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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특집①] ‘악마의 음료’에서 ‘아침의 연인’으로

16세기 아라비아에 커피숍 등장, 한국의 커피 역사는 약 135년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8.31(Fri)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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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브라질이 커피 주요 생산지가 된 배경에는 '미남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커피에 얽힌 이야기는 그 긴 역사만큼이나 흥미롭습니다. 커피가 세계적인 음료로 등극하자, 커피를 많이 마셔도 되는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악마의 음료'라고 배척된 커피가 '아침의 연인'으로 사랑받게 된 배경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커피와 건강과의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2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pixabay


 

에티오피아가 커피로 유명해진 이유가 있다. 커피콩이 이 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후 세계로 퍼졌다는 설 때문이다. 미국커피협회(NCA)에 따르면, 커피는 6세기경 에티오피아 목동 칼디가 처음 발견했다. 빨간 열매를 먹은 염소가 평소보다 활기차고 밤에 잠을 자지 않으려는 행동을 본 칼디는 그 사실을 근처 수도원에 알렸고, 수도자들은 오랜 시간 졸지 않고 기도하기 위해 커피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맛보다 효능에 끌려 커피가 세간에 퍼진 것이다. 

 

커피를 음료로 만들어 즐기기 시작한 때는 대략 15세기로 추정된다.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예멘은 커피를 상업적으로 재배한 최초의 국가로 꼽히는데, 이슬람교의 분파 중 하나인 수피교도가 커피를 음료로 즐겼다고 전해진다. 

 

 

'지혜의 학교'로 불린 커피집 

 

16세기 들어 커피는 대규모로 재배됐다. 페르시아·이집트·​시리아·​터키 등지에 커피 농장이 생겼고, 커피를 파는 가게까지 성행했다. 1554년 세계 최초의 커피집(커피 하우스)이 생겼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커피숍에 해당하는 커피집에 모인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대화만 나눈 것이 아니라 음악과 공연을 감상하며 체스를 두기도 했다. 여러 부류의 사람이 모인 커피집은 정보 교환의 장소 역할을 하며 '지혜의 학교'라는 별칭도 얻었다. 

 

커피가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은 11세기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지만, 본격적인 커피 무역은 17세기부터 이뤄졌다. 당시 교회 중심의 유럽 사회는 이슬람 세계에서 온 커피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1615년엔 베니스 성직자들이 공개적으로 커피를 비난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커피가 유행하면서 맥주와 포도주 소비가 감소하자 상인들도 커피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가톨릭 성직자들은 커피를 '이교도 음료' 또는 '악마의 음료'라고 비난했다. 

 

그래도 커피 수요가 줄지 않자, 성직자들은 교황(클레멘스 8세)에게 커피를 금지해달라고 청원했다. 커피를 마셔본 교황은 "이교도만 마시기엔 맛이 좋다. 커피를 기독교 음료로 만들자"며 오히려 커피를 장려했다. 이는 커피가 유럽을 매료시킨 계기가 됐다.

 

이후 영국·​프랑스·​오스트리아·​독일·​네덜란드 등에서 커피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1페니로 커피 한 잔을 즐기면서 여러 분야의 사람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던 커피집은 '페니 대학'이라고 불렸다. 17세기 중반 런던에만 300개 이상의 커피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상인·​해운업자·​은행가·​예술가들이 모여든 커피집에선 다양한 사업이 탄생한 산실이기도 했다. 세계 최대 보험사 로이즈(Lloyd's)의 역사도 커피집에서 시작됐다.

 

이 무렵 커피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 땅에 뿌리를 내렸다. 사실 처음부터 커피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선 커피보다 전통 차가 대세였다.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이 터지면서 미국인은 차 대신 커피를 찾았다. 미국 독립선언서 작성 작업에 참여한 토머스 제퍼슨은 커피를 "문명 세계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라고 평했다. 이후 커피는 계층을 가리지 않고 즐기는 대중 음료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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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에 커피 보급한 나라는 프랑스 

 

세계적으로 커피 수요가 폭증하자, 아라비아 외의 지역에서 커피 재배가 경쟁하듯 시작됐다. 그 경쟁에서 발 빠르게 움직인 네덜란드인은 17세기 중반 지금의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바타비아에서 커피 재배에 성공했다. 이것이 자바 커피의 기원이다. 

 

현재 커피로 유명한 중남미에 커피를 보급한 것은 프랑스였다. 암스테르담 시장이 1714년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커피 묘목을 선물했다. 1723년 그 왕으로부터 커피 묘목을 얻은 프랑스 해군 장교 가브리엘 끌리외는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섬에 심었는데, 이것이 중남미 커피나무의 원조다. 이 묘목은 50년 후 1800만 그루로 번성했다. 

 

브라질이 현재 세계적인 커피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남계(美男計)'가 있다. 당시 브라질 황제는 커피 묘목을 얻기 위해 프랑스령 기니아에 특사(프란시스코 드 멜로 팰해타)를 보냈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 요청을 거절했다. 일은 엉뚱한 데서 발생했다. 기나아 총독의 아내는 브라질 특사의 잘생긴 외모에 반해 그가 떠날 때 커다란 꽃다발을 선물했다. 그 속에, 지금 기준으로 수십억 달러에 해당하는 커피 종자가 숨겨져 있었다. 

 

 

최초 상업 인스턴트커피 개발은 커피콩 풍년 때문

 

이렇게 커피는 전 세계로 퍼졌고, 18세기 말 커피는 세계에서 수출 이익이 가장 많은 곡물 중 하나가 됐다. 한 마디로 원유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러나 커피콩을 볶고, 갈고, 추출하는 커피 제조 공정은 커피 대중화를 더디게 만드는 걸림돌이었다. 이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 커피를 즐기기보다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일반적이었다. 커피가 대중화된 것은 1901년 인스턴트커피가 발명된 이후다. 일본계 미국인 카토 사토리 박사는 커피 액을 농축한 액체 형태의 인스턴트커피를 만들었다. 그러나 상품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인스턴트커피를 가정에서 즐기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커피 풍년'이었다. 1920년대 말 브라질에서 커피는 풍작이었다. 커피콩 시세가 곤두박질치자 커피 재배 농민은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 당황한 브라질 정부는 식품회사인 네슬레에 잉여 생산량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에 따라 네슬레는 1938년 인스턴트커피를 만들었는데, 그 제품이 지금까지 커피 대명사로 통하는 네스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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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1884년 무렵부터 커피 즐겨 

 

국내에 커피가 들어온 것은 1880년대로 추정된다. 조선은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으면서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다. 1882년 미국·​영국·​독일·​이탈리아·​러시아·​프랑스 등과 수교하면서 서양인들이 조선을 찾았다. 그러면서 커피가 국내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최초의 커피 기록은 미국 천문학자 퍼시벨 로웰은 1885년 펴낸 책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있다. 그는 "1884년 1월 우리는 조선의 최신 유행품인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을 남겼다. '유행품'이라고 했으니 그 무렵, 커피는 생소한 음료가 아니라 이미 어느 정도 보급된 기호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886년 관료이던 윤치호는 중국 상하이에서 쓴 일기에 “돌아오는 길에 가배관(커피집)에 가서 두 잔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오다”라고 적었다. 미국인 의료선교사로서 고종의 어의를 지낸 호러스 알렌은 1908년 펴낸 《조선견문기》에 "1884년 경복궁에서 커피가 제공됐다"고 기록했다.

 

조선에서 고종이 최초로 커피를 접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고종은 1896년 러시아 대사관에서 커피를 마셨고, 고위관료들 사이에서 커피를 마시는 유행이 퍼졌다. 이후 대중도 커피를 즐겨 마셨다. 독립신문 1897년 3월20일 자엔 '인도네시아산 자바 커피를 판매한다'는 광고가 실렸다. 

 

커피를 파는 다방이 생긴 것은 1899년으로 추정된다. 1899년 8월31일 자에 윤용주라는 사람이 '서울 홍릉 전차 정거장 앞에 커피와 차를 파는 다과점을 열었다'는 광고가 게재됐다. 1927년 영화감독 이경손이 서울 인사동에 카카듀라는 다방을 개업했다. 시인 이상도 1933년 서울 종로에 제비라는 다방을 차렸다. 1945년 서울에 60개에 불과했던 다방은 1950년대 말 1200개로 늘어났다. 

 

현재와 같은 고체 상태의 인스턴트커피가 국내에 등장한 때는 1950년 무렵이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미군 병사에게 지급된 전투식량에 인스턴트커피가 있었다. 이것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차(茶) 문화가 없었던 시절, 달달한 인스턴트커피는 빠르게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동서식품이 1970년 최초의 국산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하면서 커피 대중화를 앞당겼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12월 서울 압구정동에 첫 원두커피 전문점(자뎅)이 들어섰고, 테이크아웃 판매 방식도 등장했다. 스타벅스가 1999년 국내 1호점을 내면서 본격적인 원두커피 시대가 열렸다. 2016년 국내 커피전문점은 9만여 개로 편의점의 2배, 치킨집의 3배 규모다. 연간 1인당 커피 소비량은 500잔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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