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트럼프·김정은 주연의 ‘비핵화 쇼 타임’
  • 손기웅 한국DMZ학회 회장·前 통일연구원 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6 17:04
  • 호수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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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의 통일전망대] 文, 트럼프 평양·김정은 워싱턴 방문 주선해야

 

위기의 순간이다. 문재인 정부가 희망해 온 남북, 북·미 관계의 구상이 헝클어지고 있다. 비핵화에 관한 북·미 간 구도에 현격한 차이가 있으며, 남북 간에도 희망하는 그림이 다르다는 사실이 명확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어려움들이 나타날 수 있고 어떻게 이들에 대응할 것인가를 준비해 놓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문제다. 남·북·미 모두 기존 정책을 변화시켜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상황을 만들어 가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국가적 의지다. 대통령과 정부의 집념과 결단이고 이를 뒷받침할 국민적 지지의 결집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국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 비핵화의 진전에 남북관계를 엄격하게 연계시키자는 주장은 남북관계를 아예 하지 말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단호하게 한목소리로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고 엄중한 제재를 동시에 끝까지 가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지난 25년간 3국은 북한 비핵화에 원칙적으로는 동의했으나 문제를 푸는 수단과 방법에 이견을 보였고, 그 틈을 최대한 활용하며 버티는 것이 북한이었다.

 

5월23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北, 미·중·러 견해차 교묘히 파고들어

 

핵강대국도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도 아닌 우리가 세 초강대국이 한 몸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핵화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비핵화와 남북관계를 굳게 연계시킨 지난 시기 정부의 정책은 비핵화에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 간에도 철저한 단절만 초래했다. 모든 북한 주민들이 중국만 쳐다보게 만들었다. 김정일 사망 이후 급거 등장한 김정은 체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했던 그 시기에 북한 변화를 위한 어떠한 지렛대도 영향력도 우리에겐 없었다.

 

남북관계를 비핵화에 연동은 시키되 좀 더 앞서 가면서 서로가 합의하는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추진하며 상호 적대성을 줄여 나가는 정책이 옳은 대북정책이다. 물론 비핵화를 위한 국제공조는 지속돼야 하며, 대북제재 속에서 이루어지는 남북 간 교류가 왜 비핵화에 도움이 되는가를 국제사회 특히 동맹국인 미국에 이해시켜야 한다. 북한 주민들에게 다가가 핵무기 없이도 함께 잘살 수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어 바깥세상도 인지하게 하고, 핵무기가 그들의 삶과 자유를 오히려 속박하는 원흉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야 한다. 대북제재와 더불어 북한 주민의 인식변화가 북핵 폐기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이 정책이 옳은 것임에도 미국과 국내에서 견제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남북관계의 개선과 확대 의욕이 너무 앞서고 있다. 정부가 너무 서두르고 있다. 광복절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나 ‘통일경제특구’는 비핵화가 확실히 진전되고 지금의 대북제재가 대폭적으로 완화되어야만 현실화될 수 있는 그림이다. 구상 자체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나, 너무 거시적이고 현 정부 내에서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사업을 대북제재에 조응하며 제시하는 것이 우리로부터는 물론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장기적 비전에 입각하되 하나씩 실현해 나가는 현실정책(Realpolitik)을 펼쳐야 한다. 5년 임기의 남한 대통령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준비하고 대응하는 김정일이었고, 김정은이다. 서두르면 지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확고한 수호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데 있다. 운동권 전력의 인사들이 정부의 요직에 포진해 있는 사실 자체만으로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는 현실은 차치하더라도 헌법 개정 추진 시 나타난 ‘자유’의 삭제 논란, 실제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안에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변경된 현실이 포용과 화해를 바탕으로 한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핵화의 진전보다 앞서 가려는 남북관계 개선에 우리 국민은 물론 우방국인 미국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헌법에 자유민주주의 개념이 어떻게 태생되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2018년 현재의 자유민주적 사회를 만들어내었다. 헌법의 전문과 제4조 통일조항에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법제처의 영문판 헌법은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하고 있다. 즉 자유(freedom)와 민주주의(democracy)가 우리의 이념적 정체성이며, 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남북한 모두가, 통일된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다.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이 되고 취임식에서 ‘국민의 자유’ 증진을 선서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자유와 민주주의 실현이 대통령의 책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도 그 가치, 그러한 사회를 함께 만들고 실현시키자고 요청해야 한다.

 

셋째, 대통령과 정부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이고 김정은도 쇼에 능한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여기서 뒤지지 않는다. 새로운 상황,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서로 자신의 공(功)과 지도력을 보여주려는 데 양보가 없다.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 점은 잘 나타났다. 판은 우리가 만들어주었는데 북·미가 우리에게 이제 쇼의 중심에서 좀 빠지라는 형국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원하는 북·미 관계 개선, 비핵화 진전, 남북관계 개선이 진척된다면 모든 공을 트럼프와 김정은이 차지하게 해도 좋다. 

 

평양 정상회담을 우리보다 트럼프가 먼저 해도 좋다. 김정은이 지금 가진 유일한 정치적 카드가 정상의 평양 초청이고, 김정은이 가장 목마르게 바라는 것이 워싱턴 방문이 아니겠는가. 둘이서 그랜드 쇼를 하게 하고 우리는 쇼의 결과에 집중하자. 둘이서 화려한 춤을 근사하게 추도록 하고 음악을 우리가 만들자.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공을 돌렸듯이, 다시 한번 우리가 원하는 목표에 집중하고 한·미 및 남북대화를 시작하자. 그 과정을 지켜볼 국민과 국제사회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공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편 정부의 대북정책에 국내적 지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북한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파괴를 겪었지만, 평화와 국가 성장을 위해 북한과의 종전선언을 추진하려는 정신과 마음은 우리 국내적으로도 투영되어야 한다. 관용과 포용, 화해와 화합이 북한에게만 아니라 국내 정치적으로도 펼쳐져야 한다. 그것이 남북관계 개선의 진전은 물론, 종전선언 그리고 선언이 실제적 효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국내적 힘이 될 것이다. 

 

 

北과의 교류 장·단점,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다음으로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 종전선언 등 현안에 관해 국민들이 더 풍부한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전문가들 간의 심층토론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 진행돼야 한다. 정부정책에 대한 지지뿐만 아니라 반대의 입장도 개진되면서 장·단점을 국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대의견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정책에 정당성과 자신감이 결여되었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경제가 시급한 화두지만 북한 비핵화, 남북관계 개선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경제성장에 직결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치·군사·문화적으로 국가가 성장하는 데 필수조건임을 국민들이 알게 해야 한다. 일견 자신만의 삶의 무게에 빠진 듯 보이는 국민들이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그 국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국민의 힘을 일깨우고 모아 함께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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