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신념보다 법과 양심을 생각해야 할 때”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2 17:08
  • 호수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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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양심》 펴낸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사람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며 산다. 정직한 사회에서는 정직한 사람으로 살고, 부정직한 사회에서는 부정직한 사람으로 산다. 법보다 자연스러운 윤리나 도덕에 의지하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더 자연스러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위협의 법이 아닌 덕의 정치는 무엇보다 부끄러움을 알게 하는 정치다.”

‘한국 인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법과 양심》을 펴냈다. 이 책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김 교수가 강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엮었다. 헌법재판소·사법정책연구원·사법연수원 등 사법기관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던 강연을 모아 정리하다 보니, 그 주제는 ‘법’과 ‘양심’이었다. 양심의 문제를 생각하는 사회적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회고하는 김 교수는 ‘양심이란 무엇이고,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그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 ‘법과 양심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상호 작용하는가’ 등을 이야기한다.
 

《법과 양심》 김우창 지음·에피파니 펴냄·336쪽·1만6000원 ⓒ 뉴스뱅크이미지

 

 

“정치적 정의 실현, 악을 만들어내는 사회 조건 향해야” 


“사법정책연구원 최송화 교수가 초청해 강연했던 적이 있다.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너무 없기 때문에 나를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듣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문제를 놓고 이야기할 때 ‘내 편이냐 저쪽 편이냐’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생각해 본 사람이 굉장히 적어서 그랬을 것이다.”

김 교수는 “법은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행동이나 언어에 의해서만,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 말하지 않은 것, 행하지 않은 것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정당한 절차는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법으로 제정돼 있어야 한다. 또 관례로써 수립돼 있어야 한다.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법관들이 다 자기 양심에 따라 재판하게 되면 법 제도라는 게 없어져버린다. 있다 해도 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당성이 없어져버린다. 한 사람의 양심이 절대적인 건 아니지 않은가.”

김 교수는 문학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론이 아닌 문학으로써 접근하는 것은, 문학·법·정치·철학이 한 덩어리가 돼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법은 두 가지로 우리와 관계가 있다. 하나는, 범법을 하지 않는 한 법은 나와 상관없다. 아마 일생 동안 법과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이니까 존재한다는 것이다. 법은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다. 그러니까 법이라는 건 우리 일상생활과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하는 사람들도 사람 사는 문제를 알아야지, 그것 없이는 법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회나 국가의 질서가 덕으로만 유지될 수는 없기에, 법은 중요하다. 그러나 덕의 배경 없이는, 법은 폭력에 직결되며 내면적 설득을 통해 얻는 권위도 없게 된다. 사람 사는 문제를 나 몰라라 하는 법은 보통 사람들에게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공적인 차원에서의 도덕적 명령을 절대화하면 그것은 쉽게 개인적 이익을 도장하는 공허한 명분이나 수단이 된다. 현대사회 사회적 균열의 대부분은 확신의 체계가 된 정치적 이념으로 인한 것이다. 이때 도덕적 명분은 권력과 탐욕의 장에서 쉽게 발견되는 공동 통화(通貨)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명분적 도덕이 자아를 부풀리기 위한 수단이 되고, 도덕적 언설의 범람과 도덕적 타락이 상호 자극하면서 진정한 인간적 도덕의 기준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좋은 사회는 인간적 현실의 여러 요소가 균형 이룬 사회”

김 교수의 글이 지닌 사회적 성격은 경직되고 폭력적인 모든 것에 대한 강인하고 집요한 경고와 회의다. 우리 밖의 정치적 억압과 우리 안의 탐욕스러운 욕망이 함께 뒤범벅돼 나타난 폭력의 경직성은 우리 모두의 삶을 ‘짧고 저열하고 짐승스럽게’ 만든다. 더구나 그 폭력은 밖에서 강제된 물리적 폭력일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영혼 안에 감춰져 있던 폭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가 간단하지 않다.

“강한 신념의 인간들이 부딪치는 곳에서 대결은 불가피하다. 우리는, 비천한 동기가 아니라 고귀한 인간적 동기에서 나오는 높은 도덕적 선택이 야기하는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갈등은 인간 현실의 불가피한 현실이다.”

김 교수는 ‘개인의 양심’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갈등이 첨예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서로의 양심을 못 믿어서’라고 꼬집는다. ‘나는 양심적이지만, 당신도 양심적인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양심을 싸움의 수단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고 설명한다.

“‘나는 양심적이야’라고 하면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다. 양심이라는 것도 매우 복잡한 건데, 사실은 법도 그렇다. 어떻게 시행돼야 하는지, 어떤 때는 시행되는 게 잘못이 되는지, 이런 걸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건 굉장한 훈련을 통해서 이뤄질 수도 있지만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면 괜찮다.”

김 교수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한다. 정치 지도자가 사람을 죽이는 경우, ‘더 큰 정의를 위해서는 이 사람을 죽여야 된다’고 하면서 자신을 내세우고 정의라는 미명하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정치적 정의의 실현은 악인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악인을 만들어내는 사회 조건을 향한다. 그리하여 악인도 희생자라는 관점이 성립한다. 불교의 ‘자비’는 인생이 슬픔의 바다라는 생각에 이어져 있다. 슬픔은 사람의 마음을 모든 것에 열어놓는다. 좋은 사회란 진실의 사회라기보다는 인간적 현실의 여러 요소가 균형을 이룬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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