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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생존자 김지은입니다. 다시 노동자가 되고 싶습니다”

언론에 기고…“노동자로서 인생 모두 가해자 논리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

김종일 기자 ㅣ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21(Fri) 17: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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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였던 김지은입니다. 현재는 안희정 성폭력 피해 생존자입니다. 불편하실지 모르겠지만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안희전 전 충남지사를 성폭력으로 고발한 김지은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김씨는 9월20일 민주노총이 발행하는 ‘노동과세계’에 기고문을 보냈다. 노동과세계 편집실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온전히 듣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며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씨가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통해 통해 보내온 글을 싣는다”고 밝혔다. 

 

지난 8월1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는 “위력은 존재했지만 이를 행사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판결 이후 ‘성폭력·성차별 집회’에서 정혜선 변호사가 대독한 발언문을 통해 “세 분의 판사님들은 왜 제 답변은 듣지 않으시고, 답하지 않은 가해자의 말은 귀담아 들으십니까?”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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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되뇌며 살았습니다”

 

‘노동자 김지은이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씨는 자신을 ‘안희정 성폭력 피해 생존자’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정부부처 계약직 공무원이었다. 시작은 10개월 단기간 행정인턴이었다. 학위를 따야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언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원을 졸업할 만큼 열심히 일했다. 기간제 근로자, 연구직을 거쳐 계약직 공무원이 된 김씨는 공공기관에서 6년 정도 일했다. 김씨는 “금융 채무자이자 병환의 가족을 부양하는 실질적 가장이었으며, 성과로 평가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세상의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한 선배의 제안으로 선거 캠프 제안을 받았다. 김씨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설명에 월급도, 미래 보장도 없는 캠프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캠프 안 분위기는 기대와 달랐다. 김씨는 “모두가 후보(안 전 지사) 앞에서는 경직됐다”며 “후보 말에 대들지 말고 심기를 잘 살펴야한다는 이야기를 선배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다”고 했다. 정치권에 온 이상 한 번 눈 밖에 나면 다시는 어느 직장도 쉽게 잡지 못한다는 말도 뒤따랐다고 한다. 

 

안 전 지사의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패배 이후 김씨는 별정직 공무원으로 충남도청에 들어가게 됐다. 김씨는 “도청에 들어와 가장 힘들었던 건 안 전 지사의 이중성이었다”며 “민주주의자이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도자라는 이미지와 실제는 달랐다”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는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휴일은 대부분 보장받지 못했다. 메시지에 답이 잠깐이라도 늦으면 호된 꾸중을 들어야했고 24시간 자신의 전화 착신, 아들과의 요트 강습 예약, 개인 기호품 구매, 개인 차량 대리운전 등의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주어졌다. 

 

김씨는 “일반 노동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별정직 공무원의 임면 권한을 절대적으로 갖고 있는 도지사의 명령을 거부하긴 어려웠다. 그렇게 김씨에게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되뇌며 사는 일상’이 계속됐다. 김씨는 “가끔 선배들에게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비서는 업무 범위가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지사가 지시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며 “부모님의 수술에도, 친척의 장례에도, 제 몸이 아플 때도 챙기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새벽부터 주말까지 이어진 업무에 저를 돌볼 시간은 없었고,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며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되뇌며 살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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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동시에 이뤄져”

 

김씨는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며 성폭력 피해 당시의 심경도 털어놨다. 그는 “(성폭력 피해) 다음날 지사가 사과하는 것을 듣고 잊으려 했다. 아니 잊어야만 했다. 여러 차례 피해가 이어졌지만 주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눈 밖에 벗어나지 않도록 더 일에 집중하는 것뿐 이었다”고 했다. “비참하고 참담했지만,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일만 했다. 노동권 침해와 성폭력 범죄 안에 갇혀 살았다”는 말도 했다. 

 

김씨는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막고 싶었다”며 미투의 배경도 밝혔다. 1심 재판과 관련해선 “재판부는 ‘업무상 수직적, 권력적 관계로 인하여 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지위·직책·영향력 등 위력이 존재하지만 행사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며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느끼고 있는 일상적 위력은 눈에 보이는 폭행과 협박뿐만이 아니다. 직장에서 술을 강요당하고, 회식자리에서의 추행도 노동자들이 겪는 위력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고소 이후 반 년 넘게 재판에만 임하고 있다는 김씨는 “저는 더 이상 노동자 김지은이 아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아무런 수입도 벌지 못한다”라며 “재판 중에 노동자로서 성실히 일했던 제 인생은 모두가 가해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좋은 근거로 사용됐다. 피해자답지 않게 열심히 일을 해왔다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김씨의 기고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다시 노동자가 되고 싶습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는 상사와 함께하고 싶고,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동료들과 일하고 싶습니다. 제가 다시 노동자가 되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어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언젠가 꼭 다시 불리고 싶습니다. 노동자 김지은이고 싶습니다.”

 

한편 안 전 지사 사건 항소심은 서울고법 성폭력 전담부인 형사8부에 배당됐다. 항소심 재판은 이달 말이나 내달 초쯤 첫 기일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김지은씨의 기고글 전문은 ‘노동과세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248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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