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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법 있는데도 죽어가는 환자들, “국가의 직무유기”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들, 국내서만 허용 안되는 ‘방사선 미사일’ 치료 위해 지금도 수천만원 들여 해외 원정 치료 나서

유경민 인턴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8(Tue)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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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내분비 종양 환자들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8월5일 ‘[죽음에 내몰리는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들] 루타테라 치료를 의료 보험에 포함시켜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방사선 미사일 치료(Lu-177 Dotato PRRT)가 국내에 도입되지 않아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들이 효과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신경내분비 종양은 신경계와 내분비계 조직이 뭉쳐 발병하는 종양이다.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가 앓았던 병이기도 하다. 국내 중증 환자는 약 1000명 정도로, 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 대상 약 70%의 치료 효과가 있는 방사선 미사일 치료는 해외에서 검증됐지만, 우리나라에는 도입되지 않았다.

 

국내 항암치료에 지친 환자들은 ‘해외 원정 치료’를 나선다. 의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해외 치료를 받기 위해선 1회 약 1000만원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8월15일 시사저널이 만난 서일식 신경내분비 종양 환우회 회장은 “국내에서 오랜 기간 항암치료를 받아온 환자들에겐 장시간의 비행도 고역이다. 경제적·신체적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환자들은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료제가 국내 임상시험을 거쳐 시판이 승인되려면 통상 2년이 걸린다. 시사저널이 8월17일 인터뷰한 강건욱 서울대병원 핵의학교수는 의료당국이 시판승인 전의 신약을 공급해 치료기회를 줘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동정적 치료’라고 한다. 강 교수는 “치료제가 임상시험을 거치기 전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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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큰 국내 항암치료 받아야하는 현실

 

국내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들은 ‘독약’에 비유되는 기존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이지영씨(43·여)는 2009년 8월 신경내분비 종양을 진단받았다. 햇수로 투병 10년째다. 국내 신경내분비 환자 대상 항암치료 효과는 20% 남짓,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부작용을 동반한다. 

 

이씨가 2세대 표적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1세대 세포독성항암제를 쓰자, 머리가 다 빠진 얼굴이 거울에 비췄다. 잇몸 살점이 떨어져 치아가 드러나고 입에서 피가 흘렀다.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치료 효과는 마땅치 않았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때쯤, 방사선 미사일 치료를 접했다. 

 

가지 않으려고 했다. “희망을 갖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어요. 투병 초기엔 이것저것 해봤는데 효과가 없으니까.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할 거라고 생각했죠.” 이씨가 말했다. 환자들을 속이는 해외 원정 치료 브로커도 판치는 현실이다. 다행히 국내 환자 중 처음으로 말레이시아 방사선 미사일 치료를 받은 함아무개씨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움켜쥔 동아줄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방사선 미사일 치료를 받았다. 차도가 있었다. 암이 자라지 않는다. 무엇보다 부작용이 거의 없다. 기존 항암치료제 옥트레오타이드(Octreotide)에 방사성동위원소 루테슘이 결합된 치료제를 투여하면, 암세포에서 분비되는 성장 억제 호르몬(Somatostatin)을 찾아내 그 주위만 공격한다. 기존 항암제가 온몸을 공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 항암치료를 받으며 빠졌던 머리카락도 그새 자랐다. 이씨를 바라보던 함씨의 남편이 “처음 봤을 때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방사선 미사일 치료는 생소한 분야다. 그러나 외국에선 이미 검증된 지 오래다. 유럽·호주·​미국 뿐 아니라 필리핀·​말레이시아 등에서도 사용되는 치료법이다. 방사선 미사일 의약품 ‘루타테라’는 지난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검증까지 받았다. 오죽하면 함씨는 처음 말레이시아에 치료를 갔을 때 “북한에서 왔느냐”는 말을 들었다. 의료진은 의료 선진국인 한국에서 방사선 미사일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걸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이건 국민 생명을 경시하는 짓이에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보건복지부의 근무태만으로밖에 볼 수가 없어요.” 함씨가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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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1000만원, 아버지 치료비 마련하려 휴학 후 ‘막노동’

 

돈 없고 아픈 이들에게 ‘해외 원정’은 까마득하다. 대학생 김명환(가명)씨는 말레이시아에 가기 위해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아버지의 해외치료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을 했다. 대학교는 2016년 2학기부터 다니지 못했다. 다음 학기에도 복학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씨는 일당 10만원을 받으며 일주일에 6일씩 건설현장 ‘시다바리’가 됐다. 일이 있으면 일요일도 반납했다. 그렇게 100일, 3~4개월을 일하면 한 회 치료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 1회 치료를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0분이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해외치료는 생계를 위협한다. 방사선 미사일 치료는 1회 1000만원 정도가 든다. 비행기, 숙박 등을 포함해서다. 한 사이클인 총 4회 치료를 위해선 4000만원이 필요하다. 한 사이클 치료를 받으면 평균 40개월 동안 암세포가 자라지 않는다.

 

김씨는 한국에 돌아와 다시 공사현장을 찾아다녔다. 다음 치료를 위해서다. 김씨의 아버지는 올해 2월까지 총 세 차례의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네 번째 치료는 6개월째 미뤄지고 있다. 이유는 아버지의 컨디션 악화다. 돈이 있어도 환자의 몸 상태가 나쁘면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약 5시간의 비행이 환자에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8월19일 네이버 밴드 ‘한국 신경내분비종양 환우회’에는 “77세 어머니가 다음달 3차 치료를 앞두고 있었는데 장폐색으로 응급실에 입원하셨다. 장루 수술을 연기했는데 비행기를 타고 방사선 미사일 치료를 받으러 가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김씨는 “비용은 둘째 치고 치료를 받으러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방사선 미사일 치료 국내 도입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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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내선 치료 불가능

 

우리나라에서 방사선 미사일 치료가 불가능한 이유는 국내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동물실험인 비임상시험만 진행되고 있다. 임상시험을 통해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식약처 입장이다. 

 

그러나 환자들과 의료진은 이러한 식약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FDA 승인과 해외 사례로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의약품이기 때문이다. 시약은 약전에 등록돼 진단용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강건욱 서울대병원 핵의학과장은 말레이시아 비컨 병원(Beacon international hospital)과 협진 중이다. 환자들이 서울대병원에서 치료 가능 여부를 진단받고 말레이시아에 방문해 치료를 받는 식이다.

 

의약품 ‘루타테라’를 들여오려는 시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올해 7월 만들어진 ‘신경내분비 종양 환우회’는 지난 7월26일 한국 희귀·필수 의약품센터에 루타테라 수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가 수출을 거절했다. 국내 허가가 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서일식 신경내분비 종양 환우회 회장은 “식약처 등 관련 부처의 방사선 미사일 치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하루빨리 방사선 미사일 치료가 도입돼야 하는데 타 부서의 핑계만 대고 있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강 교수는 “소량의 치료제는 서울대병원에서도 생산할 수 있다”며 “임상시험은 통상 2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위급한 환자를 위해 임상시험계획 승인 전 의사의 동정적 치료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호주, 캐나다에서는 2016년 12월까지 동정적 치료 제도를 통해 1543명의 신경내분비 종양 환자 대상 표적 핵의학치료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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