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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 대신 ‘이윤’이라고 부르자

기고 사내유보금 환수, 두 개의 질문과 하나의 제안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6(Thu) 14:22:59 | 1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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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 환수론’(환수론)이 또 논란이다. 이번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불을 지폈다. 지난달 경제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지난해 60조원의 이윤을 거둔 삼성이 20조원만 풀어도 200만 명에게 1000만원의 소득을 더 안겨줄 수 있다”며 기업들의 책임을 호소했다고 전해진다. 홍 대표의 주장은 뜨거운 호응만큼 격한 반론도 불러왔다. 반론의 요점은 ‘환수론’은 사내유보금이 뭔지도 모르는 무지로 똘똘 뭉친 주장이라는 것이다. 판에 박힌 반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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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은 ‘재벌 곳간’의 돈이 아니다


오해부터 바로잡자. 기업 매출액에서 임금 등 각종 비용을 뺀 값이 이윤이다. 이윤 중 일부는 주주에게 배당된다. 그러고도 남는 이윤은 회사 안에 ‘유보’되는데, 사내유보금이란 그렇게 매년 쌓인 이윤의 누적분을 일컫는다. 즉 설립 이래 기업이 벌어들인 이윤 중 비용으로 지불되거나 임금·배당으로 분배되지 않은 몫의 총합이 사내유보금이다. 해를 거듭하며 사내유보금이 느는 것은 일단 자연스럽다.


사내유보금은 분배도, 투자도 되지 않은 채 금고 속에, 즉 재벌 ‘곳간’에 쌓여 있는 돈이라는 그릇된 이미지가 있다. 과거 부자들은 농민을 수탈해 현물 형태로 부를 쌓아두곤 했지만,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현물이든 현금이든 그저 쌓아둘 사람은 없다. 이리저리 굴려 이자라도 챙기는 게 현명하다. 물론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공장을 짓고 기계를 들이며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대부분의 돈을 쓸 것이다. 환수론에 반대하는 쪽에서 ‘애초 환수할 것 자체가 없다’고 반응하는 것은 그래서다. 그럼 환수론은 잘못된 문제제기인가?

Q. 사내유보금은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가?


환수 반대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사내유보금의 상당 부분은 투자돼 있지 않다. 기업은 사내유보금 일부를 현금 또는 현금성 자산으로 가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유가증권이나 당장 사업에 필요치 않은 토지를 매입하는 데도 쓴다. 후자는 회계적으로 투자로 잡히기도 하지만 그것을 고용과 부가가치를 낳는 ‘생산적’ 투자라고 보긴 어렵다. 적어도 사내유보금 중 이런 부분은 사회적으로 거둬들여 더 나은 방식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2014년 도입된 ‘기업소득환류세제’나 1991년부터 10년간 존재했던 ‘적정유보초과소득 추가과세제도’가 그런 취지를 담고 있다. 둘 모두 보수정부 작품이니 환수론을 진보의 전유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런 법안이 이중과세라거나 소유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국가가 개인의 소유권을 일부 침해하는 것은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다.


Q. 사내유보금은 정당하게 축적되었는가?


환수론에는 두 차원이 있다. 효율성 관련 측면은 앞서 살펴봤다. 다른 하나는 정당성,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간 기업들이 이윤을 축적해 온 과정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다. 사내유보금이 많은 것은 해당 기업이 영업을 잘한 결과일 뿐이라고 재계는 주장한다. 하지만 기업이 잘된다고 꼭 사내유보금이 많은 건 아니다. 매출이 늘어도 중간재·설비 구매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거나 임금·배당으로 분배를 많이 하면 사내유보금은 커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선 2000년 이전엔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향후 투자재원이 되지만, 사내유보금 없이도 투자는 가능하다. 기업은 주식·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차입해서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우엔 은행 차입이 기업의 주요 자금 공급원이었는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구제금융을 제공한 국제통화기금이 기업 부채비율 축소를 요구했고 차입경영이 어려워진 기업들은 다른 자금원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채택된 게 사내유보금이다. 재벌들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이를 선호했다.


이후 사내유보금이 연평균 두 자릿수 증가율로 늘어났다. 덕분에 부채비율은 빠르게 떨어졌고 경영권도 비교적 굳건히 지켜졌다. 하지만 대가가 따랐다. 어떻게 사내유보금이 갑자기 늘 수 있었을까? 

 

주주배당을 논외로 하면 매출이 갑자기 늘지 않으면 비용절감 말곤 답이 없다. 물론 비용절감은 부분적으론 이전의 불합리함을 바로잡은 결과일 테다. 하지만 동시에 하청기업들을 더욱 옥죄는 한편 총수 관계인에게는 고수익 일감을 몰아주고 정리해고·비정규화·외주화 등으로 노동을 ‘유연화’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알짜자산, 우량한 자회사를 헐값에 매각하면서 유보금을 확보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잘려나간 노동자의 안위는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었다. 이뿐만 아니다. 삼성 같은 ‘1등 기업’조차도 반도체 생산설비 안전에 소홀해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을 사실상 방기했고 기업들은 과자·주택·금융상품에 이르기까지 소비자에게 다양한 ‘불량품’을 팔았다.


지난 20년간 쌓인 1000조원 규모의 사내유보금은 이렇게 형성됐다. 다수의 노동자와 서민이 거기에 반감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과정에서 총부가가치 중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표현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게 중요하다. 이는 오늘날 ‘소득주도 성장론’의 출현을 불가피하게 만든 핵심 원인이다.


요컨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부분적으로는 비효율적이고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것, 이것이 그간 불필요한 용어 논란에 가려져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사내유보금 환수론’의 ‘합리적 핵심’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첫째, 사내유보금 일부가 정말로 환수됐을 때 그것이 기업 수중에 있을 때보다 효율적으로 쓰이리라는 보장이 없다. 실제 삼성이 20조원을 내놓으면 정부는 이를 ‘어떻게’ 쓸 것인가? 현재 정부는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들어오는데도 못 쓰고 있지 않나? 정부가 적절한 소득정책 및 재정확대 전략을 내놓기 전엔 기업에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정책이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업의 유휴자원을 정부가 더 잘 쓴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그간 사내유보금이 국내의 여러 경제주체들의 희생 위에 축적된 것도 사실이지만, 최근 전자·석유화학·자동차 등 부문 대기업의 비약적인 축적은 해당 기업들이 각자 분야에서 구축한 독점력과 세계경제 호조건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편향된 한국 구조에서 이는 이윤의 형성보다는 그 분배에 질문을 제기한다.

 


사내유보금 No, 이윤 Yes!


그래서 제안한다. ‘사내유보금 환수론’을 폐기하자. 그리고 ‘사내유보금’ 대신 이젠 ‘이윤’을 직접 문제 삼자. 그리고 1회성 ‘환수’보다는 지속적인 ‘통제’를 지향하자. 정부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환수보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길을 모색하자. 이를 위해 노동이사제 같은 노동자 경영 참가 법제화가 좋은 첫걸음이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기업 이윤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폭풍처럼 몰아쳤지만, 우리만 무풍지대였다. 기껏 제기된 사내유보금 환수론의 불꽃은 용어 논란 끝에 사그라졌다.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 마침 미국 차기 민주당 대선후보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책임 있는 자본주의 법’을 최근에 들고나왔다. 대기업을 주주만이 아닌 노동자·하청기업·지역사회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과 상호작용하게 하고, 특히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 40% 이상을 참여시키자는 제안이다. 한 칼럼은 이를 ‘자본주의를 구출하기 위한 워런의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국 자본주의의 회생을 위해서라도 기업의 작동과 그 이윤을 심각하게 돌아보는 과감한 한 걸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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