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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곬’ 문화가 공정위 내부 암 덩이 키웠다

외부에서 공정위를 어떻게 보는지 둔감…이유 있는 ‘사상 최대 위기’

오종탁 기자 ㅣ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4(Fri) 14:00:00 | 15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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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 출신은 연봉 2억5000만원, 비(非)고시 출신은 연봉 1억5000만원’이란 내용 등을 신문 보고 처음 알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비고시 출신 직원은 허탈해했다. 공정위가 고시 출신 여부를 따져 연봉 지침까지 정해 퇴직 간부들을 대기업에 취직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나온 반응이다. 그러면서도 이 직원은 “어차피 대기업 취직은 그들만의 리그(과장급 이상 퇴직자의 전유물)”라며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인데, 조직 분위기가 엉망이니 좀 안타깝긴 하다”고 말했다. 최근 쑥대밭이 된 공정위에는 이 같은 허탈함과 무력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조직 사기는 바닥이다. 내부로부터의 상황 개선 의지가 싹틀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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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대 위기”라는데…쇄신 동력은 미미  

 

김상조 위원장이 연일 국민·정치권 등에 사과하고 쇄신 의지를 다지는 반면, 공정위 내부는 침울할 뿐이다. 앞서 재취업 비리와 관련한 검찰수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한 공정위 고위 당국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퇴직 간부 재취업 알선이) 관행이어서 용인될 수 있는 범주였느냐, 아니면 용인되기엔 너무 많이 나갔느냐는 시각의 문제 아니겠느냐”며 “아직 검찰에서 어떤 부분을 문제 삼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부 분위기가 즐겁지 않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면서 “검찰수사 결과가 발표된 다음 반성할 부분을 반성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문제의식도 해결 방안도 좀처럼 구체화할 수 없는 공정위의 답답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공정위는 일단 8월16일 발표된 검찰수사 결과 앞에 ‘찜찜하게’ 무릎을 꿇었다. 김상조 위원장은 “재취업 과정에서 부적절한 관행, 일부 퇴직자의 일탈 행위 등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잘못된 관행과 비리가 있었음을 통감한다”면서 “공정위 창설 이래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최대 위기”라고 밝혔다. ‘공정위 조직 쇄신방안’과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안’도 공개했다. 사실상 모든 걸 내려놓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각오다. 

 

그런데 어째 김 위원장 혼자 각오를 다지는 모양새다. 상황 타개책에 대한 회의론은 내·외부 모두에서 제기되고 있다. 방법론도 방법론이지만, 근본적으론 ‘폐쇄적인 공정위 조직이 바뀔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첫걸음부터 떼기 힘들게 만든다. 외부(대학교수) 출신인 김 위원장은 검찰수사가 본격화된 지난 6월 이후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해 직원들과 만남·대화를 지속해 왔다. 노력은 통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직원들의 ‘탈(脫)공정위’ 조짐마저 나타났다. 

 

인사혁신처 등에 따르면, 최근 공정위에서 다른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로 전출을 희망한다며 신청서를 제출한 직원은 100여 명이다. 공정위 본부 인원 500여 명의 20%에 달한다. 외부 출신 위원장의 리더십과 달라붙지 못하는 공정위 특유의 조직문화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표면화한 셈이다. 

 

1981년 설립된 공정위에서 보통 위원장(장관급)은 ‘외부 인사’, 부위원장(1급)은 ‘내부 인사’가 맡아왔다. 기획재정부나 대학교수 출신 위원장이 굵직한 정책 방향을 정했고, 조직 내부 논리는 부위원장 혹은 사무처장이 대변했다. 외부 출신 위원장 중에는 공정위 조직과 완연히 섞이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공정위 직원들의 독립성이 타 부처나 사정기관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몇몇 중요 사건 및 대형 사건 외에는 비고시 출신 조사관들이 개별 사건을 각자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위원장은 물론 해당 과장·국장이라 할지라도 조사 중인 사건에 입김을 넣긴 힘들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관들은 자신이 조사해 작성한 사건 심사보고서에 대해 위에서 뭐라고 한다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차후에 직접 법정에 나가 조사 대상 기업들과 다퉈야 하기에 강한 독립성과 책임의식을 갖고 사건을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독립성은 ‘좁은 시야’와 병칭될 수도 있다. 맡은 사건을 벗어난 조직 내·외부의 문제점에 둔감하게 될 위험 말이다. 

 

검찰은 이번에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정재찬 전 위원장과 김학현·신영선 전 부위원장을 구속 기소하고, 노대래·김동수 전 위원장 등 9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1996년 국장급 2명과 2003년 이남기 전 위원장이 기소된 적은 있었지만, 12명이 동시에 기소된 것은 공정위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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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내부 출신 위원장 2명 모두 구속

 

특히 나름대로 공정위 내부 조직 단합이 잘됐던 때가 아이러니하게도 최악의 적폐 사례 시기로 몰렸다. 가장 중대한 혐의를 받아 구속된 3명이 함께 현직(정재찬 위원장, 김학현 부위원장, 신영선 사무처장)으로 활동했던 2014년 1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공정위 분위기는 표면적으로 좋았다. 여기엔 정재찬 전 위원장이 11년 만에 내부 출신 수장으로 발탁됐다는 이유가 적지 않게 작용했다. 정 전 위원장은 임명 전 23년 가까이 공정위에 근무하면서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경제 검찰’ 공정위에서 최고 이론가·실무가였던 그는 말 그대로 터줏대감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조직에 장점이자 독(毒)이 됐다.

 

정 전 위원장은 조직의 업무·목표·사기(士氣)는 잘 챙기는 듯했으나, ‘외부에서 공정위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선 놀랄 만큼 둔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후배인 공정위 직원들도 비슷한 문제에 항상 노출돼 있었다. 사실 일반 국민 대다수는 공정위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정확히 모른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 질서의 구현과 소비자 권익 제고를 주 임무로 하는 합의제 행정기관’ ‘경제 민주화 주무 부처’라고 설명해도 쉽게 와 닿진 않는다. 공정위 직원들은 몰라도 위원장은 날카로운 현실 감각으로 조직 내부를 돌아보고 국민·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정 전 위원장은 2014년 11월 내정된 때부터 외부 이해에 취약함을 드러냈다.

 

2014년 12월 그의 인사청문회에 즈음해 외부에서 집중적으로 쏟아진 질문은 ‘공정위가 박근혜 대통령 공약 사항인 경제민주화를 계속 추진할지 여부’였다. 경제민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전임 노대래 위원장이 갑작스레 물러나면서 나오게 된 의문이다.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정 전 위원장은 “이상했다” “짜증 났다”라고만 당시를 회상했다. 취임한 후 2년여 만인 2016년 11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정 전 위원장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후보자가 아니라 해명자 비슷하게 돼 버려 이상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 전 위원장은 “처음에는(공정위원장으로 내정됐을 땐)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 덕을 좀 봤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이 나고 나니까 각 분야 전문가를 찾게 되고, 공정위에서 이십 몇 년간 있었던 이 사람(본인)이 제일 전문가라고 판단해서 내정한 것으로 봤다”며 “‘아, 세월호 덕을 보는 케이스도 있구나’ 했는데 느닷없이 ‘경제 활성화의 꼭두각시냐’는 식으로 말하니까 정말 짜증 나더라”고 했다. 

 

앞서 ‘그쪽(세월호 사건)을 언급해선 안 되겠지만’이라고 전제했으나, 장관급 공무원의 입에서 나온 말치곤 생경했다. 이 밖에 정 전 위원장 발언은 대부분 공정위 합의 시스템의 공정성, 이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자신의 노력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끊임없이 제기된 대기업 봐주기, 청와대 개입 의혹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내부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이라며 그는 일축했다.

 


내부 변화 수반될 때 ‘김상조號’ 개혁 성공

 

자부심 가득했던 정 전 위원장은 2년여가 지난 지금 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퇴직 간부의 불법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저 조직의 사기를 위해서 했던 일이 범죄 행위로 판단받는 데 대해 그는 또다시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기분 나빠하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공정위는 청렴하고 고군분투하는 직원이 많은 것과 관계없이 ‘비리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공교롭게도 정 전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공정위 내부 출신 수장이었던 이남기 전 위원장 역시 2003년 개인 비리로 구속됐다. 자신이 다니던 사찰에 10억원을 기부하도록 SK그룹 측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였다.   

 

이번에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을 보면 공정위는 지금까지 16개 기업을 압박해 직원들을 불법 취업시켰다. 기아자동차·롯데쇼핑·롯데제과·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카드·SK하이닉스·신세계페이먼츠·CJ텔레닉스·LG경영개발원·GS리테일·KT·포스코건설·하이트진로·현대건설·현대백화점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다. 취업 특혜를 받은 퇴직 간부는 총 17명으로, 공정위 전 직원(600여 명)의 3%가량이다. 이들이 받은 평균 연봉은 1억5000만원이었고, 13명에게는 업무활동비(법인카드 포함) 등 명목으로 매달 수백만원 상당의 돈이 추가로 지급됐다.

 

일부 공정위 직원들은 극소수 ‘윗선’에서 부적절한 일을 저질렀는데 왜 전체가 매도되고 피해를 봐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렇지만 외부 시각에 둔감하고 불의에 무력한 내부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데 공정위 전 직원이 관여돼 있음을 부인하긴 힘들다. 맡은 사건에만 매달리는 사이 조직 내부 논리와 비리의 구분은 모호해졌다. ‘역사상 최악의 상황’인 지금 환골탈태 수준의 고강도 쇄신안 못지않게 직원 개개인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1996년 국장 5명 중 2명이 잇따라 검찰에 구속되자 전 직원이 신뢰 회복을 외치며 사표를 위원장에게 맡긴 바 있다. 1급부터 7급까지 전 직원 288명이 사표를 내며 “금품이나 향응을 받는 등 공직자로서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경우 즉시 사표 수리를 감수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국민은 그때와 같은 결의를 공정위에서 다시 한번 보고 싶어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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