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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로에서] ‘배려’라는 이름의 에너지

김재태 편집위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3(Mon) 08:00:00 | 1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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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폭염의 계절이었다. 흡사 사막 한가운데 맨몸으로 내버려져 있는 듯한 고통. 날씨가 고장 나도 단단히 고장 났다는 느낌만 가득했다. 구름도 없고, 바람도 없고, 비도 거의 없이 오로지 이글거리는 햇빛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날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열대의 나라에서는 오전에 그토록 무섭게 타올랐던 대지도 오후 한나절 짧게 쏟아지는 국지성 강우 덕에 잠시나마 비에 젖어 숨을 고를 수 있는데, 이번에 겪은 그 폭염은 무자비하게 쉼표조차 없었다. 그래서 더 폭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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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했던 그 더위에 가장 고달팠던 이는 아무래도 취약계층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한쪽에 전기요금 걱정 탓에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선풍기 하나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던 ‘내’가 있었다면 다른 한쪽에는 그 선풍기조차 틀지 못한 채 더위 속에 속수무책으로 신음해야 했던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폭력적인 더위가 계속될 때 맨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군상이 쪽방촌 사람들인 것은 억지 상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엄연하게 펼쳐져 있는 실체적 풍경이다. 

 

많은 사람이 기록적으로 이어진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던 때, 마음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 건립이 서울의 두 곳에서 첫 삽을 떴다는 뉴스다. 지난해 가을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현지 주민들 앞에 장애 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으며 눈물로 호소하던 모습이 기억 속에 생생했던 터라 그 소식은 더위를 식혀주는 청량제처럼 상쾌했다.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갈등의 견고한 벽에 작게나마 틈이 생겨나는 듯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특수학교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진전이 시작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 때문에 이민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어왔던 탓에 그 진전은 더욱 반갑게 다가왔다.

 

이번 여름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고통받았던 에너지 약자들이 어딘가에 있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여러 형태의 약자들이 존재한다. 그들 모두 우리와 어떤 형태로든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공생(共生)을 위한 작고 소박한 배려의 손길이 그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용기를 줄 수 있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 한마디가 큰 좌절을 안길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공기관 대다수가 그렇듯이 서울 시내 한 동네 주민센터에도 계단 옆에 휠체어 이동을 위한 통로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자리에 몇 가지 물건이 놓여 있었는데 어느 날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주민센터 직원은 그 물건들이 있어도 휠체어가 지나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왜 그러나 하는 의문을 가졌다가 이내 지웠다. “내가 생각하는 통로의 폭과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로의 폭이 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한다. 그처럼 아주 작은 차이에도 마음을 쓰는 것, 그것이 바로 배려의 깊이다. 그 깊이들이 모여 사회의 에너지가 되고, 그 에너지로 우리는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기록적인 폭염을 남기고 간 올여름 다시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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