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 전문가가 ‘삼성’ 칭찬하고 ‘현대차’ 비판한 이유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29 13:12
  • 호수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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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국 경제 전문가 앤디 셰, “미·중 무역전쟁으로 경기 침체 장기화 불가피”

“한국 경제의 위기와 돌파구는 삼성과 현대자동차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 앤디 셰(Andy Xie) 전(前)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0월24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는 구조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무슨 말일까. 그는 우선 한국 경제 앞에 두 가지 거시적인 변수가 있다고 진단했다. 하나는 세계 경제의 두 축을 양분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사생결단식으로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이다. 중국은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24.8%·홍콩 포함 31.6%)이 가장 높은 국가다. 중국 다음으로 수출이 많은 미국(12%)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규모다.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의존도는 68.8%에 달한다. 무역전쟁의 나비효과가 쓰나미처럼 한국에 몰려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거시적 경기 둔화는 당분간 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은 중국에 무섭게 추격당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분야는 이미 큰 내홍을 겪으며 한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셰는 한국 경제 위기의 상징은 자동차 산업이며, 경쟁력을 갖고 기회를 만들고 있는 산업은 전자라고 진단했다. 둘의 차이는 뭘까. 바로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다. 훌륭한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는 삼성은 때때로 부진을 겪기도 하지만 새로운 제품을 내놓으면 시장이 여전히 반응한다. 한국의 화장품 산업도 마찬가지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는 악재 속에서도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셰는 “한국 자동차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보려는 전략을 버려야 한다. 그래선 중국을 이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일에서 배우라고 조언했다. 세계적인 수요 부진 속에서도 독일 차가 잘 팔리는 이유는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독일 차를 마치 프랑스 명품 옷을 사듯 구매한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이런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개혁을 하면 한국 경제는 더 큰 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 경제를 언급할 때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인 ‘the most important thing’을 반복하며 이 점을 강조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성장 방식이 대충돌한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셰는 미·중 무역전쟁은 신(新)냉전시대라고 부를 만큼 역사적 사건이고, 이로 인해 지난 70년간 진행됐던 세계화의 흐름이 끊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주식시장 대폭락 등으로 세계 경제가 상당한 장기 침체를 겪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셰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1999년 닷컴 거품 붕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을 예견해 명성을 떨쳤다. 모건스탠리 홍콩 본부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를 분석할 때에는 국제 금융가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그가 쓴 리포트에 따라 월가(街)가 중국 경제를 판단할 정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경제 비관론을 펼쳐 중국 정부로부터 ‘미국의 앵무새’라고 불리기도 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향후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나.

“미·중 무역전쟁은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다. 신(新)냉전시대의 개막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역사적인 사건이며, 지난 70년간 진행됐던 세계화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거시적으로 자산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계화의 흐름이 바뀔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뭔가.

“미·중 무역전쟁으로 세계화의 흐름이 끊길 수 있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게 발생할 것이다. 생산 단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4~5%대까지 올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떨어지게 돼 있다. 즉 지난 10년간 자산 시장에서 벌어졌던 일과는 정반대의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장기 침체가 불가피하다.”

미·중 무역전쟁의 근본 원인은 뭔가.

“미국과 중국 경제의 성장 방식이 충돌한 게 지금의 미·중 무역전쟁이다. 미국은 중산층의 불만을 해결해야 하고, 중국은 과잉설비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출을 장려해야 한다. 특히 미국 중산층은 더 이상 이전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어렵다. 미국 경제가 좋다고 하지만 정작 지난 몇 년간 실질임금은 상승하지 않았다. 반면 교육·의료비 등 지출은 크게 늘었다. 세계화가 70년간 진행되면서 기존의 경쟁우위는 다 사라졌다. 즉 희망이 사라진 셈이다. 희망이 없으면 정치적 동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유례가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출된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중국을 겨냥했다.”

중국의 과잉설비 문제는 무슨 뜻인가.

“중국 제조업의 과잉설비 문제는 심각하다. 과잉설비는 과잉투자가 원인이고 이는 곧 거품이다. 자국에서 만든 상품을 내수로 다 소비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답은 수출밖에 없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위안화 평가절하와 수출 장려 정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다.”

향후 미·중 무역전쟁은 어떻게 진행될까.

“단기적인 해결책은 없다고 본다.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계속 잡음이 나올 거다. 미국은 중국에 고(高)관세를 부과하면 쉽게 손을 들 줄 알았는데,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 카드로 맞서고 있다. 장기전에 돌입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세계화가 끊어지면 장기 침체는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산시장에 낀 거품이 터지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주식시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폭락할 수도 있다.”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중국은 지금 위안화 절하로 대처하고 있다. 현재 달러당 6.93위안대인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조만간 7위안(위안화 약세)을 넘을 것이다. 중국은 무역전쟁에서 더 버틸 생각이다. 위안화 절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자본 유출 우려로 중국 정부가 더 이상 위안화 절하를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중국은 자본 유출과 관련해 많은 장벽을 쳐놨다. 다만 이런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은 경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 효율성을 높여서 비용을 낮추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

또 다른 전략은 무엇이 있을까.

“중국은 다른 교역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할 것이다. 특히 중국 내 투자를 늘릴 수 있게 유럽 등의 기업에 특혜를 줄 수도 있다. 일본과의 교역 개선에 나서거나 아시아·태평양 11개국으로 구성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중국의 한국 수출 전략이 바뀔 수도 있나.

“가능하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더 확대하는 식의 움직임도 나올 수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은 ‘무역의 지역화’로 이어질 수 있다. 북미 지역의 무역블록, 동아시아의 무역블록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오랫동안 논의해 왔던 한·중·일 FTA의 물꼬가 트일 수도 있다고 본다. 새로운 무역 규칙이 나올 수 있는 시기다. 이미 중국은 아세안과 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여기에 한·중·일 FTA가 더해진다면 동아시아 무역공동체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오히려 이 기회를 중국이 잘 활용하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내 단일 통화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유로화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유로는 성공적인 단일 경제 공동체 사례라고 보지 않는다. 북유럽과 남유럽의 격차가 너무 크다. 오히려 동아시아가 단일 통화 시스템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중국의 공급망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가령 중국 제조공장에서 스파이칩을 넣는다는 등의 이야기를 퍼뜨려 중국 공급망의 신뢰에 위기를 낳는 식이다. 미국은 고관세 전략만으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 중국이 위안화 절하로 맞서면 그 효과가 상쇄되기 때문이다. 결국 양국은 정보전과 심리전 등을 점점 더 많이 벌이게 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가장 큰 피해를 한국이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거시적으로 경기가 둔화되는 걸 피할 순 없을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의 주력 산업 위축이 우려된다. 특히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충격으로 올 게 자동차 산업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자동차 판매는 계속 줄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중국에 따라잡혔다는 지적이 많다.

“전자 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극명히 대비된다. 삼성은 올바른 전략으로 가고 있다. 삼성은 중국에 진출할 때부터 좋은 기술력으로 프리미엄 브랜드 파워를 제고하려 노력했다. 때때로 부진을 겪었지만 삼성은 브랜드 파워가 확고해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시장이 늘 반응했다. 반면 한국의 자동차 기업들은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프리미엄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큰 경쟁력은 없다. 가격 경쟁력은 이미 중국과 너무 큰 차이가 난다. 가격 경쟁력에 집착해선 중국을 이길 수 없다. 전략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2000만 대 규모다. 이 시장을 놓쳐선 답이 없다.”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강조한다.

“한 국가의 주력 산업 경쟁력이 무엇인지 통찰력을 가져야 할 때다. 중국의 강점은 ‘규모와 속도’다. 어느 나라가 10이라는 비용을 들여 만드는 걸 중국은 1에 만든다. 가격경쟁력은 탈락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주목받지만 아이디어는 금방 전파된다. 독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나온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는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독일에서 배워야 한다. 독일이 바로 기술과 브랜드에 집중했다. 독일 자동차를 봐라. 브랜드가 훌륭하다. 소비자들은 마치 명품을 사듯 독일 차를 산다. 전반적으로 자동차 수요가 줄어도 독일 차는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한국 화장품 산업이 이런 부분을 잘하고 있다. 브랜드 파워가 잘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에 있어 이 점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의 주력 산업은 브랜드 파워를 키워 문화를 팔아야 한다. 근본적인 개혁을 할 수 있다면 한국 경제는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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