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가, 우리 사회가 괴물을 낳기 시작했다”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26 14:59
  • 호수 15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쇄살인 추적기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펴낸 권일용 프로파일러

“‘한국 이상 범죄 유형과 특성’이라는 연구결과를 보면 사소한 일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범죄 유형이 분류돼 있다. 거길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분명히 범행 계획이 수립된 경우가 있다. 그건 무작정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게 아니라, 그 자극에 대해 내가 어떤 방식으로 공격할 것인가를 짧은 시간 내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본인의 의식과 책임이 반드시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을 우발적 사건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그렇다. 갈등 관계가 형성되자 범인이 자기 집으로 범행 도구를 가지러 갔다. 돌아와서도 범행 도구로 바로 공격한 게 아니라 신체적 공격을 먼저 했다. 이 행위가 나타내는 의미는 내가 범행 도구를 사용했을 때 나타날 결과를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이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로 알려진 권일용 동국대 교수는 최근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은 가해자가 철저히 계획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진행자가 “이것도 묻지마 범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느냐”고 묻자 권 교수는 “묻지마 범죄의 핵심은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PC방 내 다툼이 살인의 본질적 동기가 될 수 있느냐는 접근보다는 그 다툼이 범행을 촉발한 트리거 역할을 했느냐는 쪽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최근 논픽션 작가 고나무씨와 함께 자신의 수사 체험을 담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펴냈다. 이 책에서 끔찍한 사건들의 원인과 범죄자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다. 권 교수는 순경 공채 형사기동대 형사로 경찰 생활을 시작해 ‘프로파일링’이라는 말조차 생경하던 시대에 국내 첫 프로파일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범죄 심리분석의 불모지와 같던 한국에서 범죄자들과 직접 부딪치며 그들의 심리를 철저히 연구해 프로파일링의 기반을 닦아놓는 한편, 경찰청 프로파일링 팀인 범죄행동분석팀 창설에도 깊게 관여했다.

 

ⓒ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권일용·고나무 지음·알마 펴냄 280쪽│1만4400원



“고립된 사람들이 범죄 저질러”

“‘왜 범죄자가 되었느냐’보다는 같은 시기와 상황을 교감하면서 누구는 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만난 범죄자들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사회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 중에서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은 왜 저지르지 않는가를 보면 주변에 자신의 고민을 듣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달랐다. 범죄 예방은 문단속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고립되지 않도록 국가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그 문제를 결국 남에게 발산하는 것이다.”

프로파일러는 범죄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범인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가 왜 이 장소에서, 이 사람을, 이런 방식으로 해쳤는지, 어떻게 움직였고, 무엇을 신경 썼는지, 행동을 분석하고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고 권 교수는 강조한다. 또, 범인을 잡기 위해 범행이 일어난 시간에 그 장소에 가서 분위기나 주변 풍경을 살피고 범인의 마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도 말한다.

“과학적인 단서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다면 진술을 분석하거나 범인의 행동으로 무언가를 유추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범죄 패턴이 변화하는 지금은 ‘왜 이 사람이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 선택의 동기는 무엇인지, 동기가 어떻게 형성돼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아야 한다.

권 교수는 “인간은 하나의 정보 체계다. 이 정보 체계는 주로 외부로부터 주어져 구성된다. 가정교육, 학교 등이 한 개인에게 모종의 정보 체계를 입히고, 개인은 그 정보 체계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범죄자는 악(惡)의 정보를 체계화해 받아들인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사이코패스는 아예 정보 체계 자체가 ‘악’인 사람들”이라며 “악의 정보 체계를 가진 사이코패스가 세상에 자신의 폭력을 은밀하게 관철시키는 방식을 이해해야만 그것과 싸우고 그것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범죄로 인한 고통의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순경 권일용이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되고 그의 프로파일링 팀이 탄생하는 과정과, 그들이 사건 현장에서 기존의 관습과 고정관념을 딛고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2000년에 처음 과학수사계가 생기고, 프로파일러로 발령이 났을 때만 해도 경찰 조직 내에서 프로파일러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그때만 해도 범죄의 이유가 단순했다. 원한이나 보복 등 관계에 의한 것이 많았고, 현장에서 세세하게 조사하고 수집한 증거물만으로도 범인이 검거되는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유영철이 나타났다. 이건 동기나 목적이 불분명한 범죄가 사회에서 벌어진다는 의미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획한 범죄이기 때문에 현장에 증거가 거의 남지 않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권 교수는 이 책에서 “이 시대가, 우리 사회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괴물을 낳기 시작했구나”라고 탄식한다. 유영철·정남규·강호순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범죄자들이 일으킨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에 참여하고 그들을 인터뷰한 프로파일러가 바로 권 교수였다.

“사람들은 ‘왜 연쇄살인범 같은 괴물이 태어나는가’라고 묻는다. 총체적인 답은 여전히, 내 능력 밖이다. 다만 분명한 점은 있다. 1960년대나 1970년대 중반까지는 양극화니 뭐니 할 것 없이 대다수가 못살았잖은가. 그러다 1970년대 중반부터 급격한 양극화가 이뤄지고, IMF 구제금융 사태로 극심해졌다. 아울러 익명성이라는 도시 공간의 특성도 두드러졌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197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가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고 본다. 모든 것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된, 성과로 판정되는 가치관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연쇄살인범을 낳은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