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히로인 4걸, 국제 그린을 평정하다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2 17:04
  • 호수 15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PGA투어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한국 승점 15점으로 잉글랜드·미국 제치고 우승

“저를 비롯해 유소연·박성현·전인지 선수가 오늘 ‘매치의 선수(Man of the match)’였다.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어느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우승이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팀워크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일주일 만에 이렇게 엄청난 팀워크를 가진 팀을 만들었다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싱글매치 우승으로 한국팀 우승을 확정한 김인경)

4명의 ‘그린 여걸’이 한국의 ‘히로인(heroine)’이었다. 주인공은 김인경(30·한화큐셀), 유소연(28·메디힐), 전인지(24·KB금융그룹), 박성현(25·KEB 하나금융그룹). 한국이 10월7일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총상금 160만 달러)에서 화려한 왕관을 썼다. 세계 골프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이 여자골프의 세계 최강국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10월7일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2018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뉴시스

 

“한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운 한 주”

3회 대회 만에 우승 타이틀을 손에 쥔 한국. 우승이 확정되자 대회장을 가득 메운 5만여 명의 갤러리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에 대해 박성현은 “미국에서는 이 정도까지 갤러리가 많지 않다. 수많은 갤러리들이 있는 한국에서 경기하는 게 설레었다. 정말 많은 분들께서 한 샷 한 샷에 환호를 해 줘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그 덕분에 팀이 우승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8개국 골프대전.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스페인·잉글랜드·호주·태국·대만 등이 출전해 4일간 빅 매치를 벌였다. 국가당 세계랭킹 순으로 4명이 출전했다. 2회 대회 우승팀 스페인이 출전티켓을 따지 못했고, 중국도 컷오프됐다. 이 대회의 조별리그는 포볼로 3일간 예선 경기를 펼쳤고, 최종일은 싱글매치로 승자를 가렸다.

최종 7승2패1무로 승점 15점을 획득한 한국은 공동 2위 잉글랜드와 미국을 4점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박인비(30·KB금융그룹)의 대타로 들어온 ‘8등신 미녀’ 전인지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번 경기에서 4전 전승(포볼매치 3승, 싱글매치 1승)으로 8점을 만들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소연도 3승1무로 7점을 얻어 팀 승리에 기여했다. 김인경은 싱글매치에서 최종 우승을 확정했다. 반면, 박성현만 태국의 강호 아리야 주타누간에게 패했다.

이번 대회는 10월4일부터 7일까지 4일간의 경기. 그러나 첫날 1라운드 조별리그만 무사히 끝냈을 뿐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이틀째 2, 3라운드는 조금 파행 운영됐다. 2라운드를 끝내고 연속해서 3라운드를 진행했으나 다 마치지 못했다. 잔여 경기를 치를 셋째 날 경기는 돌풍이 예상돼 취소됐다. 최종일에 잔여 경기를 치른 뒤 바로 싱글매치로 들어갔다. 한국은 이것이 도움이 됐을까. 그동안 뒷심이 부족했던 한국 선수들은 쉬는 동안 충분히 체력보강과 안배에 신경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한국팀은 2014년 대회 창설 이후 세계 골프랭킹 시드 1번으로 우승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하지만 매치플레이에 약한 것이 흠이었다. 이 때문에 제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은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모두 1번 시드를 받았다. 2014년 대회에서는 박인비·유소연·최나연(31·SK텔레콤)·김인경이 대표로 출전해 일본과 공동 3위에 그쳤다. 우승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5번 시드의 스페인이 정상에 올랐다. 2016년 2회 대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최강을 자랑하던 유소연·전인지·김세영(25·미래에셋)·양희영(29·PNS창호)이 출전해 미국에 우승을 내주고 2위에 머물렀다.

이번 대회도 랭킹만 보면 당연히 우승 후보 1순위였다. 세계랭킹의 합산으로 부여된 시드에서 31점으로 1번 시드를 받았다. 세계랭킹 1위 박성현을 비롯해 3위 유소연, 10위 김인경, 27위 전인지 등 최강의 전력이었다. 그러나 기량과 함께 심리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골프 특성을 감안하면 선수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은 ‘세계 최강이라는 중압감’이었다.

유소연은 “선수들이 부담을 느꼈던 이유는 우리의 우승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였다. 그래서 부담과의 싸움이 중요했다. 골프에 당연한 것은 없는데, 우리 팀에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들이 있다 보니 우승하는 게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경기를 했기 때문에 중압감이 컸다. 사실 우리는 개개인의 랭킹은 높을지 몰라도 한 팀이 돼 자국을 위해 경기하는 기회가 많이 없었다. 주니어 시절에도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골프를 세계에서 가장 잘 치는 나라라고 성적으로 증명할 수 있게 돼 한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운 한 주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국가대항전인데 자국 국기 못 달아

이번 대회는 한국의 우승으로 선수는 물론 골프팬들도 즐겁고 만족스러운 대회로 마감하면서 한국 골프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숙제를 하나 남긴 것도 사실이다. 국가대항전이면서 너무 스폰서를 위한 상업성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서 LPGA나 스폰서가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얘기다. 8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출전했지만, 해당 국가의 여자프로골프협회가 전혀 참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번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에 출전한 선수들은 모자나 옷에 자국의 국기를 달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가대항전인 미국과 유럽의 골프대항전 라이더컵이나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세계연합팀의 대결인 프레지던츠컵은 출전 선수들의 해당 국가 투어단체와 공동으로 주관해 열리고 있다. 또한 LPGA투어의 또 다른 국가대항전인 솔하임컵도 LPGA투어와 유럽여자프로골프(LET)가 공동으로 주관해 열린다. 라이더컵, 프레지던츠컵, 솔하임컵은 상금 없이 자국의 명예를 위해 뛴다. 하지만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은 명예와 함께 상업성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총상금 160만 달러에 우승팀에 40만 달러가 돌아갔다. 2020년 LPGA투어 8개국 국가대항전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