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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버렸다”Ⅱ②] [단독] 보훈심사위 “선례 될 위험”…피해 군인 외면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 회의록 입수…“해 주기 시작하면 6·25와 월남전 참전자 모두 인정해야”

조유빈 기자 ㅣ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9(Wed) 10:41:00 | 15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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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를 하다 전투나 훈련, 구타나 폭행 등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입는 경우가 있다. 정신질환도 공무 연관성이 입증되면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할 수 있도록 법이 마련돼 있지만, 실제로 정신질환으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는 경우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대부분 ‘증거부족’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이 국가유공자 등록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가 PTSD를 입은 군인의 공상군경(전쟁 외 공무수행으로 상해를 입은 군인·경찰) 해당 요건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정신질환으로 인한 국가유공자 등록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논의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밝혀졌다.

 

최정호 예비역 중령(가명·57)은 2004년 이라크에서 국방무관으로 근무한 뒤 PTSD 증상을 보였다. PTSD는 각종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정서불안장애 증상이다. 당시 이라크는 종전선언 후에도 사상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방정보본부에서 이라크 파견자 선발공고를 냈으나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고, 최 중령은 이라크 국방무관으로 갑작스럽게 차출돼 2004년 2월초부터 2005년 7월까지 18개월을 수도 바그다드에서 보냈다. 당시 이라크 저항세력은 외국인을 납치·살해하거나 자살폭탄으로 도처에서 공격했다. 최 중령은 근무기간 동안 자살폭탄 폭발 현장을 수차례 목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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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노출·시신 수습 후 PTSD 왔지만 외면

 

극도로 예민한 상황 속에서 연합검문소에서 근무하는 미군 근무자들은 의심스러운 차량이 발견되면 사살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최 중령은 전했다. 본인 역시 수차례 미군에 의해 사살당할 뻔한 위기를 넘기며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외국인을 납치해 파병군 철수 및 파병 철회를 요구했고, 심지어 참수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공개하기도 했다. 일명 ‘김선일 사건’이 일어나면서 공포는 극으로 치달았다. 

 

최 중령은 고(故) 김선일씨의 시신을 직접 운구해 인계한 당사자다. 최 중령은 “운구 도중 관의 위치가 바뀔 때마다 뚜껑을 열어 시신을 다시 확인했다. 쿠웨이트에서 시신을 인계할 때는 참수된 시신을 봉합해야 했다”며 “그뿐 아니라, 수년간 이라크에서 겪은 생명의 위협, 폭발 현장 목격 등으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최 중령은 귀국 후 우울증, 기억력 감퇴, 인지기능 저하부터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보였다.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 눈을 뜨면 사람을 참수하는 영상과 총을 겨누던 병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후 자신이 겪었던 증상이 이라크 파병으로 인한 트라우마라는 것을 인지한 최 중령은 5년이 지나서야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퇴직 후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공상군경’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훈심사위 “선례 될 위험 있다” 

 

2014년 작성된 보훈심사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심사위원들은 최 중령의 공상 요건 심사 도중 “(이 사례를) 인정한다면 일종의 선례가 돼 치료를 바로 받지 않은 분들을 모두 인정해 줘야 하는 위험이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심사위원은 “누구 하나 해 주기 시작하면 6·25나 월남전 참전자, 이라크전 참전자 모두 인정해 줘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언급했다. 공무와 질병 발병과의 인과관계를 통해 객관적으로만 공상 인정 여부를 따져야 할 심사위원회에서 ‘선례를 남길 위험이 있다’는 내용의 논의를 한 것이다. 

 

또 심사위원회는 “전형적인 PTSD에 해당하긴 하지만 6개월에서 1년 이내에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 기록이 없어 우리의 룰(rule)에서 제외되고 있다”며 “치료받지 않은 기간을 인정해 줄 것인지의 여부가 관건”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의학계에 따르면, PTSD 발병은 대개 3개월 내에 나타나지만, 수개월에서 수년 정도 발병이 지연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점을 심사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공상군경이 되지 못하면서 최 중령은 국가유공자가 아닌 보훈보상대상자가 됐다. 국가유공자에게는 취업 지원이 있지만, 보훈보상대상자에게는 없다. 오히려 정신질환 이력을 알리면 어디에서도 근무가 불가능했다. 94만원 정도의 보상금이 지급됐지만 아직 학생인 세 자녀를 부양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최 중령은 국가유공자등록거부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보훈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한양대병원 측은 “환자는 수차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노출됐을 뿐 아니라, 자국민이 공개 처형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 시신을 직접 운구하면서 직접적인 외상적 경험과 간접적인 사건 모두를 경험했고, PTSD 발병원인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법원은 국외에 파병돼 건설·의료지원·피해복구 업무를 맡았다가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경우 국가유공자로 등록할 수 있지만, 최 중령의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정신질환과 업무와의 연관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봤다.

  

최 중령은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PTSD가 발병했다는 의학적인 소견을 제출했는데도 (공상군경) 비해당 결론을 내렸다. 법원은 심지어 진급 스트레스를 받아 PTSD가 생겼다고 판시하기도 했다”며 “직권 차출을 통해 보내진 위험한 파병 현장에서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후유증을 앓고 있는데 국가가 이를 외면한다면 누가 국가를 믿고 일하겠나”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PTSD를 비롯한 정신질환은 발병 시기를 특정하기 어려워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국가보훈처의 ‘정신질환 보훈심사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 7월까지 총 심사 대상 1747명 중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수는 168명에 그쳤다. 113명은 보훈보상대상자로 심사됐고, 비해당으로 심사된 사례가 1466건이다. 일부 피해자들이 심사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3년부터 2018년 7월까지 제기된 총 266건의 소송 중 보훈처가 패소한 재판은 29건, 일부패소한 재판은 17건에 불과했다. 

 

법률사무소 해내의 강성신 변호사는 “정신질환의 경우 보훈처 심의 기준 자체가 까다로워 조건에 부합한다는 점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며 “피해자가 행정소송까지 감수해야 하는 현 상황을 볼 때, 관련법을 일원화하고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경감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2014년 당시에는 PTSD를 좁게 판단했다. 그러나 현재는 PTSD와 관련된 공상군경 인정에 긍정적”이라며 “전문위원 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4명이 포함돼 있다. 전문의 소견에 따르면, 20~30년 만에도 발병할 수 있기 때문에 최종 진단이 정확하게 나올 경우 진료기록지, 입원기록지 등을 검토해 인정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시행규칙상으로는 발병 시점을 정해 두고 있어 그런 내용이 최 중령의 심사에서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며 “공상군경 비해당 판정을 받게 되더라도 민원인 입장에서 억울하거나, PTSD로 분명한 진단을 받을 경우 다시 재신청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가 버렸다”Ⅱ’ 특집 연관기사

☞[“국가가 버렸다”Ⅱ①] 화마와 싸우다 숨진 소방관, 국가와 싸워야 하는 유족들

[“국가가 버렸다”Ⅱ③] 표창원 “질병과 공무 연관성 국가가 입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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