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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모시러 고향 찾는 사람들…일본의 추석 ‘오봉’ 전통 풍습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오봉’ 전통 풍습…양력 8월15일로 일본 큰 명절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1(Tue) 17:00:00 | 1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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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별것도 아닌데 보러 오셨어요? 어릴 때부터 8월15일이 다가오면 언제나 하던 일을 했을 뿐인데….”

 

전통식 집으로 현관을 들어서서 거실 마루 왼쪽에 자리 잡은 큰 부쓰마(佛間·조상님의 위패를 모셔놓는 방으로 주로 1층)를 열면서 우바사와 게이지(姥澤啓二·55)씨는 겸연쩍은 듯 말합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다시 더위가 찾아온 지난 8월14일부터 16일까지 일본의 오봉(お盆·양력 8월15일로 설과 함께 가장 큰 일본의 명절)을 보기 위해 이시노마키(石巻)를 찾았습니다. 

 

오봉은 우리의 추석이라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로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도시에서 살고 있는 형제자매 친척들이 조상을 모시고 있는 본가에 와서 함께 지내는 그런 명절입니다. 이때를 이용해 국내외 여행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귀성객으로 고속철도나 고속버스의 표가 매진되고 도로가 정체된다는 내용이 뉴스 머리를 장식하니 고향을 찾는 사람도 아직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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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봐온 대로 차려진 제사상

 

우바사와씨가 별거 아니라지만 일부러 제가 보러 간 것은 조상님을 맞이하기 위한 장소라고 해 특별히 상을 차린 오봉제단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추석차례상이라고 할까요. 1년간 광에 넣어 놓았던 각목으로 구성된 조립식 제단(祭壇)에 제물을 올려놓고 주변을 파란 대나무 가지와 부적처럼 보이는 알록달록한 종이로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불단 뒤쪽에 보일까 말까 하게 밀어 놓았던 위패도 그 상에 올려놓고 향로·꽃·놋촛대 등을 정해진 곳에 올려놓습니다. 채소·과일도 보입니다. 이 제단은 14일부터 16일까지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하는데 첫날은 밥을 올리고, 둘째 날은 떡을 올리고, 삼일 째는 면을 올린다고 우바사와씨는 설명합니다.

 

좀 특이한 것으로 오이와 가지를 말과 소로 비유해 나뭇가지로 네 발을 만들어 제단 앞쪽에 놓는 것입니다. 이는 조상님이 오고 갈 때 타는 자동차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합니다. 오실 때는 말을 타고 빨리 오시고 가실 때는 소에 태워 늦게 가시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제단을 잘 차린 집이니 귀성 가족들도 많겠지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귀성했다는 가족이나 친척은 없고 대신 평소엔 양로원 생활을 하시는 어머니를 전날 모셔왔다고 했습니다. 

 

우바사와씨는 독신이고 고령인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시기에 양로 시설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건설 일을 한다는 그는 300여 평이나 되는 대지에 단층으로 건평 150여 평인 집을 혼자 건사하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모셔오기에 긴장했지요. 집 청소도 하고 제단 꾸밈을 다 해놓고 모셔왔어요. 어머니께서 올해도 잘했다고 하시니 한시름 놓았습니다.” 

 

주름이 깊이 파인 50대 중반의 그가 어릴 적부터 봐온 대로 제사상을 차려놓고 어머니께 합격이라는 판정을 받아 좋아하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입니다. 

 

우바사와씨 집을 소개하고 안내해 준 분은 이 지역 촌장을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지내고 2005년부터 13년에 걸쳐 이 지역의 미치노에키(道の駅·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나 일반도로에 설치된 자동차 휴게소로 그 지역의 특산물 등 판매로 유명)역장을 하고 있는 오타 미노루(太田実·76)씨였습니다. 오타 역장도 재해 전까지는 제단을 꾸미고 조상을 모셨지만 이제는 따로 제단을 갖추지 않고 평소와 비슷하게 불단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드문 일인 것이지요. 

 

이날 오타 역장의 안내로 또 한 곳 찾아가 조사를 했는데, 이 집은 평소 생활하는 곳은 도쿄인데 가끔 돌아와 집과 지역 친지분들을 돌보는, 이 지역 유지에 해당하는 미우라 노부유키(三浦信行)씨 집안이었습니다. 그는 도쿄의 유명 대학 학장까지 지내고 퇴직한 분으로, 오타 역장과 농업고등학교 동창입니다. 60여 년 전 이 지역의 장남들은 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엘리트 코스였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장남들은 많이 배울 필요가 없고 일찍부터 일을 하는 것이 배우는 거라는 생각으로 중학교를 졸업하면 일을 했습니다. 

 

미우라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희망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닥쳐 어려움을 겪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아들의 단짝이었던 오타씨를 통해 회유도 해 봤지만 학문에 뜻을 품은 아들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우라씨는 도쿄에서 학업을 할 때도, 대학 교수가 돼 결혼을 했을 때도 농번기와 명절은 물론 집안의 친척들을 찾아뵈어야 할 자리엔 반드시 참여했다고 합니다. 

 

도쿄와 이시노마키를 60여 년간 많은 경우엔 한 달에 두어 번씩, 적은 경우라 해도 두 달에 한 번은 다니는 생활을 이어왔다고 합니다. 현재 대학 교수로 있는 40대 아들도 농번기나 명절 때는 이곳에 와서 지냈기에 아들도 이곳이 고향이라고 합니다.

 

미우라씨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되었지만, 조상님을 모신 불단을 보살피고 명절을 지내기 위해 친척의 도움을 받으면서 대지 500여 평이나 되는 집을 건사하고 있습니다. 제단을 보기 위해 찾아가니 도쿄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70대 부부와 40대 아들 부부 그리고 손주들이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딸도 친정집에 왔다면서 손님맞이를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미우라씨 집도 우바사와씨 집과 비슷하게 제단을 차려놓고 있었습니다. 제가 3일간 다른 집 제단을 100여 집 넘게 다니면서 보았는데, 이 두 집안 정도로 할아버지 때부터 하던 대로 차린 집은 없었습니다. 한 집은 결혼을 하지 않아 맏며느리 없이 독신인 장남이, 한 집은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집안을 꾸린 장남이 가장 곧이곧대로 차례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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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주택 아닌 보통 집에서 맞는 오봉

 

특히 이 지역에서 이번 오봉은 각별했습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쓰나미로 집을 잃었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부흥주택을 지어 들어갈 수 있었거든요. 컨테이너로 지은 가설주택이 아닌 버젓한 보통 집에서 맞이하는 오봉이었기에 재해 후 처음으로 가족과 친척들이 집을 방문해 함께 명절을 보내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작은 묘목이 심어진 정원에서 바비큐를 하는 모습, 현관 앞에서 조상님을 맞이하는 불을 지핀다며 나무젓가락 정도의 나무에 불을 지피는 모습,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로 보내는 불을 지피는 모습 등 추석 풍경으로 장관을 이룹니다. 자신의 조상님 묘만 성묘하지 않고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친구 부모님 성묘도 하며 인사를 합니다. 마을 공동묘지는 한 줌씩 불붙인 향을 들고 다니는 성묘객들로 인해 분향 연기로 자욱할 정도입니다. 

 

이런 여러 풍경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주 인상적인 모습으로 남은 것은 우바사와씨와 미우라씨 집의 제단이었습니다. 현대화와 더불어 전통적 의례 등이 간단하게 변해 가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인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런데 그런 흐름에 역류하듯이,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는 듯 같은 형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겠지요. 그것도 제단을 꾸밀 부인이 없는 장남에다 고향에 살고 있지 않은 장남으로 아주 불리한 여건이지만, 그 사정을 남이 봐줄세라 자신의 어릴 때와 다름없는 제단을 꾸며놓았습니다. 

 

우바사와씨는 말했습니다. 결혼을 못 해 제단을 이리 꾸몄다는 생각을 어머니께서 하시지 않게 하고 싶었노라고. 미우라씨도 저의 질문에 답합니다. 도시로 나가 고향을 저버렸다는 생각을 조상들과 주변 사람들이 안 하게 하고 싶어서 어린 시절 했던 대로 한다고. 너무 큰 비약일 수 있습니다만, 약간의 죄책감이나 부족함은 합리적으로 대처하고 싶은 의례를 생략하지 않고 행하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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