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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이후 12년, 한국 ‘괴수물’은 진화했습니까?

《물괴》가 알려준 한국형 괴수물의 현주소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4(Fri) 17:00:00 | 1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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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크리처 무비’. 영화 《물괴》의 마케팅 포인트 중 하나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사극과 크리처(괴수)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 문구는 과연 틀리지 않다. 그런데 영화를 볼수록 이 ‘한국적’이라는 문구에 의구심이 딸려온다. 제작진이 의도한 ‘고유한 우리만의 것’이란 의미의 한국적이 아니라 ‘충무로 흥행대박 전략에 끼워 맞췄다’란 의미의 한국적으로 발현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충무로에서 괴수물은 미개척 영역으로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장르다. 척박한 한국 괴수 영화 계보에 처음 굵은 획을 그은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대괴수 용가리》(1967년). 이후 기술력의 한계 등으로 주춤했던 괴수물은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지만 유통기간이 짧았다. 

 

다시 거꾸로 걷기. 심형래의 《디 워》(2007)는 기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허술한 이야기로 논란의 중심에 섰고, 하지원 주연의 《7광구》(2011)는 의욕이 앞서며 비평과 흥행 모두를 놓쳤다. 신정원의 《차우》(2009)는 ‘괴수물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다’는 일각의 평과 함께 포지션 선정에서 삐걱거린 경우다. 거대 제작비가 필요한 고위험성 장르라는 점도 괴수물의 앞길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었다. 이 와중에 등장한 《물괴》는 시도 자체부터가 대단히 모험적인 영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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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적 시도, 진부한 설정

 

《물괴》에 대한 유감은 이 영화의 모험이 소재에서 그친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괴수가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에 도취돼 세부적인 부분들을 놓쳤거나, 반대로 너무 큰 모험을 한다는 것에 미리 겁먹고 괴수 외의 모든 부분을 대중이 받아들이기 쉽게 하려고 무척이나 애쓴 듯하다. 그러니까 《물괴》엔 영웅이 있고, 코미디가 있고, 코미디 담당을 위해 전략적으로 배치된 캐릭터가 있고, 느닷없는 러브라인이 있고, 가족애가 있고, 선과 악의 이분법적 시선이 있으며 해피엔딩을 향한 강박도 있다. 좋게 말하면 안정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낡고 빤하다. 명절 대목, 가족 단위 관객들을 불러 모으겠다는 목적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소재가 지녔던 여러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아쉽다. 

 

《물괴》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정체불명의 ‘괴이한 생명체’에서 출발한 영화다. 감독은 이 생명체에 두 가지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하나는 사람들 저마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공포심이 만들어낸 ‘허상’으로서의 괴물. 또 하나는 ‘실제’로서의 괴물이다. 

 

눈여겨볼 지점은 전자에서 감지되는 감독의 작가적 야심이다. 영화는 ‘허상’으로서의 괴물을 둘러싼 정치적 다툼을 보여주는데, 이는 오늘날 정치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위정자들이 퍼다 나른 허황된 소문(괴물)은 곧 여론이 된다. 그리고 여론은 누군가를 인격 살해한다. 《물괴》는 이처럼 괴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정치를 비판하려 한다. 괴수물을 정치적으로 독해했다는 점에서 《물괴》는 ‘괴물을 이용한 사회풍자극’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상황만 펼쳐놓았지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영화의 만듦새를 보강하기는커녕 어정쩡하게 만들어버린다. 광화문으로 몰려든 백성들 손에 들린 횃불에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다.   

 

괴수물로서도 《물괴》가 큰 인상을 남길지는 의문이다. 불행하게도 《물괴》에서 가장 아리송한 건 물괴 자체다. 제작진은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이라고 묘사된 실록의 기록을 전설의 동물 해태의 형상에 접목시켜 물괴를 만들었다. CG 완성도는 준수한 수준이다. 문제는 물괴의 매력도다. 괴물에게서 매력을 찾는 게 얼토당토않다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장르 영화에서 괴수의 형상은 그것이 괴기하든 무섭든 흉악하든 연민을 자아내든 그만의 매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봉준호가 만든 괴물은 관객으로 하여금 ‘뭔가 엄청난 걸 보고 있구나’란 감흥을 안기는 외형이었고, 《디 워》는 작품적 평가와 별개로 이무기 위용 면에서 적지 않은 볼거리를 제공했었다. 할리우드의 그 유명한 괴수 에이리언과 프레데터는 캐릭터 자체의 힘으로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란 파생 영화까지 불러들인 경우. 그에 반해 《물괴》의 괴수는 무섭다거나 괴기하다기보다 뭐랄까, 생김새가 일단 비호감이라는 점에서 바라보는 심경이 복잡해진다. 괴물의 매력을 겨루는 대회가 있다면 조기 예선 탈락이지 않을까.

 

《물괴》는 괴수물로서의 쾌감도 희미하다. 괴수의 서식지처럼 좁은 공간을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크게 생기지 않는다. 괴수와 인간이 1대 1로 마주하는 장면조차 심드렁하게 바라보게 되는데 아무래도 동선 설계에 문제가 조금 있어 보인다. 

 

물괴뿐 아니라, 딱히 애정을 둘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다는 점 역시 아쉽다. 김명민은 한때 연기력 대비 스크린에서 유독 힘을 못 쓰는 배우였다. 그런 그의 우려를 잠재운 건 《조선명탐정》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김명민이라는 배우가 지닌 진중함의 반대 지점, 즉 그를 코믹하게 활용하며 관객 호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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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둘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다

 

《물괴》에서 김명민이 연기한 윤겸은 의문의 사건을 해결해 가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조선명탐정》의 김민과 극중 롤이 겹친다. 자칫 캐릭터 중복으로 보일 수 있는 지점이니만큼 《물괴》에서 김명민은 코믹함을 최대한 아끼려 한다. 문제는 김인권과의 콤비 플레이가 대다수를 차지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조선명탐전》의 ‘김명민-오달수’ 관계의 연장선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물괴》는 김명민의 장기를 미리 봉쇄해 버린다. 김명민은 《불멸의 이순신》 《육룡의 나르샤》처럼 캐릭터 자체가 깊거나,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처럼 양극단의 모습이 겹쳐 고뇌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나는데 《물괴》의 캐릭터는 그가 뭔가를 하기엔 이미 기능적으로 끼워 맞춰져 있다.  

 

혜리는 아직 자신의 얼굴 근육과 대사 어미를 통제할 줄 모르는 듯하다.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도 무관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였지만, 《물괴》처럼 캐릭터가 놓인 상황이 특수하고 사극까지 가미된 경우에는 단점이 더 많이 부각된다. 물론 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영화적인 마스크를 지닌 만큼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 시간까지 혜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대중들 시선과의 싸움, 자기 노력과의 싸움일 것이다. 

 

김명민과 혜리 외에도 《물괴》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모두 자신들의 이력에 의미 있는 캐릭터 하나를 첨부하는 데 실패한다. 악의 축을 담당한 이경영은 기존에 그가 보여준 캐릭터의 반복이고, 박성웅은 뭔가를 보여주기엔 캐릭터 자체가 얕고, 최우식은 러브라인 담당이라는 미션에 포박된 듯 보이며 박희순은 걱정만 하다가 프레임에서 사라진다. 

 

《괴물》 이후 12년. 기술력은 발전했지만 괴수물에 대한 이해도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한국영화사에서 찾아볼 수 없던 가장 신선한 사극 영화이자 가장 한국적인 크리처 무비로 관객들에게 기억될 것’이라 자부했던 《물괴》가 알려준 한국형 괴수물의 현주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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