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홍송원 혀끝에 담긴 오리온 비자금 사건의 진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3 17:03
  • 호수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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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의혹 피하기 위해 미술품·가구 비용 대납” vs “홍 원장의 주장 근거 없는 일방적인 것”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오리온 비자금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법인 소유의 부동산을 저가 매각한 뒤 차액을 서미갤러리에 전달하는 식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오너 일가가 고가의 미술품과 가구 구입에 사용했다는 주장이 또다시 제기됐기 때문이다. 

 

2010년 오리온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수사의 ‘트리거’이자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구속의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사실상 종결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수년이나 지난 지금 재부상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조경민 전 오리온 사장이 담 회장과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 그 배경이다.


조 전 사장은 현재 담 회장 부부가 서미갤러리에 입금된 자금으로 미술품과 가구를 매입했다고 주장한다. 검찰수사가 시작되자 비자금 의혹을 피하기 위해 자신에게 구매 비용을 대신 채워 넣도록 지시했다고도 말했다. 이렇게 대납한 자금을 돌려달라는 것이 소송의 취지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홍송원 서미갤러리 원장의 사실확인서도 법원에 제출했다. 

 

담 회장 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서미갤러리에 입금된 것은 자신들의 비자금이 아니며, 홍 원장의 사실확인서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만일 조 전 사장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담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이 재판부가 비자금 의혹을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서울 용산구 오리온 본사와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가운데)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작은 사진) ©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임준선


홍송원 “마크힐스 시행사 돈으로 미술품 구매”


사건은 오리온 창고 부지에서 비롯됐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130-6번지(1261㎡)와 130-34번지(494㎡) 등 두 필지다. 지금은 청담 마크힐스가 지어져 있다. 연예인과 재벌가 오너 일가가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탄 고급 빌라다. 마크힐스 건립은 2006년부터 추진됐다. 가수 최성수의 아내 박아무개씨가 조 전 사장에게 창고 부지를 매입해 개발하겠다는 제안을 해 오면서다. 당시 오리온도 창고 부지 매각을 고심하던 때였다. 조 전 사장은 박씨의 제안을 담 회장에게 보고했고, 이를 승인받으면서 사업은 본격화됐다.


박씨는 이브이앤에이 등 시행사를 통해 오리온 창고 부지를 160억원에 매입했다. 시공은 오리온 계열 건설사인 메가마크가 맡았다. 이브이앤에이는 확보한 부지를 바탕으로 6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일으켰다. 그 직후인 2006년 8월 이브이앤에이로부터 서미갤러리에 40억6000만원이 입금됐다. 컨설팅 용역비 명목이었다. 양사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컨설팅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1차 계약서에는 서미갤러리가 유명 작가의 작품 2매를 구입해 준다는 내용이 담겼고, 2·3차 계약서에는 마크힐스 건설사업 관련 컨설팅을 제공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서미갤러리는 이브이앤에이에 작품은 물론 컨설팅도 제공하지 않았다. 순전히 송금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계약이라는 지적이다. 서미갤러리에 입금된 자금은 담 회장 부부가 고가의 미술품과 가구를 매입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 조 전 사장의 주장이다. 이런 내용은 법원에 제출된 홍 원장의 사실확인서에도 담겨 있다. 아래는 사실확인서의 일부다. 


“박씨는 한동안 저와 그림 거래도 하고 부동산 거래도 하면서 가까이 지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박씨가 제게 시행사(이브이앤에이)에 돈(PF)이 들어오면 40억원을 그림 대금조로 선불 지급하겠다고 해서 40억6000만원이 입금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가 40억원을 전해받아 가지고 있던 중 이화경 부회장이 가구와 그림을 매수하기 원했습니다. 당시 이 부회장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해 주던 조 전 사장에게 가구와 그림 값을 청구하자, 서미갤러리가 받은 40억6000만원으로 충당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2006년부터 2009년 사이 제가 위 금원에 맞춰 이 부회장에게 40억원 상당의 가구와 그림을 납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담 회장은 준비서면을 통해 조 전 사장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애초에 서미갤러리로 자금이 입금됐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담 회장 측은 “(마크힐스 건설사업과 관련해) 조 전 사장에게 포괄적으로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에 잘 판단해 처리할 것으로 믿었을 뿐 구체적인 매매가액이나 매각 과정 및 진행 경과 등에 대해서도 전혀 보고를 받지 않았다”며 “따라서 이브이앤에이가 어떤 경위로 서미갤러리에 40억6000만원을 입금하게 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제출된 홍송원 서미갤러리 원장의 사실확인서 © 시사저널 송응철


담철곤 회장 측 “홍 원장 주장 신빙성 떨어져”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암운이 드리운 건 2010년 사업이 여의치 않던 박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시행사들을 오리온그룹에 매각하려는 과정에서다. 오리온이 실사를 하던 중 박씨가 회사 자금을 횡령한 정황을 발견한 것이다. 궁지에 몰린 박씨는 오리온을 압박하기 위해 사정기관과 언론 등에 자신이 오리온그룹의 비자금 관리인이며 서미갤러리에 입금된 40억6000만원은 비자금이라는 취지의 제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 부동산 시세가 3.3㎡당 5000만원 선이었음에도 3.3㎡당 3000만원에 창고 부지를 매각한 뒤 그 차액을 서미갤러리를 통해 전달받는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런 내용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러자 2010년 4월부터 국세청의 고강도 세무조사가 이뤄졌다. 국세청은 같은 해 8월 담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수사도 강도 높게 진행됐다. 오리온뿐만 아니라 서미갤러리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담 회장의 추가 혐의도 드러났다. 그러나 검찰의 칼끝은 여전히 서미갤러리에 입금된 40억6000만원이 오리온 오너 일가의 비자금인지 여부에 맞춰졌다. 오리온그룹은 비자금이 아닌 박씨의 개인자금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조 전 사장은 이 무렵 이 부회장으로부터 홍 원장이 이브이앤에이에 40억6000만원을 돌려주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조 전 사장은 “미술품과 가구를 이미 제공했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이 부회장의 부탁에 따라 개인자금으로 홍 원장에게 40억원을 전달했다. 담 회장 부부가 직접 자금을 전달할 경우 서미갤러리에 입금된 돈이 비자금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고 설명했다. 홍 원장의 사실확인서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2010년경 박씨가 오리온에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시행사들을 매각하려고 하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위 40억6000만원이 오리온의 비자금이라는 등의 말을 언론에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40억6000만원을 시행사에 돌려주라고 조 전 사장이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로서는 이미 이화경 부회장에게 위 금원 상당의 가구와 그림을 납품했기 때문에 이를 돌려주기 주저하면서 40억6000만원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납품한 가구와 그림 대금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조 전 사장이 자신의 개인 돈으로 제게 40억원을 지급했고, 저는 조 전 사장으로부터 40억원을 지급받은 이후에 시행사로부터 받은 40억6000만원을 돌려주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담 회장 측은 조 전 사장의 주장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담 회장 측은 “조 전 사장이 홍 원장에게 40억원을 전달했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것을 개인 자금으로 지급했다는 주장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며 “만일 그랬다면 조 전 사장이 40억원의 손해를 입은 것인데, 그 무렵 위 금액을 속히 지급해 달라고 청구한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반면 홍 원장은 조 전 사장이 개인 자금으로 미술품과 가구 값을 변제했다는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당시 조 전 사장이 제게 대신 갚은 40억원은 조 전 사장의 개인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 전 사장에게 빌린 돈 20억원과 그 수익금으로 약속한 4억원, 그리고 제가 조 전 사장에게 16억원에 판 ‘선셋누드(미술품)’를 동일한 가격으로 매수하는 것으로 해 40억원을 퉁 치는 방법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담 회장 부부 고가 미술품과 가구 제값 치렀나


담 회장 측은 홍 원장 주장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담 회장 측은 “조 전 사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홍 원장의 진술이 있을 뿐인데 그마저도 조 전 사장의 주장에 따라 진술을 꿰어 맞춘 흔적이 역력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준비서면에는 과연 홍 원장으로부터 고가의 미술품과 가구를 제공받았는지, 받았다면 그 대금은 정상적으로 지급했는지 여부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만일 담 회장 부부가 미술품 등을 사들이지 않았다거나, 정상적으로 값을 치렀다면 조 전 사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오리온그룹 관계자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고 개인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 밝힐 수 있는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양측은 입장을 달리하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만일 재판부가 조 전 사장의 손을 들어줄 경우 문제는 적지 않다. 서미갤러리에 입금된 자금이 비자금이었을 개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담 회장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 1심에서 대부분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담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서미갤러리에 입금된 자금을오리온 비자금이 아닌 조 전 사장이 저가 매도를 알선한 대가로 받은 ‘리베이트’로 판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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