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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모르는, 美 대법관 임명에 가려진 ‘총성 없는 전쟁’

[재미 변호사가 보는 재밌는 미국] 정치·역사·종교·문화 뒤섞인 '대법관 임명 갈등'…"미국 사회의 초상"

이철재 미국변호사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09(Tue)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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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보수파 대법관 4명과 진보성향 대법관 4명이 팽팽히 맞서던 미국 대법원에서 스윙보트 역할을 했던 중도보수 성향의 안소니 케네디 대법관(Justice Anthony Kennedy)이 은퇴를 발표했다. 온 나라가 들썩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버티고 있는 한 초강력 보수파를 자리에 앉혀 여성의 낙태 권리를 최대한 제한하고, 대법원 자체를 보수 성향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공화당으로선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하지만 민주당과 진보진영엔 악몽과 같은 일이었다.

 

대법원에서 주도권을 쥘 기회는 민주당에게 먼저 찾아왔었다. 오바마 대통령 임기 말년인 2016년 2월 보수의 거목 안토닌 스칼리아(Antonin Scalia) 대법관이 잠을 자다 돌연사했다. 민주당은 애도의 말을 전하면서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상황은 그러나 민주당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당시 상원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은 오바마가 낙점한 중도 성향의 메릭 갈란드(Merrick Garland)에게 청문회도 열어주지 않았다. 대법원 9석 중 하나를 공석으로 남긴 채 14개월을 끌었다. 그리고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을 유지하자, 보수 성향의 젊은 판사 닐 고어서치(Neil Goresuch)를 새 대법관 자리에 앉혔다. 그동안 인준을 기다렸던 갈란드는 매정하게 내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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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버노 대법관 임명’ 둘러싼 공화-민주당의 대립

 

고어서치가 임명되고 약 1년이 지난 시점에 케네디가 은퇴를 선언했다. 트럼프가 최종 낙점한 인물은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 판사다. 그는 예일 법대를 나와 오랫동안 행정부에서 법률 관련 일을 했었다. 최근까진 ‘대법관 공급처’라 불리는 워싱턴 DC 순회고등법원의 판사로 일해왔다.

 

그는 오랫동안 낙태 권리를 인정하는 로우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비판해왔다. 이 점이 보수 진영의 눈에 들어온 배경으로 풀이된다. 또 1990년대 독립검사(Independent Counsel) 켄 스타(Ken Starr) 밑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진 수사를 도왔다는 점도 보수주의자들에겐 매력 포인트였다. 

 

게다가 대통령은 재임 중에 그 어떤 수사도 받지 말아야 하며, 탄핵도 당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트럼프에게 크게 어필했다. 트럼프는 현재 언제 어떤 법적 제제를 받을지 모르는 상태다. 즉 캐버노와 같은 성향의 법관을 대법원에 하나 앉혀놓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할 수 있다. 

 

다만 트럼프가 낙점했다고 그가 단번에 대법관이 되는 건 아니다. 우선 상원 법사위의 청문회와 투표를 거쳐야 한다. 이후 본회의까지 가서 상원의원 100명 중 51표 이상을 얻어야 한다. 바로 11월에 중간선거가 있으니 모든 상원의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뒤에 깔린 기독계와 여성계의 갈등

 

보수와 진보가 맞서는 이슈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단 여성의 낙태권리만큼 양쪽을 자극하는 이슈는 드물다. 근래 미국에선 미국 보수의 뒷배인 보수 기독단체와 근래 미투 운동으로 대표되는 여성계가 캐버노 임명 건을 놓고 사활을 건 싸움을 이어왔다.

 

기독계와 여성계의 대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8세기에 ‘프리처(Preacher)’란 직업이 생겨났다. 미국과 영국 등을 떠돌며 기독교리를 설파하는 전도사, 혹은 설교사를 가리킨다. 이들의 주도 하에 미국에선 두 차례에 걸쳐 기독교 신앙 대부흥(The Great Awakenings)이 일어났다. 프리처들은 ‘복음주의’라는 뜻의 이반젤리컬(Evangelical)로 불리기도 한다. 

 

이반젤리컬은 1730년대부터 기존의 엄격한 교회 성직 제도를 부정하고 작은 기도모임을 주도했다. 또 홀로 발품을 팔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설교를 했다. 덕분에 두메산골과 개척지에 불과했던 서부 지역까지 찾아갈 수 있는 기동성을 갖췄다. 이들이 18~19세기 미국 전역을 떠돌며 공을 들인 덕에, 오늘날 미국의 모든 개신교회는 ‘이반젤리컬 교회’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이반젤리컬이 세를 확장하는 게 늘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기존의 교회를 비판한 이유로 이들은 종종 지방에서 체포돼 감옥살이를 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오늘날의 미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면 당시엔 기존 교회에 반기를 드는 건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반젤리컬이 힘을 얻은 건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 덕분이었다. 열렬한 제정분리주의자였던 그는 정부와 교회 사이에 두꺼운 장벽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영향을 받아 1789년 완성된 권리장전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The Free Excercise Clause)’과 ‘국교 제정 금지조항(The Establishment Clause)’이 들어갔다. 

 

1980년 대선에서 이반젤리컬의 세력을 꿰뚫어본 로널드 레이건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이들을 규합해 지미 카터 대통령을 떨어뜨리고 4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때부터 남부 이반젤리컬 교회는 하나의 정치 블록으로 부상하며 공화당 모든 정치인의 당락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야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헌법 조항 덕에 오히려 이반젤리컬이 세를 키워 미국의 정신과 정치를 휘어잡게 된 것이다.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2016년 미국에선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할리우드의 실세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이 그동안 영화배우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았던 이야기가 뉴욕타임스에 고스란히 실렸다. 이에 그간 침묵하던 배우들이 하나 둘씩 나와 악몽 같은 경험을 고발했다. 사회 전반적으론 ‘나도 직장에서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뜻의 해쉬태그 미투가 SNS를 통해 번져나가면서 하나의 사회운동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면 뉴스 프로그램의 남자 앵커가 전날 성추행으로 해고됐단 소식이 그 프로그램의 첫 기사로 떴다. 여성 앵커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어제까지 같이 일했던 동료가 간밤에 해고당한 얘기를 전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부 각료들이 줄줄이 성추행 혐의로 인해 옷을 벗고, 심지어 41대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조지 부시의 성추행 혐의까지 드러나자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미투 희생자의 대다수인 여성들이 21세기 사회운동의 주역이 됐다고 볼 수도 있다. 

 


‘헌법’으로 힘 얻은 기독계, ‘미투’로 주역 된 여성계

 

여성계는 낙태 반대를 신체 자치권(Bodily Autonomy)을 무시한 가부장적 가치관의 반영이라고 주장한다. 이 지점에서 여성계는 이반젤리컬과 충돌한다. 낙태에 관해 이반젤리컬은 세상을 신의 심판으로 몰고 갈 악의 상징으로 본다. 

 

낙태 금지를 위한 이반젤리컬의 집요한 노력은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 권리를 인정한 1973년부터 시작됐다. 수년간의 물밑 작업 끝에 1987년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퇴임하는 대법관 파웰의 후임으로 보수 성향의 로버트 보크(Robert Bork)를 지명한다. 

 

이반젤리컬은 낙태를 금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좋아했다. 그 기쁨도 잠시, 보크는 상원 인준을 받는데 실패해 퇴장했다. 극우에 가까운 그의 사상이 상원의 반감을 사 같은 공화당 의원들마저 몇몇 반대표를 던졌다. 레이건은 다시 보수파 더글러스 긴즈버그(Douglas Ginsburg)를 지명했다. 허나 그는 학창시절과 하버드 법대 교수 시절에 대마초를 피웠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자진 사퇴했다. 결국 두 번이나 좌절을 맛본 레이건은 중도 보수 성향의 안소니 케네디(Anthony Kennedy)를 임명해 상원 인준을 받았다. 

 

레이건에 이어 41대 대통령으로 등극한 아버지 조지 부시는 1990년 ‘진보의 사자(Liberal Lion)’라 불리던 윌리엄 브레넌(William Brennan)이 퇴임하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때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데이빗 수터(David Souter)를 후임으로 임명한다. 그는 수터를 가리켜 “낙태를 금지할 보수의 스텔스 폭격기”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수터는 상원의 인준을 받고 대법관이 되었다. 그리고 스텔스 폭격기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문제는 그 폭격이 공화당과 이반젤리컬을 향했다는 것이었다. 수터는 대법관이 되자마자 당시 유일한 여성 대법관인 오코너와 중도 보수 케네디를 끌어들여 낙태 권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았다. 그 후로도 그는 역사상 매우 진보적인 대법관 중 한명으로 남았다. 동시에 보수 진영에선 대법관 임명 실패의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낙태 금지’ 번번이 실패해 온 보수 진영

 

수터가 임명된 이듬해인 1991년, 이번엔 브레넌 대법관과 더불어 미국 인권의 수호자이자 미국 최초 흑인 대법관이었던 서굿 마셜(Thurgood Marshall)이 은퇴를 선언했다. 공화당은 그를 대신할 흑인 보수파 클레어런스 토마스(Clarence Thomas)를 찾아냈다. 

 

토마스는 청문회 도중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직장 동료였던 여성 법조인이 토마스의 성희롱을 고발한 것. 그럼에도 상원 법사위는 그녀를 정신병자 취급하고 온갖 치욕스런 질문을 던져 그녀의 신용도를 떨어뜨린 뒤, 토마스를 인준했다. 당시 법사위 소속 위원 모두가 남성이었다. 이후 토마스는 지금도 대법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토마스의 인준은 여성계를 자극했다. 이후 1992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사상 최다 여성 의원 당선 기록이 나왔다. 1992년이 ‘여성의 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때 당선된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다이앤 파인스타인(Diane Feinstein)은 현재 민주당 법사위 최고위원이다. 

 

한편 지난 2016년 대선 때 트럼프는 이반젤리컬의 지상 목표인 낙태 금지를 이뤄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이반젤리컬은 그다지 기독교적인 삶을 살았다고 보기 힘든 트럼프를 한마음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2018년, 레이건이 임명한 중도 보수 안소니 케네디가 7월 말 퇴임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를 비롯한 보수 진영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내민 카드가 브렛 캐버노다. 



보수의 마지막 카드, ‘캐버노 대법관 인준’

 

상원 법사위에 출석한 캐버노는 여성 낙태 권리에 대한 집요한 질문 공세에 장황하고 원론적인 답변만 하며 잘 피해갔다. 언론은 법사위 통과는 물론 전체 상원 인준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헌데 9월17일 상황이 급변했다. 캐버노가 1982년 고등학교 시절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크리스틴 블라지 포드라는 피해자의 실명과 얼굴마저 워싱턴포스트에 공개됐다. 미투로 대변되는 여성계가 들고 일어났다. 

 

일각에선 “고교 시절 생각 없는 행동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해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라고 쏘아붙였다.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여론도 일었다.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의 밀고 당기는 정치 드라마가 10일 정도 계속되었다. 

 

그 사이 데보라 라미레즈(Deborah Ramierz)라는 캐버노의 예일대 동창이 학창시절 파티에서 그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설상가상이었다. 9월27일엔 결국 블라지 포드가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을 했다. 그녀의 증언이 끝나자 캐버노가 반론을 제기했다. 이날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 청문회는 2000만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월가 증권 거래소가 한산했다고 하니 가히 그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성폭력은 신고가 극히 드문 범죄 중 하나다. 피해자가 수치심에 신고를 하지 않아서다. 또한 범죄가 주로 둘만 있는 공간에서 일어난다. 게다가 1982년이면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도 없던 시절이니 증거가 더더욱 없다. 결국 당사자의 증언으로 끝없는 공방만 계속하기 일쑤다. 이런 공방만 갖고 형법을 적용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대법관 인준은 법의 잣대로 저울질하는 사안이 아니다. 대법관이 될 사람의 자질과 배경을 조사하는 일종의 면접시험이다. 정치와 여론이 더 크게 작용한다. 이날 여론은 피해자에게 절대 유리한 쪽으로 끝났다. 블라지 포드를 마구 비판해 대던 트럼프조차 청문회가 끝나곤 “그녀는 믿을 만했다”며 말을 바꿨다. 청문회 직후 백악관이 비밀리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캐버노에 절대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는 후문이다. 며칠 뒤 정식으로 발표된 여론 조사에서도 ‘피해자를 믿는다’는 반응이 과반이었다.

 


또 성폭행 의혹… 반전에 반전​ 거듭된 대법관 인준건 

 

무엇보다 피해자인 블라지 포드가 심리학 박사학위를 소지한 저명한 교수다. 캐버노 못지 않은 신뢰성을 지녔다. 게다가 이미 8년 전에 자신을 평생 괴롭혀 온 트라우마였던 그날의 일을  상담 치료사에게 고백한 바 있다. 치료사는 그때의 상담 기록을 의회에 제출했다. 또 블라지 포드는 자신이 기억하는 것 외엔 추측성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성실하게 답변을 했다. 이 점이 국민들로부터 큰 점수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캐버노는 달랐다. 분노에 가득 찬 모습으로 청문회에 나와 “이 모든 것이 나를 음해하려는 민주당의 짓거리”란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공정성이 생명인 대법관으로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질문하는 민주당 의원에게 되레 반문을 하며 대드는 불손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줄 것이라며 제출한 1982년 5~8월의 달력이 오히려 자충수가 됐다. 이 달력의 7월 첫째 주에 블라지 포드가 상담 치료에서 언급했던 파티 관련 기록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또 졸업 앨범엔 성행위를 뜻하는 비속어들이 가득 적혀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술 근처에도 안 갔고, 졸업 후에도 몇 년간 성관계를 한 적이 없다”던 캐버노의 과거 발언과 너무 결이 다른 물증이었다.  

 

그럼에도 캐버노는 “졸업 앨범의 비속어는 친구들끼리의 은어였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국회에서 거짓 증언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게 됐다. 의심을 산 부분은 또 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질 정도로 소리 지르던 캐버노가 “그럼 FBI가 이 문제를 전격 조사하길 원하느냐? 당신도 명예를 지키고 싶을 것이 아니냐?”란 질문이 나오자, 우물쭈물하며 “나는 예일 대학을 나왔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등의 상관없는 변명만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블라지 포드는 ‘FBI 수사를 받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단번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여곡절 끝에 청문회가 끝났다. 공화당은 반성은커녕 다음날 곧바로 “법사위 통과 찬반 투표를 하겠다”며 밀어붙였다. 11월 중간선거 전에 이 건을 마무리 짓겠다는 심보다. 당연히 민주당은 FBI의 조사를 요구하며 반대했다. 

 

그러나 다수당인 공화당의 의지를 꺾을 방법은 없었다.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렀을 때쯤, 공화당 제프 플레이크 의원과 민주당 크리스 쿤즈 의원이 손을 잡았다. 서로의 당원들을 설득해 ‘일주일 동안 캐버노의 신변 조사를 FBI에 맡기겠다’는 조건에 합의한 것이다. 

 


역사와 문화, 정치와 심리 뒤섞인 대법관 임명

 

그리고 10월4일(현지시각)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기에 캐버노의 범죄 의혹에 관한 결정적 증거는 없었다. 민주당은 반발했지만 결국 이틀 뒤 캐버노의 인준안은 통과됐다. 해당 인준안에 대한 찬성은 50표, 반대는 48표였다. 이로써 미국 연방대법원은 보수 성향 대법관 5명과 진보 성향 대법관 4명의 구도로 굳혀졌다.

 

만약 그에게 불리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면 공화당은 가만히 있었을까. 아마 그랬어도 공화당의 ‘캐버노 대법관 만들기’는 계속됐을 것이다. 길게 보면 향후 30~40년 동안 대법원을 보수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공화당은 놓치기 싫었을 것이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클레어런스 토마스 대법관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성추행 딱지를 못 떼고 있다. 캐버노 역시 평생 성폭행 딱지를 달고 다니는 대법관이 될 공산이 크다. 

 

캐버노 대법관 임명건은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여기엔 시공을 초월한 미국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다. 또한 정치적 보복 심리와 중간선거를 둘러싼 대립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미국 사회의 초상(肖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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