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 왜곡, 논리적 반박 후 국제사회에 알려야”
  • 조유빈·김종일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2 14:34
  • 호수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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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외교적으로 유리한 상황…대화 주도해야”

1998년 10월8일. 일본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통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했다. 한·일은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은 실현되지 못했다. 일본은 아직도 “위안부는 그들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하고,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 게양을 고집하면서 과거에 대한 반성을 스스로 외면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방침을 밝히면서 한·일 관계는 한층 더 위태로워졌다. 일본 정부는 재단 해산이 2015년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자타 공인 학계 최고의 독도·위안부 연구자로 꼽히는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62)에게 현재의 한·일 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한국인이다. 일본 도쿄대 졸업 후 1988년 한국행을 선택했고, 고려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에는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다(귀화라는 표현은 일본식 표현이라며 스스로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 이름은 그대로 고수했다. 일본 출신의, 일본 이름의 학자가 내놓는 한·일 문제 연구 발표들이 더 집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그가 내놓는 독도와 위안부 역사 왜곡에 관한 연구결과들은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는 한국이 외교적으로 ‘약자’의 위치가 아닌 지금, 일본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한·일 관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그와 별개로 위안부와 독도 등 역사적으로 왜곡된 일본의 주장을 뒤엎을 수 있는, 즉 ‘논리적 반박’을 할 수 있는 연구와 적극적인 움직임이 한국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일본 정부가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현재 등재 보류돼 있는 위안부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될 수 있게 정부 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 이후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방침을 통보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에 정확한 법적 책임이 있다. 이전 정부는 오히려 그것을 무시하고 한국에 불리한 협정을 맺었다. 국제적인 합의 형식을 취했지만, 위안부 문제는 해결된 것이 없다. 역사적 진실이 왜곡됐고, 피해자들의 입장도 왜곡됐다.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정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현 정권의 입장이다. 잘못된 합의로 인해 만들어진, 사실상 어떤 활동도 하지 않는 화해·치유재단은 당연히 해산돼야 한다.”

일본은 재단 해산이 양국 관계는 물론 한·미·일 공조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 주장한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당시 위안부 합의는 북한을 압박하고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강하게 요청해 이뤄진 것이다. 그 내용은 일본 언론에 많이 보도됐다. 지금은 핵 문제를 해결해 가고 있는 상황이고, 북·미 관계도 많이 개선됐다. 경제 중심의 새로운 북한 노선이 시작되면서 비핵화로 나아가고 있다. 남북 간 평화적인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 상황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이 한·미·일 공조에 흠이 된다는 주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당시의 무리한 합의를 재고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이 아무리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해도 국제사회는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완전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위안부 문제는 대만과 필리핀 쪽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안이다. 새로운 차원의 국제 공조가 이뤄질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 간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일부러 파기할 필요는 없다.”

지난 4월 《일본의 위안부 문제 증거 자료집1》이라는 저서를 출간하면서 일본 정부가 범죄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 정부와 군부의 ‘지시’가 없었고 ‘요청과 관여’가 조금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업자들이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것이고, 인신매매에 국가가 관여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업자들을 선정한 과정을 극비로 해야 한다는 공문서, 일본 군사 100명당 위안부 1명을 배정한다는 내용의 일본 다카모리 부대 문건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것이 정부 작성 문건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지금까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은 있었지만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정확한 문서가 없었는데, 증언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많이 발견됐다.”

일본의 주장을 뒤엎을 만한 반박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겠다.

“그 외에도 더 있다. 일본 병사들의 증언이다. 실제 위안소를 이용했던 일본 병사들 중 양심적인 이들이 전쟁 수기를 썼다. 이 수기를 통해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던 여성이 속임을 당해 위안부로 일했던 사례도 밝혀졌다. 가해자인 일본인들이 수기를 통해 고백한 것이다. 오히려 한국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과장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일부 인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 기록물은 더욱더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진실을 더 알리기 위해서다.”

일본은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 등재가 보류돼 있는 상황인데.

“한·일 위안부 합의가 2015년 갑작스럽게 이뤄진 배경 중 하나는 일본이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막기 위해서였다. 합의를 하면 막아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 ‘부담금을 내지 않겠다’ ‘탈퇴하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에 등재가 보류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등재가 보류된 가장 큰 이유는 한·일 양국이 올린 위안부 기록물의 내용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에 위안부연구소가 있지만, 위안부 기록물 등재가 보류된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측의 왜곡된 주장을 논리적으로 풀고, 유네스코를 설득하는 작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4월1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열린 《일본의 위안부 문제 증거 자료집1》 출간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일 문제를 다루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처음 SNS를 시작했을 때,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을 올린 뒤 엄청나게 많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한국인들에게서 말이다. 그중 한 사람이 이메일을 보내 “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었으며, 모두 자발적 의사로 위안부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람은 나에게 “테러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며 수차례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바로 ‘신(新)친일파’다.”

‘신친일파’가 뭔가. 일본의 신친일파 양성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한국인 중 영향력 있는 인물을 포섭해 일본의 주장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청·일 전쟁 이전부터 일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일제강점기에도 친일파 양성 계획이 있었다. 최남선·이광수 등 친일파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포섭을 하려는 사람을 한 번 만날 때마다 300만~500만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실제로 돈을 받았다고 내게 직접 말한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친구’가 되면 일본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시각에서 해석한 만화 등을 읽게 한다. 이렇게 포섭된 신친일파들은 SNS 등을 통해 일본 측의 주장을 퍼뜨린다.”

일본 내에서 혐한이 확산되는 배경은 뭔가.

“한국 신문의 일본판도 그 배경이 된다. 혐한 일본인들이 ‘댓글 부대’ 역할을 한다. 일본 신문은 한국판이 없는데, 한국 신문은 일본판이 꽤 있다. 정보의 공평성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일본을 정확하게 알아야 더 좋은 한·일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심지어 한 매체는 일본을 두둔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댓글 내용을 정리해 일본판 기사로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 해군 국제관함식에서 일본 자위함이 욱일기를 게양하고 참석하려 해 논란이 됐다. 관련해 일본을 두둔하는 의견도 많았다.

“일본 내 일부 의견을 마치 한국인의 의견인 것처럼 퍼뜨리는 것이다. ‘일본 전통 문양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자위함은 치외법권이기 때문에 말해도 소용없으니 그만두자’는 얘기는 일본에서 나온 주장이다. 이런 논리는 일본 극소수 우파에서 나오고, 신친일파들로 인해 한국으로 넘어온다. 일본에서조차 극소수의 의견이 한국에서 확산되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나이 드신 분들조차 욱일기가 침략의 상징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많다.”

욱일기 등 군국주의 상징물을 금지하는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는데 실효성이 있을까.

“충분히 있다. 아무리 자위함이 치외법권이라고 해도 영해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있으면 우리 영해에 올 수 없다. 국내법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일본이 반발 차원에서 한국과 관련된 부정적인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현재 북·일 수교를 위해 한국의 도움이 절실한 일본은 그렇게 못할 것이다.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10월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 행사에 아베 신조 총리가 참석했다는 것이, 일본이 현재 한·일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재 국제관계에서는 한국을 적으로 만들면 북한을 적으로 만드는 상황이 된다. 일본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대화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식적 협정이 아니더라도, 욱일기를 스포츠 행사에는 절대 쓰지 않기로 약속을 한다든가, 평소에는 사용하더라도 한국 영해에 들어올 때는 자위함에 욱일기를 게양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의 서로 양보하는 약속을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제 상황을 보면 우리가 외교적으로 전혀 약하지 않다. 반면 일본은 수세에 몰려 있다. 북한이 수교를 거부하는 것을 일본은 두려워하고 있다. 특히 남북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일본은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자위함 욱일기 게양 논란 이후 북한에서도 이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자 일본은 불참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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