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영혼을 잠식하는 ‘메시지 피싱’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02 11:47
  • 호수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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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하늘을 나는 펭귄 무리가 발견됐다. 일부 펭귄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하늘을 날아 남미까지 가기도 한다.”

2008년 4월1일 영국의 BBC가 정규 뉴스 시간에 내보낸 방송 내용이다. 정교한 컴퓨터그래픽 작업으로 펭귄의 비행 모습까지 함께 영상에 담았다. 이후 이 뉴스는 가짜로 밝혀졌지만, 대중은 이 가짜뉴스에 화를 내기는커녕 만족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허위 정보임에도 그 속에 누군가를 음해하려는 의도가 전혀 담기지 않았고 순전히 만우절용으로 특화된 가짜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뉴스 제작의 주체가 세계 최고의 공신력을 자랑한다는 BBC라는 점도 대중에게 분노 대신 웃음을 주는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떤 메시지도 누가 발설했느냐에 따라 달리 들리는 것이 말의 속성이다.

 

ⓒ 연합뉴스


2018년 가을, 한국에서는 고양시의 유류 저장고에서 대형 화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북한에 기름을 퍼주었고, 그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저유소를 폭파시켰다”는 뉴스 아닌 뉴스가 온라인을 통해 퍼져 나갔다.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다. 뉴스에서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그것이 공개되기 전에 팩트체크, 즉 검증 절차를 거치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있다. ‘저유소 폭파’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허위로 지어낸 그냥 ‘아무 말’이었다.

멀게는 신라 시대의 ‘서동요’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세컨더리 보이콧’ 논란까지 가짜뉴스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있었다. 지난 정부에서도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국무회의에서 언급할 정도로 가짜뉴스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운 바 있다.

가짜뉴스가 사회적 논란을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특정한 대상을 음해하고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아무런 책임감 없이 제작·유통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혼란은 결국 사회 전체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교묘한 말로 타인을 꾀어 돈을 갈취하는 것이 보이스 피싱이라면 가짜뉴스는 편향된 의도를 담아 혹세무민하는 메시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홀린다는 점에서 명백한 ‘메시지 피싱’이다.

정치권이 최근 이 가짜뉴스에 문제의식을 갖고 그것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만들기 위해 나서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그런 움직임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거나 특정 정치 세력에 재갈을 물리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그 또한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대다수 국민이 이해할 수준의 묘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인터넷 방송의 확산과 함께 더욱 기승을 부리는 가짜뉴스가 진심으로 걱정되는 이유는 또 다른 데에도 있다. 가짜의 범람 속에서 우리가 점점 그 가짜에 둔감해져 언젠가는 진짜·가짜를 식별할 능력조차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감언이설로 타인의 돈을 노리는 보이스 피싱도 문제지만, 가짜뉴스로 대중의 마음을 낚으려는 메시지 피싱은 우리의 영혼까지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방치할 수 없는 사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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