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로 큰 사조그룹, 왜 ‘양돈장 수탈’ 논란에 휩싸였나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4 14:34
  • 호수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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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앞세워 홍성 양돈장 인수 강행…한돈산업 “대기업 특유의 약탈적인 성장 방식 멈춰야”

 

‘참치’로 큰 사조그룹이 ‘돼지’로 논란에 휩싸였다. 사조그룹이 축산 사업부문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계열사의 자본력과 지위를 이용, 지방의 양돈기업을 고의적인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뜨리는 등의 방법으로 수탈했다는 주장이 나와서다. 이 과정에서 사조그룹이 용역 200여 명을 동원해 농민들의 농가 출입을 막는 등의 횡포를 부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관련 진정을 접수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예고한 가운데, 축산농가 사이에선 사조그룹이 비도덕적인 성장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사조그룹이 ‘반(反)상생’ 이슈로 여론의 포화를 맞은 게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조그룹이 충남 홍성의 향토기업인 한돈산업과 양돈장 인수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매각 거부하자…이후 시작된 ‘사조의 공격’

 

충청남도 홍성군은 예로부터 ‘돼지의 고을’로 불린다. 그만큼 양돈농가가 많다. 이곳에서 자라나는 돼지만 52만 마리다. 전국의 돼지 사육 규모 1위인 충남에서도 가장 많은 수준이다. 국내에서 돼지와 관련해 사업을 하려면 홍성은 필히 거쳐 가야 하는 관문인 셈이다. 

 

그런 홍성이 최근 소란스럽다. 구제역을 비롯한 가축 전염병이 돌 때나 들리던 농가의 한숨소리가 여기저기 번져 가고 있다. 홍성의 평화가 깨진 시점은 사조그룹이 홍성 돼지 농장에 군침을 흘리면서다. 사조그룹이 자회사를 앞세워 홍성의 양돈장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현지 농가들과 잦은 마찰을 빚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본력을 등에 업은 사조가 현지 농장들을 반강제로 매입하고 있다는 게 농가들의 주장이다.

 

사조그룹과 갈등을 빚고 있는 양돈농가는 홍성의 향토기업인 한돈산업이다. 한돈사업은 1998년 충남 홍성에서 돼지 1000마리를 갖고 시작한 양돈기업이다. 현재 보유한 돼지 두수는 총 1만3000여 마리. 20년에 걸쳐 한 지역에서 돼지를 길러내면서 구제역 파동을 비롯해 각종 위기들을 무수히 겪어왔다. 그러는 사이 기업은 더 단단해졌다고 믿었지만 착각이었다. 대기업의 마수가 뻗치면서 공고하던 농장의 입지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돈산업은 2011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5년 동안 동아원으로부터 양돈용 배합사료를 구매해 왔다. 한돈산업은 동아원의 지급보증하에 효성캐피탈과 여신거래약정을 체결해 대여금을 제공받고, 이를 농장 인수 및 돼지 개량 자금 등으로 사용했다. 한돈산업과 공고한 계약관계를 유지하던 동아원은 계열사의 무리한 사업 확장이 화를 부른 끝에, 2015년 12월 기업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이후 2016년 3월 사조그룹에 흡수 합병돼 사명이 사조동아원으로 변경된다. 한돈산업의 위기는 이때부터 도래했다. 

 

2016년 6월16일 사조동아원 관계자들이 한돈산업의 정선수 대표이사를 찾아왔다. 그들은 다짜고짜 돼지를 포함해 양돈장 전체를 200억원에 매각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정 대표가 강한 불쾌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돈산업 관계자는 “평생 일궈온 농장이었다. 매각할 의향이 없었을뿐더러 제시한 매각대금이 시세와 현저히 맞지 않았다. (사조동아원 측이) 사실상 헐값에 내놓으라고 주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왜?…수산은 정체, 인·허가도 난제

 

한돈산업이 움직이지 않자 사조동아원은 보복성 조처를 단행한다. 사조동아원은 매각제의를 거절당한 일주일 후인 2016년 6월24일 수기로 급하게 작성된 ‘최고장’이란 제목으로 같은 해 6월29일에 효성캐피탈 대여금 중 일부금인 10억원을 상환할 것을 요구했다. 4일 안에 현금 10억원을 내놓으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였다는 게 한돈산업 측 주장이다. 

 

결국 한돈산업이 10억원 마련에 실패하자 사조동아원은 기다렸다는 듯 행동에 나선다. 사조동아원은 2016년 6월30일 한돈산업의 돼지 약 8000두를 한돈산업 측 동의 없이 제3자에게 매각해 임의환가(자산을 현금화하는 행위)한다. 매각 제의부터 돼지를 팔아치우는 데까지 단 2주가 걸린 셈이다. 이후 사조동아원은 같은 해 7월5일부터 28일까지 부동산경매, 법인통장 및 개인통장에 대한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채무불이행자 등재신청, 심지어 대표이사 아파트의 자녀 컴퓨터 등 가재도구까지 압류 조치한다.  

 

사조그룹이 한돈산업 측 부동산 등을 인도집행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8월8일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집행관 A씨가 집행보조로 용역 200여 명을 투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용역들이 한돈산업 측 관계자들을 비롯해 현지 일간지 기자들의 출입을 완력을 이용해 막고 카메라 등을 뺏는 폭력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 용역들을 A씨에게 지원한 주체가 사조그룹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에 발발한 사조와 홍성 향토기업과의 ‘돼지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후 한돈산업이 채권금액을 변제하기 위해 경매가 진행 중인 양돈장 중 2개 농장을 한 법인에 82억원에 매각하는 안 등을 사조동아원에 제시했지만, 사조 측은 부동산경매 낙찰기일을 연기하거나 취하하지 않았다. 한돈산업 관계자는 “사조는 처음부터 채무금 변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양돈장 인수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치 명가’로 알려진 사조그룹은 왜 대한민국 홍성 작은 마을, 돼지 농장을 갖는 데 혈안이 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참치 산업의 미래가 그만큼 밝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참치 시장은 동원그룹과 사조그룹이 양분하고 있다. 경쟁자가 많지 않지만 시장의 성장세가 완만해졌다. 이 탓에 그룹의 실적 상승세도 더뎌졌다. 사조그룹 전체 매출액은 2015년 2조5090억원, 2016년 3조3109억원으로 크게 증가하다가 2017년 3조3962억원으로 주춤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83억원, 1438억원, 1591억원을 기록했다.

 

결국 사조그룹은 새 먹거리를 찾는 게 당면한 과제다. 참치 이외의 성장동력이 절실하다. 사조는 이제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먹거리를 찾고 있다. 육류 부문에 대한 수직계열화 작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료공장과 농장이라는 시장의 ‘바닥’을 차지해, 원가절감에 성공하겠다는 게 사조그룹의 야심이다. 천안에 도축장, 당진에 사료공장이 있는 사조가 홍성의 돼지 농장까지 갖게 되면 이 같은 로드맵의 밑그림을 완성하는 셈이다.

 

8월8일 새벽 200여 명의 남녀 집행보조 용역들이 충남 홍성군 한돈산업 농장을 기습 점거해 입구를 막고 있다. © 한돈산업 제공

 

‘화인코리아 사태’ 데자뷔…사조 “민사 문제”

 

일각에서는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이 왜 새 농장을 차리는 대신, 향토기업의 농장을 빼앗아야 했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이는 홍성의 지역 사정에 답이 있다. 현재 결성·장곡·홍동 등 홍성 전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축산 악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축산 악취로 인한 민원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홍성군은 축사 신축허가를 내주는 장벽을 높여가고 있다. 결국 사조 측이 돼지 농장 인허가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기존의 축산농가에 매각을 요구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사조그룹의 이번 논란에선 기시감이 느껴진다. 사조와 향토기업의 갈등이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조그룹은 2012년 국정감사에서 국내 오리·삼계 수출 1위를 달리던 전남 나주의 향토기업 화인코리아의 채권을 매수해 회생절차를 방해, 기업을 탈취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강기정 민주통합당 의원은 “사조그룹이 유령회사를 동원해 화인코리아를 인수하게 된다면 재벌기업이 욕심나는 회사가 있으면 유령회사를 만들어 모기업에서 돈을 빌려주고 채권을 매입한 뒤 파산시켜, 헐값에 빼앗아도 된다고 홍보하는 것과 같다”며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의 증인출석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주 회장은 끝내 국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듬해 사조는 화인코리아 인수에 성공한다. 

 

그리고 불과 6년 뒤, 사조그룹은 같은 논란을 재현했다. 한돈산업은 사조그룹의 무차별적인 양돈장 매입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지난 7월19일 공정위에 제출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진정서에 따르면, 한돈산업은 ‘과거 사조그룹이 수산 분야와 가금류 분야에서 수행해 왔던 부도덕하고 약탈적인 방식 그대로 현재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대기업의 자본력과 그룹 경영자의 비도덕적이고 탈법적인 운영방침으로 향후 진정인들과 유사한 피해사례가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며 위법과 부당한 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공정위에 요구했다.

 

한편 사조그룹 측은 한돈산업과의 갈등은 공정거래가 아닌 민사상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사조그룹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보내온 입장문을 통해 “한돈산업과 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했으나 정기적 여신감소 및 무허가축사 양성화 후 담보제공 등에 대한 이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후 (한돈산업과의) 신뢰관계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담보채권에 대한 경매신청을 했다. 그럼에도 한돈산업이 농장을 불법 점유해 이 상황을 구제받기 위해 적법절차에 따라 법원 인도명령을 청구해 승인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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