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유린 계속”vs“미국의 어용나발”…북·미 갈등 재점화하나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8.10.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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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대북 제재 갈등 계속되며 종전선언 안갯속...정부 "상호 합의점 찾기 쉽지 않아"

미국과 북한의 ‘평화 무드’에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비핵화 시기와 방법론 등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남북 정상회담 전후로 잠잠해졌던 서로의 대한 비방전도 재개되는 모양새다. 북·미 간 협상이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넛크래커(양측 사이에 끼여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 신세에 놓였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정부 내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이틀째인 9월19일 평양 시민들이 거리를 지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인권 언급하며 ‘재제 유지’ 천명한 미국

 

미국과 북한의 샅바싸움이 거세진 것은 이달 들어서다. 지난 9월 남북 3차 정상회담 전후로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폐기’ 의지를 다시금 천명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0월7일(현지시각) 트위터를 통해 "가까운 미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기를 고대한다"며 화답했다. 연내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흘러나왔다.

 

다만 훈풍은 거기까지였다. 북·미​ 간 해묵은 논쟁거리인 ‘인권 문제’가 다시 고개를 쳐들면서, 화해기류에 다시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북한이 핵 폐기에 대해 선제적인 움직임을 취하지 않자, 미국이 대북 제재를 유지하기 위한 카드로 인권 문제를 다시 꺼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핵을 지닌 북한은 아직 ‘정상국가’로 대우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실제 조너선 코언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는 뉴욕 유엔본부에서 10월23일 열린 북한인권토론회에서 "북한 주민들은 북한 정권에 의해 악명 높은 인권침해를 당해왔다"며 "유엔이 지속해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해 왔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비핵화 없이는 대북 제재 해제가 있을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북한이 중국·러시아와 함께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하며 발표한 공동성명을 유엔의 공식 문서로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들에 회람시킬 것을 요청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에 대한 논평 요청에 국무부는 "북한이 비핵화에 실패할 경우 제재는 완전한 효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재무부는 북한의 ‘돈줄’을 계속해서 압박하고 있다. 지난10월25일(현지시각) 미국 재무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싱가포르 무역회사인 위티옹 유한회사, WT 마린 유한회사, 그리고 위티옹 유한회사의 책임자이자 주요 주주인 싱가포르인 탄위벵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고 밝혔다. 현금 세탁, 상품 및 통화 위조, 현금의 대량 밀수, 마약 밀거래,북한 및 북한의 고위 관리들이 관여돼 있거나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른 불법적 경제 활동에 연루된 혐의를 적용했다.  

 

심기 불편한 북한에 정부 입장도 난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미국이 대북 제재 고삐를 풀지 않자, 북한도 맞불작전에 나섰다. 아직 북·미​ 간 협상의 여지가 남아있는 만큼, 과거만큼 미국에 대한 비난의 수위는 세지 않다. 그러면서도 미국을 비롯한 제재 참여국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며,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고 있다. 

 

북한 최초의 법률사무소인 고려법률사무소가 지난 10월10일 중국 현지 로펌과 만난 자리에서 발표한 ‘북한 법률사무소 소개서’ 등에 따르면([단독] ‘평양판 김앤장’ 북한 로펌 실체 공개 기사 참조), 정일남 고려법률사무소 소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과 서방세계의 일부 나라들에서 공화국의 사법제도에서 재판의 독자성 보장이 마치 다른 권력기관이나 어떤 외부적인 간섭을 받기 때문에 극히 억제되고 있으며, 판결의 공정성 보장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는 듯이 현실을 왜곡하여 국제적인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무근거한 주장들은 인권이 최대로 존중되고 사회생활의 여러 면에서 인간의 자주성 실현이 현실로 되고있는 우리 공화국의 진면모를 너무도 모르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자산계급의 어용나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월28일 '협력으로 미국의 제재에 대처하려는 중로(중러)'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러 사이에 강화되고 있는 교류와 협력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중국과 러시아는 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이해관계에서 공통점을 찾고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는 길로 나가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미국과 대척점에 서있는 국가들을 옹호하면서, 미국의 심기를 ‘고의적으로’ 건드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월 들어 북·미​ 간 냉기류가 확산하자, 우리 정부의 입장도 난처해지는 모양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가 완료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대북 압박을 이어갈 것이란 의지를 보여준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바라고 있는 우리 정부가 북한을 달랠만한 마땅한 카드를 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의 경제 형편이 외부에 알려진 것만큼 나쁘지 않다. 즉, ‘당장 굶어죽을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낮은 자세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미국이나 북한을 비롯한) 모두의 이익을 찾는 게 쉽지는 않다. 연내 종전선언 역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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