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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성희롱 발언만 잡아내면 단번에 쳐버릴 수 있다”

[단독] 부천시 공무원, 산하기관 만화영상진흥원 장악 위해 ‘성희롱 사주’ 파문

김종일·윤현민 경기취재본부 기자 ㅣ hmyun911@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0(Mon) 14:00:00 | 1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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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박근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최근 부천시에서 국내 만화계 전체가 경악한 더 큰 논란이 불거졌다. 미운털이 박힌 산하 기관장을 내쫓는 데 신종 ‘셀프 미투’가 등장한 것이다. 시 공무원이 직원을 꾀어 성희롱 녹취를 종용한 자작극 형태다. ‘원장을 술 먹여 성희롱을 유도하라’는 노골적인 주문이었다. 그것을 녹취해 가져오면 원장을 자리에서 쫓을 계략도 세웠다. 

 

믿기 힘든 이런 자작극은 시사저널 8월23일자 ‘[단독] 부천시, 성희롱 덫 놓고 기관장 강제퇴출 시도’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본지 보도가 나간 뒤 만화계는 ‘공직사회 희대의 공작’이라며 원성을 토해 냈다. 당장 원로작가들이 관련자 파면과 부서 해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기회에 시의 전횡을 근절해야 한다는 지역 여론까지 나온다. 반면 부천시는 감사 결과 뒤에 숨어 여전히 침묵시위 중이다. 지역 정치권도 지방분권 등을 이유로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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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없으니 성희롱 잡는 게 가장 좋아”

 

지난 3월22일 오후 9시30분쯤 부천시 문화국 만화애니과 최아무개 과장은 산하기관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직원 A씨에게 전화를 걸어 해당 기관장인 안종철 당시 원장의 성희롱 발언 녹취를 종용했다. 이날 최 과장은 “안 원장이 술 취하면 얼마나 성희롱 발언을 많이 하겠어. 그걸 녹음해서 잡아버리면 단번에 쳐버릴 수 있어. 그걸 잡아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재임)기간이 짧아 돈 해먹고 이런 건 아직 발견할 수 없어. 다른 건 없어. 어찌 됐든 지금은 술자리에서 성희롱을 잡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직무능력이 아닌 개인 신상 흠집 내기를 주문한 것이다. 해당 기관장의 강제퇴출 추진을 자인한 셈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시의 개입을 감추려는 시도도 확인됐다. 최 과장은 “방법은 두 가지인데 이사회에서 조사단을 구성하든가, 시가 하든가. 하지만 시장은 시가 나서서 하는 건 반대”라며 “어차피 잘못하면 언론에 다 나갈 테니 시가 대미지를 입을 것까지 생각하면 (6·13) 지방선거 끝나고 6월말이 적기”라고 했다. 시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내부고발을 유도하는 모습이다.

 

이후 A씨가 성희롱 녹취를 차일피일 미루자 최 과장은 직무정지 카드를 빼들었다. 시 만화애니과는 7월17일 K법무법인에 공공기관 임원의 직무정지 관련 법률자문의뢰 공문을 보냈다. 정관에 관련 조항이 없어도 다른 조항으로 이사회에 해당 임원 직무정지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묻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K법무법인은 조건부 가능 의견으로 회신했다. 

 

8월 이뤄진 특별감사도 표적 시비로 논란이다. 시는 8월22~31일 3개 반(공무원 8명, 심리 및 법률상담가 각 1명) 10명을 투입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인사 및 조직운영, 개인정보 등 보안관리, 기타 부적정한 업무처리 등을 들여다봤다. 의회 행정사무감사를 불과 보름여 앞둔 시점이다. 안종철 전 원장도 재정문화위원회 행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특정감사 후 일주일이 지나 다시 의회 행정감사를 받게 된 셈이다. 이를 두고 안 전 원장을 겨냥한 표적감사란 의혹이 나온다. (시사저널 8월22일자 ‘부천시, 만화영상진흥원 특별감사 둘러싸고 논란’ 기사 참조) 

 

안 전 원장 퇴출을 위한 이른바 ‘원 포인트 감사’란 얘기다. 만화업계 한 종사자는 “시가 안 원장으로 하여금 일주일 사이로 특감과 행감을 연이어 받도록 서둘러 예정에 없던 특별감사까지 끼워넣은 건 원장 교체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시 감사관실 관계자는 “이번 감사는 최근 해당기관 직원의 문서 외부유출에 따른 경찰 고발 건으로 뒤숭숭한 내부 분위기를 다잡고 조직의 안녕도 함께 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안 전 원장은 특감 하루 전인 8월20일 사직서를 냈고, 이사회는 22일 수리했다. 이후 그는 최 과장을 상대로 업무방해 등 혐의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8월28일 오후 비즈니스센터 5층 세미나실에서 임원 10명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이사회를 열었다. 김용범 부천시 문화국장도 당연직 이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시 만화애니과 직원 2명도 배석했다. 이날 회의는 안종철 전 원장 사임 후속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화제의 중심은 단연 시청 공무원의 ‘성희롱 사주’ 사태였다. (시사저널 8월29일자 ‘녹취파일 공개, 부천시 공무원 성희롱 사주 민낯 드러나’ 기사 참조) 당장 관련 녹취파일이 공개되자 임원 모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반신반의했던 성희롱 자작극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해당 파일에는 앞서 시사저널이 8월23일 보도한 시 만화애니과 최아무개 과장의 성희롱 사주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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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원 측, 녹취 공개에 “온몸에 소름 끼쳐”

 

녹취파일이 공개되자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우선 여성 임원들의 힐난이 쏟아졌다. B이사는 “언론보도 내용을 음성파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며 “당장 해바라기센터 같은 여성폭력피해지원센터에 신고하고, 진흥원 차원에서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배석한 진흥원 직원도 “현장에서 녹취파일을 들으면서 손발이 바르르 떨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원로작가들도 이런 시의 전횡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을 지낸 C씨는 “시청 과장의 오만함으로 진흥원 여직원에게 성추행 유도를 사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며 “당장 책임자 문책과 만화애니과 해체, 더 나아가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 모든 것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만일 이번 사태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직접 행동에 나설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 과장은 주취 상태에서의 말실수라고 해명했다. 최 과장은 “그간 안 전 원장의 잘못된 리더십으로 고충을 겪는 진흥원 직원들이 안타까워 그런 말을 했다”며 “성희롱 사주 등 표현은 결코 진심이 아니고 술 취한 가운데 나온 실수”라고 했다. 반면 이날 이사회에서 김용범 시 문화국장은 “시가 잘못했지만, 만화진흥원 내부의 균열 문제가 우선돼야 하고, 좀 더 두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 임원진들로부터 “자꾸 본질을 흐리지 마라”는 빈축을 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지역 정치권은 굳게 입을 닫았다. 지방분권 시대에 정치권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부천 원미 갑) 경기도당 위원장은 “지방분권시대로 접어든 마당에 지역 국회의원이 입장을 밝히면 시 행정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했다. 선거 때만 되면 찾는 자신의 지역구를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염종현(부천1) 경기도의회 민주당 대표의원도 “입장표명은 양측 입장과 전후 사정을 충분히 살펴본 후 신중히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해당부서 소관 의회 상임위원장도 철저히 말을 아꼈다. 김병전 부천시의회 재정문화위원회 위원장은 “감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시의원이 입장을 내는 건 적절치 않은 일”이라고 했다.

 

 

지역 정치권 침묵 일관…부천시, ‘버티기 모드’

 

부천시도 언제 나올지 모를 감사 결과를 이유로 들었다. 장덕천 부천시장은 “이번에 문제(성추행 녹취 사주)를 일으킨 당사자와 해당부서를 대상으로 한 보완감사가 이뤄지고 결과가 나오면 입장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과 발표는 최대 3개월까지 늦출 수 있어 버티기 의혹이 나온다. 부천시 자체감사 규칙은 제22조에서 감사 결과 보고 및 작성 기한을 감사 종료 후 60일 이내로 하고,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30일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관계자는 “고무줄 일정인 감사 결과를 핑계로 공식 입장 표명을 차일피일 미루는 건 시간 끌기로 일관하다 적당한 시점에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시 감사관실 관계자는 “이번 성추행 유도 사주와 관련한 보완감사는 행정서류를 통해 명확히 문제가 확인되는 게 아닌 만큼 감사 결과 보고 시기도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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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더러운 공무원은 난생처음 접한다”


김동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인터뷰

 

 

부천시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간 갈등의 배경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출범 당시부터 20여 년간 제가 몸을 담아온 만큼 남다른 애정을 갖고 지켜온 곳이다. 그동안 산파 노릇을 한 원혜영 국회의원을 비롯해 역대 부천시장들과도 꽤 우호적이고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시 출연금과 보조금을 족쇄로 우리 진흥원을 장악하려는 시 집행부의 의도가 노골화되고 있었다.”  

 

지난 긴급이사회에서 녹취파일을 들었을 당시 심경은.

 

“얼마나 더럽게 살았으면 서슴없이 그런 말(성희롱 유도 사주)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같은 사람은 백 번, 천 번을 곱씹어봐도 도저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다. 이런 더러운 공무원은 난생처음 접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44년간 글을 쓰고 만화를 그려왔지만 이런 인간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지금도 도저히 찾을 수 없어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다.”

 

이번 사태 수습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단순히 이번 사태를 일으킨 시청 과장 한 명이 없어진다고 문제가 수습될 건 아니다. 현재 시 만화애니과 업무 대부분은 우리 기관이 오래전부터 해 오던 것이라 전혀 새로울 게 없어 해당 과는 그 태생부터 적절치 않았다. 일개 과장이 시 집행부와 출연기관 간 갈등의 단초를 제공한 만큼 그 당사자인 최아무개 과장은 당장 파면하고 주무부서인 만화애니과도 폐지해야 한다. 이후 양측의 협의 또는 조정기구를 꾸려 일방적이지 않은 상호협력의 대등한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성추행 녹취 사주’ 관련 향후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한국 만화계 큰 어른이기도 한 우리 진흥원 역대 이사장들과 함께 조만간 장덕천 부천시장을 만나 이번 추악한 사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묻고 사태 수습을 위해 최아무개 과장 파면과 만화애니과 해체를 강력히 요구하겠다. 만일 우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만화계 전체 뜻을 모아 국회·청와대까지 달려가 우리의 억울함을 적극 호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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