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선 늪’ 빠진 진도군, ‘배 돌려막기’ 후폭풍에 진퇴양난
  • 전남 진도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8.10.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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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자립도 6.4% 진도군, 국비반납에 막대한 제재금까지 물어야 할 처지

전남 진도군의 국가예산 임의 사용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당장 ‘어떻게 논란을 잠재울 것인가’를 둘러싼 후속 대책 마련이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진도군은 궁리 끝에 나름대로 수습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확정된 사업비는 당초 목적에 적합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법치 앞에서는 힘을 잃고 있다. 백약이 무효인 형국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국비 반납은 물론 막대한 제재금 부담금 부과와 책임 소재로 시끄러울 전망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도군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졌다. 

 

전남 진도군청 전경 ⓒ진도군 제공

 

 

‘없는 배’와 ‘정산 논란’ 사이…진도군은 고민 중

 

진도군이 국가예산을 임의로 사용하고 치르는 대가는 혹독하다. 당장 올해 말로 다가온 사업 정산은 ‘정답없는 난제’다. ‘실체가 없는’ 대상을 놓고 정산서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내려 보낸 국가예산 사업의 세부내역은 하조도 급수선 건조사업인 데도 엉뚱한 배를 건조하면서 빚어진 소극(笑劇)이다. 

 

도서개발사업에 따라 정부가 진도군에 급수선 건조 사업예산을 준 건 2016년이다. 따라서 군은 올해 말까지 예산을 쓰고, 내년 3월까지 회계 정산을 마쳐 회계(실적)보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우선 회계보고서에 어떻게 기재할지가 고민거리다. 차도선을 지어놓고 급수선을 건조했다고 적시하면 허위보고는 물론 허위공문서 작성이 된다. 자칫 문제 해결은커녕 사법처리라는 최악의 사태를 자초할 우려마저 낳는다. 이 때문에 진도군이 애초 목적대로 ‘급수선 건조사업’으로 회계보고를 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란 게 관가의 중론이다. 

 

그렇다고 차도선 건조로 보고하기에도 난감하다. 이는 국가보조금 임의사용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이 경우 진도군은 상황에 따라 여객선 건조에 써버린 급수선 예산 37억8000만원을 반납하거나, 최악의 경우 5배인 200억원을 물어야 처지에 놓이게 된다. 국가재정법상 예산을 잘못 썼을 경우 최대 5배의 제재 부가금을 부과하게 된다(강행규정). 재정자립도 6.4%의 진도군 형편상 이 또한 취하기 어려운 선택지라는데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진도군의 무리수, 혹독한 대가…승부수도 ‘법대로’ 앞에 백약이 무효 

 

자체 예산으로 급수선을 만들고 정산하는 방안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진도군의 재정 형편상 당장 수십억의 군비를 짜내기가 어렵다. 군의회의 승인을 얻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시간과의 싸움도 남아있다. 재원을 조달해 급수선을 새로 짓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지만 남은 석달여 안에 급수선을 짓기가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이 모두가 결국 군민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이들 방안 선택에도 무리가 따른다. 

 

뾰족한 묘수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진도군이 작심하고 꺼내 든 카드가 이른바 ‘경미한 변경 사안론’과 ‘적극행정 면책론’이다. 두 카드를 활용한 승부수는 나름대로 세밀한 전략에서 나왔고, 이번 사안에 임하는 진도군 측의 항변 논리를 엿볼 수 있다. 

 

진도군은 우선 차도선 건조가 ‘경미한 변경’ 사안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사업계획 변경이 도서개발촉진법 시행령 제9조에 따른 경미한 변경사항에 해당된 것으로 판단해 해당 사업을 추진했다는 논리다. 진도군은 이 사업이 도서종합개발사업 대상에 해당되고, 이에 따라 사업계획을 변경해 반영하는 것이 가능하며 선박의 활용 범위를 확대해 다목적 선박 건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적극행정 면책제’는 비록 규정을 바꿔 행한 일의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고의나 중과실이 아니면 책임을 면하거나 감해주는 제도다. 책임을 줄여 줄테니 업무에 적극적으로 나서보라는 취지다. 최근 뒤탈 걱정에 바짝 엎드린 공직사회의 소극적 보신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를 원용해 진도군은 섬 교통문제가 급수선보다 더 시급해 적극행정 차원에서 차도선을 건조했다고 항변했다. 진도군 관계자는 “개인적인 착복이나 비리가 아니고 주민 편의를 확보하려는 ‘적극 행정’ 차원에서 빚어진 일인 만큼 이 부분을 살펴봐 달라”고 하소연했다.

 

진도군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도선이 건조된 배경을 살필 필요가 있다. 지난 2015년 3월 가학~가사도를 운항하던 민간선사는 가사도 항로 주변 어민들의 집단민원과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돌연 운항을 중단했다. 여객선이 끊긴 가사도 주민들은 광물운반 화물선에 의존해 육지에 내왕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에 진도군은 3차 도서종합개발사업비 40억여원 중 25여억원을 끌어다 조도면 가사도 주민 교통 편익을 위해 150톤 규모의 여객선(차도선)을 건조했다. 국토부가 급수선을 지으라고 국비를 내줬지만 임의로 사업계획을 변경해 여객선을 건조하는 데 쓴 것이다. 

 

 

작심 카드 ‘경미한 변경 사안론’ ’적극행정론‘…승부수인가 자충수인가

 

이른바 ‘배 돌려막기’도 적극행정의 일환이라고 강변한다. 진도군은 지난해에 끝난 3차 도서개발사업의 급수선 사업과 올해 시작된 4차 도서개발사업의 차도선 사업을 맞바꾸는 안을 짜냈다. 군은 최근 용역 발주 직전 단계에서 중단했지만 4차 도서개발사업에서 차도선 건조 사업비로 확보한 25억원의 국비를 급수선 건조에 쓰기로 하고 우선 6000만원을 들여 실시설계를 착수한다는 구체적 실행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두 논리 모두 치명적 허점을 내포하고 있어 국토부가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진도군은 안이했다. 주무부서 과장 등 실무진은 지난 7월 지역구 국회의원실과 국토부, 익산국토관리청 등을 돌며 이 같은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면 먹혀들 것으로 봤다. 물론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행안부 담당자로부터는 ‘포괄적 의미에서 사업목적을 상실하지 않았으며 경미한 사항 변경기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등의 긍정적 의견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행 도서개발촉진법상 경미한 변경 사유는 사업장 위치변경이나 물가상승으로 인한 예산증액 등에 한정돼 있는데다 필수적으로 취득해야 할 전남도지사의 사전 승인을 빠뜨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계산이 완전히 어긋났다. 

 

진도군이 정부의 사업계획 변경 반대에도 불구하고 급수선 건조 사업비를 끌어다 지은 차도여객선 '가사페리호' ⓒ시사저널 정성환

 

 

이도 저도 틀어져 예산 정산이 어렵게 되자 진도군은 국토부의 입장 번복만 바라고 있다. 뒤늦게 급수선의 차도선 건조로의 사업계획을 변경해달라는 것이다. 이 또한 미지수다. 2년 전 진도군의 사업계획 변경 신청을 불승인한 국토부가 이제 와서 자신의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앞서 진도군은 2016년 7월, 60톤급 급수선 건조사업을 150톤급 차도선 건조사업으로의 도서종합개발사업 개발계획을 변경해달라고 국토부에 승인 신청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그해 8월 차도선 건조사업은 도서개발촉진법 상 지원사업이 아니므로 원래 계획대로 추진하고, 차도선은 해양수산부와 협의해 ‘국고여객선사업’으로 별도 추진하라면서 불승인 통보했다. 그럼에도 진도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도선 건립을 강행했다. 진도군 행정을 두고 ‘떼쓰기 배짱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토부와 사무를 위임받은 익산국토관리청의 태도는 강경하다. 국가예산은 사업계획 변경 승인이 없는 한 애초 정해진 목적대로만 사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산을 지원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맞도록 집행을 하는 것이 맞다”며 “진도군이 사업계획 변경 불승인에도 불구하고 집행한 사항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확인 후 보조금 반환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계획이다”고 잘라 말했다. 아무리 목적이 ‘선의’인 적극행정이라고 해도 법치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국토부는 국정감사 기간을 감안해 이달 중 현장실사를 통해 국비 집행의 적정성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한 뒤 보조금 반환과 과징금 부과 등 시정조치를 내릴 방침이다. 감사원도 기본자료 수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의 조치 여하에 따라 막대한 재정 부담은 물론 ‘막무가내식 행정’ ‘떼쓰는 지자체’라는 때 아닌 오명까지 뒤집어 쓸 수 있어 이래저래 진도군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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