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예술가처럼 산다’는 것,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그 희열과 대가
  • 양영은 KBS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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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디(An die) 조성진, 강수진, 요요마


얼마 전 녹음을 해서 ‘박제’해두고 싶을 만큼 서로 공명을 불러일으켰던 대화가 있었다. 지난 6월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지휘자 에스트라다가 이끄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막 관람하고 귀국한 후배와의 대화였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 제공 : 크레디아)

 

 

 

“25살의 자신감, 천재 피아니스트의 기교와 외로운 음악가의 노래… 왠지 고독해 보이던데요, 주위 사람들도 감동을 받아선지 다 흐느껴 울고…. 그런데 저는 그 연주를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과연 나는 삶을 저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저도 모르게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올해 초 예술의 전당에서 조성진의 연주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던 필자는 후배의 감상평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그의 연주를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는 후배가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을 필자도 느꼈었기 때문이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조성진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비창》 2악장 도입부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 건 처음이었기에 누가 볼까 봐 가만히 눈물을 훔치면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삶을 예술가처럼 산다는 것 – 숙달(mastery)과 통달(artisanry), 그리고 예술가적 수준과 경지(artistry)에 이른다는 것. 나도 그렇게 한 번뿐인 삶을 ‘예술적’으로 살아보고 싶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일상 속에서 삶을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나는 비록 ‘예술가’처럼 한 가지에 매진하며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런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나? 최선을 다해 어떤 경지를 추구하며 나만의 색깔과 개성으로 내가 꿈꾸는 수준과 경지를 향해 날마다 부단히 노력하는, 그렇게 ‘순수하게 매달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예술이라는 일을 하며 그런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상황과 환경에서 살고 있는 예술가들이 부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 후배와의 반가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후배는 또 다른 예술가의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 ‘제3의 젖꼭지’라고 아세요? 첼리스트에게는 ‘제3의 젖꼭지’라는 게 있대요. 하도 연습을 많이 해서 악기에 가슴골이 눌리어 피부색이 변하며 생긴 것이라고 해요. 언젠가 첼리스트 요요마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인터뷰어가 ‘당신은 이제 연습 같은 건 안 해도 되지 않나요?’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요요마의 대답이 뭐였는지 아세요?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제 아내에게 물어보세요(Ask my wife).’였어요. 지금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걸 돌려서 표현한 거죠. 

 

그러면서 ‘음악가에게 연습이란, 무의식적으로 연주하는 상태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덧붙이더군요. 64살의 거장도 그러기 위해서 연습을 한다는… 그게 바로 ‘예술가적 경지’라는 거겠죠? 다른 누구도 아니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알고 느낄 수 있는 ‘경지’ 말예요. 또 그런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경지’가 있기에 남들이 아무리 ‘잘 한다 잘 한다’ 해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일 테고요, 자신이 목표한 그 수준에 이를 때까지. 그는 또 관객도 자신도 그 시간에 공연장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는데 ‘굳이’ 시간을 내서 만난 거니까 공연만큼은 최선을 다해 서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meaningful time)으로 만들려 한다는 연주 철학을 밝히기도 했어요.”

 

첼리스트 요요마(馬友友) ⓒ 연합뉴스

 

 

 

‘무의식적으로 연주하기 위해 연습한다.’ 64살의 첼리스트와 25살 피아니스트의 연주하는 모습이 오버랩되며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그들이 남모르게 기울였을 또는 기울이고 있을 노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들은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하나에만 집중하고 한 가지만 바라보며 한 곳에만 매달려 그렇게 평생에 걸쳐 갈고 닦는 삶. 하지만 그렇게 평생 동안 한다 해도 계속 나아지기만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도중에 불의의 부상과 맞닥뜨리게 될 수도 있고, ‘생로병사라는 숙명’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과정을 오롯이 겪어내고 지난 2016년 영예롭게 무대에서 은퇴한 발레리나 강수진(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얼마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어떤 음악은 들으면 힘들어요, 그래서 안 들으려고 해요. 그래도 어떨 때는 들리잖아요, 그럼 눈물이 나와요. 왜냐면 너무 여러 감정들이 북받쳐서. 너무 깊게 감정을 느꼈고 그만큼 ‘몰입’했었으니까. ‘다시 춤을 추고 싶다’ 이런 건 아닌데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울음이 나오는 것 같아요.”

 

발레리나 강수진(사진 제공 : 크레디아)

 

 

 

사실 필자는 멋모르는 철부지 소녀 마냥 그런 경지를 추구하고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라고 생각해서 부러웠었다. 거기에 얼마만큼의 노력과 고통이 들어야 하는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탓에 헤아릴 수조차 없으므로. 강수진 감독도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걸 쏟아부어도 완벽이라는 건 거의 없어요. 아무리 연습을 해도 라이브 무대이기 때문에 많은 요소들이 다 맞아 떨어져야 하고, 저 자신만 해도 그날의 몸 상태나 감정이 다 다르죠. 그래서 완벽을 위해 연습을 거치고 거쳐 어느 순간 ‘퍼펙트한 무대였다’고 하면 뭔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예술이라는 게 그만큼 완벽함을 만들어내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그래서 예술인 거라고 믿어요. 몇십 년 동안 무용을 하고 지금은 예술감독으로서 공연을 올리고 있지만 ‘완벽한 무대’를 느낀다는 건, 정말 그 한 번으로 몇백 년을 살 수 있을 만큼 그토록 드물고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런 몇 번이 저에게는 4차원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게 할 정도의 희열감을 주죠.”

 

‘4차원의 세계에 접선하는 것 같은 희열감’이라는 말에 매료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턱을 떨어뜨리고 선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차에 강 감독이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굳이 경험할 필요는 없어요. 예술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용을 하는 것이든, 악기를 다루는 것이든, 작곡을 하는 것이든 자기가 하는 일에 몰입해서 미치지 않으면 뭔가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미친다’는 건 나쁜 뜻으로가 아니라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그런 부분이죠. 그게 없으면 예술을 만들어내는 데 뭔가 부족함이 있어요. 한 마디로 ‘끼’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푹 빠질 수 있다는 건 저희들한테 하나의 ‘선물’인 것 같아요. 예술은 ‘재능’이 있어야 되거든요. 재능이 없으면 하는 사람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힘들고, 보는 사람도 힘들어요. 그렇게 힘들게 할 바에는 그냥 즐기는 게 좋죠. 그리고 예술가의 그런 경지를 관객으로서 함께 느껴주시면 그것으로써 예술가에겐 최고의 찬사죠. 진정성이 전해졌다는 것이니까요.
 

요즘 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는-우선 그런 몰입과 환상적인 희열감을 느껴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몇 명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이제는 저도 그런 ‘4차원’을 직접 경험하진 못하지만 그 맛을 본 사람들은 그것을 후대에 전수해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후배들이 그 맛을 봤다고 하면 행복이 이어지는 거죠. 그런 후배들에게는 제가 감사해요. 왜냐면 ‘저 혼자 희열을 맛보고 끝!’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것은요.”

 

어쩌면 그렇기에 행복이라는 봉우리만큼 고독과 극기(克己)라는 골짜기도 깊지만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이라는 것은 그리고 예술가의 삶은.

 

그리고 그 숭고하고도 처절한 ‘열망 의지’는 범인(凡人)들의 마음으로 전해져 저마다 삶을 대하는 자세와 노력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인생을 얼마나 소중히 대하고 아끼며 매 순간을 정련(精練)하며 살고 있는지. 예술가‘로서’는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예술가‘처럼’은 살 수 있고 ‘예술가처럼 사는 삶’이란 비단 주어진 환경과 재능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기에.

 

동시대를 살면서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을 보며 행복해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다.

 

 

[편집자 주]

필자 양영은(梁渶垠)씨는 현 KBS 한국방송 보도본부 국제부 기자로 재직 중이다. 2017년 ‘최은희 여기자상’을, 2014년에는 ‘바른말 보도상’을 수상했다. 미국 MIT Sloan 경영대학원과 하버드대 웨더헤드 국제문제연구소에서의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대담집 《나를 발견하는 시간-하버드·MIT 석학 16인의 강의실 밖 수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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