시대에 웬 뚱딴지같은 역술 타령인가. 이게 고대의 얘기가 아니라 지금, 이 땅에도 통용되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최순실’이라는 일종의 역술인이 이 나라의 최고 실세였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최순실은 최태민이라는 사이비 종교인의 대를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최태민은 고려 말의 신돈과 러시아 제정 말의 라스푸틴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이 삼인은 신통하게도 권력의 정점에까지 갔지만, 모두가 권력의 종말을 재촉했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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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개인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가른 역술의 조화는 비단 이 한 가지 비극에서만 볼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일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야당의 대표를 지낸 어느 분은 누구의 말을 들어서인지 유독 빨간색 넥타이만을 고집스레 매고 다녔다. 그는 심지어 속옷도 빨간색이 아니냐는 노골적인 질문에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2007년경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쟁이 격렬하게 벌어졌을 때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 중 장안에 이름을 날리던 역술인을 찾아다니는 일이 적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하느냐는 조급증과 위기감 때문이었으리라.

 

정치인이 역술인을 찾듯이 역술인도 정치인을 찾는다. 이런저런 인맥으로, 아니면 우연을 가장한 교묘한 접근으로 인연을 맺어 교류를 한다. 어떤 직업이든 나름 고도의 노하우가 있는 법. 이들은 쉽사리 유력 정치인의 혼을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일종의 책사 노릇을 하며,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민원과 이권에도 관여를 한다. 이들의 행동반경은 정치인뿐 아니라 종종 큰 기업의 경영자에게도 뻗친다. 지체 높으신 회장님들이 이들의 농간에 놀아나다가 패가망신의 경우에까지 이른 스토리도 적지 않다.

 

역술과는 조금 다르지만 영향력은 더 큰 유사업종이 있다. 이른바 풍수지리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와 상관없이 풍수지리에 약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정치인이 그렇다. 그래서 명당자리를 찾아 선친의 묘소를 이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친 묘소도 전남 신안이 아니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것으로 안다. 소망교회의 장로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서울시장을 끝내고 안국포럼 사무실을 차릴 때 장소 문제로 애를 많이 먹었다. 측근 의원과 인사들이 저마다 풍수가를 데려와 사무실 자리를 두고 ‘여기가 좋다, 저기가 좋다’ 갑론을박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 덕분에 대통령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대통령 이후에 벌어진 고난에 대해서는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는지.

 

정치인이 자신의 일신사를 역술인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개인 문제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그 폐해가 많은 사람에게까지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인과 역술인의 위험한 관계는 이 개명 천지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밀접하고 빈번하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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