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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종전선언’ 대신 ‘제재 해제’로 승부수

北, 핵 개발 몰두로 체제 붕괴된 전철 밟을까 우려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10.29(Mon) 14:00:00 | 1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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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월17일 대북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열흘 전인 10월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는 큰 변곡점을 맞았다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은 종전선언을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의 상징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6월12일 발표된 싱가포르 합의문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관련 학계에선 첫 번째 문항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의 실천 방안을 종전선언, 두 번째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평화협정’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완성은 세 번째 문항에 나온다. 북한은 이 합의문을 근거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이 선행돼야 비핵화를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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核 이중성 우려한 北, 경제건설에 총력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기대는 한·미 양국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북한은 하반기 남한과의 여러 협상 루트를 통해 비핵화의 조건을 전향적으로 바꾼 모습이다. 당초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대로라면 세 번째 수순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지만 지금 전개되는 흐름상에는 한 단계 앞서 있다. 이후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 대한 국제기구 및 전문가들의 검증을 허락할 뜻을 내비쳤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의 구체적 상응조치가 뒤따를 경우라는 가정을 붙여,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폐기 의사까지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유럽을 순방한 자리에서 이러한 북한의 뜻을 재확인했다.

여기서 말하는 구체적 상응조치란 뭘까.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해외 언론들은 이를 종전선언으로 여겼다. 그게 바뀐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북한의 기조 변화는 9월말부터 감지됐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9월2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제재가 우리의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우리의 핵실험과 로켓 시험을 문제시해 숱한 ‘제재 결의’들을 쏟아낸 안보리지만 그 시험들이 중지된 지 언 1년이 되는 오늘까지 ‘제재 결의’들은 해제되거나 완화되기커녕 토씨 하나 변한 것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재 해제에 대한 북한의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이때부터다. 이후 10월초부터 북한은 가용 매체를 총동원해 종전선언은 뒤로 빼고, 대신 대북제재 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전략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10월2일 조선중앙통신이 “종전선언은 비핵화 조치와 맞바꿀 흥정물이 아니다”라고 한 데 이어 노동신문은 10월12일 “100년이고 제재를 하겠으면 하라”고 주장했다. 10월16일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한 만큼 “이를 걸고 조작한 제재들도 사라지는 것이 순리”라며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간 협상 테이블에서 종전선언 대신 제재 해제가 앞서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북한의 요구사항이었던 선(先) 종전선언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올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10월 남북은 2차 정상회담 직후 합의안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 제4조에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제4조의 내용은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고 돼 있다. 당시 종전선언의 개념은 지금의 평화협정 체결과 혼재돼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 4·27 판문점선언을 통해 남북은 정전협정 다음에 진행돼야 할 프로세스로 ‘종전선언→평화협정’이라고 봤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하나로 묶기는 힘들다. 물론 그때도 종전선언의 필요성과 참여 주체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종전선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국제법상 정의부터 살펴보는 게 먼저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최근 펴낸 ‘이슈브리프’에 따르면, 국제법 분야 최고 권위자인 이스라엘 학자 요람 딘스타인은 “전쟁은 기술적이든 실질적으로 둘 이상 국가들 사이 적대적 상호작용”이라고 봤다. 딘스타인의 근거를 토대로 본다면, 기술적인 측면에서 현재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끝난 게 아니다. 하지만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에서는 사실상 전쟁이 끝났다. 사실상 종전 상황인데 또 무슨 선언이 필요하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차라리 평화협정으로 바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평화협정으로 바로 간다고 해도 법적 장애물은 없다. 세계 역사에서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구분해 진행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 보니 한·미 양국의 보수층에선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종전선언에 분명 꼼수가 있을 거라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종전선언에 따른 유엔사 및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 요구다.

이뿐만 아니라 종전선언은 정치적 부담이 뒤따른다. 한번 선언하면 번복하기 어렵다. 한·미 보수층에서 양국 정부를 향해 종전선언에 신중함을 요구하는 것도 나름 이유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종전을 선언한 후 북한이 후속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다시 선전포고를 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며 섣부른 종전선언에 우려를 표시했다. 현재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기저는 2000년대 중반 북·미 대화 국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장 9·19 공동성명이 논란이다. 2005년 9월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 IAEA(국제원자력기구)로 복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평화협정과 단계적 비핵화를 약속했다. 지금과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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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리 사찰로 종전선언 언제든 가능하다 판단

물론 북한은 이번에 한·미 양국을 향해 일정 부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한 우리 측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던 것도 한·미 보수층을 겨냥한 발언이다. 종전선언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뒤로하고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논란이 있는 것은 뒤로하고 현실적인 문제부터 풀자는 의도로 볼 수도 있다. 제재 해제는 북한 경제라는 실질적인 문제가 결부돼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 상황을 고려한 측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소리(VOA)는 김성 주유엔 북한 대사가 10월9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 제2위원회(경제·금융·개발 담당)에서 “대북제재로 인민의 존재와 개발 권리가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10월19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북한 경제개발 의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은 2016년 5월 7차 당대회를 통해 과학기술 건설과 경제강국 건설 및 경제발전 전략을 제시했다. 에너지와 식량 문제 해결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면서 경제의 현대화와 정보화를 통한 지식경제 건설을 약속했다. 그랬던 북한에 변화가 엿보인 것은 올 4월 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 병진 노선의 완성을 선언한 것부터다. 이때부터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하는 것을 새로운 전략으로 제시했다.

정리하면, 김정은 정권은 경제개발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을 가장 걱정하고 있으며, 지금의 유엔 대북제재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외교·안보·통일 분야 4개 국책연구기관 공동 학술회의에서 “김정은 시대에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공식적으로 다시 재현할 가능성은 낮다. 제반사항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곧 심각한 체제 위기로 연계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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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은 제재 완화와 한·미 연합훈련 중단?

핵이 가진 이중성도 김정은 정권으로선 부담이다. 기본적으로 핵무기는 완성 단계 직전까진 대외 협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정작 만들어지면 목표의식이 떨어진다. 현실적으로 핵 버튼을 누를 수 없다. 반대로 핵무기 개발에만 전력하는 사이 국민들의 생활고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조동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은 “소련의 체제 붕괴는 핵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정권이 핵무기 개발에 열중하는 사이 주민들의 경제난은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하용출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교수도 7월20일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가 주최한 브라운백세미나에서 “북한은 현재 두 가지 딜레마에 빠졌다. 하나는 핵을 개발하면서 경제 문제를 터치 못 한 것이고, 두 번째는 핵을 개발하고 난 뒤의 딜레마인데, 핵을 가지고 뭘 하느냐는 것이다. 핵무기를 군사적으로 활용하다 보면 결국 소련처럼 한계가 생긴다”고 말했다.

종전선언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애초부터 미국이 종전선언을 위한 선제조치로 핵시설에 대한 검증·사찰을 요구했는데,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한 국제기구의 사찰을 공언한 이상 미국으로부터 종전선언을 받아내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북한의 상응조치는 종전선언과 제재 완화, 북·미 관계 개선이 모두 포함돼 있으며, 이 세 가지를 동시 타결하는 것이 목표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국제 학술대회에서 만날 때마다 북한 쪽 관계자들이 선행조치로 요구한 것이 적대시정책 폐지와 제재 해제였다”면서 “연합훈련 중단과 제재 해제가 대미 협상의 근본적인 목표였지 종전선언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경우에 따라 혼란은 우리 정부의 몫이 될 수 있다. 최근 외교가에선 한·미 양국의 이견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 조치 해제 검토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 좋은 예다. 이런 와중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를 순방한 자리에서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당장 미국 쪽에서는 불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지금, 미국의 협상력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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