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하면 누가 나라 지키냐고? 질문부터 잘못됐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11.0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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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체복무 도입 위해 헌법소원 낸 ‘여호와의 증인’ 신도 손학빈씨… “훈련 피하려 잔꾀 부리는 것 아냐”

 

기자가 물었다. “기사와 함께 사진 나가도 괜찮으세요?” 손학빈씨(36)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답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요.” 신분 노출을 걱정했던 이유는 손씨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기 때문이다. 이 종교에 대한 신념이 11월1일 대법원으로부터 ‘병역기피의 정당한 사유’ 중 하나로 인정받으면서 논란이 터져 나왔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날, 판결에 문제를 제기하는 청원 글 240여 건이 청와대 게시판을 도배했다. 보수 성향 개신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연합회는 “법원 스스로 법질서를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성들 사이에선 비판론이 솟구쳤다. ‘병역의 형평성 위배’라는, 대한민국 남성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6일 오후 강원도 인제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손학빈씨가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임준선 기자


 

대한민국 뒤흔든 ‘병역거부 무죄’ 판결

2011년 10월, 손씨는 병역법 위반죄로 구속됐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았던 1심 법원은 그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영장을 받은 뒤로 9년 가까이 병역거부 의사를 밝혀왔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감옥에 있던 2012년 8월 “대체복무제를 허가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리고 거의 6년 뒤인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를 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형기를 마치고 나서야 대안이 생긴 셈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는 교리상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로 망할 것”이라 알려준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서다. 전 세계 만인을 사랑하라는 요한복음의 내용도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병역을 거부한다. 사실 이는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얘기다. 손씨에게 진짜 속내를 듣고 싶었다. 기자는 “군대를 전역한 한 남성으로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한 뒤 질문을 시작했다.

- 군대가 꼭 살상을 위한 집단은 아니지 않나. 전쟁을 대비하는 방어적 성격도 있다.

“모든 나라가 그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군대가 만들어진 태생적 이유가 전쟁 준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폭력적인 집단이라고 본다. 또 어떤 사람은 무력을 키워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무력을 전혀 쓰지 않음으로써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 그럼 강도가 당신과 가족을 위협해도 가만히 있을 건가.

“당연히 무력으로 저항할 것이다. 정당방위 차원에서. 성경에서도 정당방위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무술을 배운다거나 살상훈련을 하는 집단에 들어가는 건 다른 얘기다. 그리스도인이 전 세계에 존재했을 때는 무력 훈련을 하지 않았다.

- 군대의 모든 훈련이 무력에 초점이 맞춰진 건 아니다.

“맞다. 이제 군대에서 이뤄지는 업무의 대부분은 단순 노무라고 생각한다. 나는 수감생활을 서울구치소 의료과에서 보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5시까지 쉴 새 없이 일했다. 매일 1000여 명의 재소자에게 약을 ​나눠주고, 100가지가 넘는 약품 이름을 외우고 정리했다. 내 업무가 군대 의무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니 대체복무제를 통해 병역 거부자에게 군대와 무관한 일을 시키면 된다는 게 내 입장이다. 군대의 힘든 훈련을 기피하려고 잔꾀를 부리는 게 결코 아니다.”

 

 

ⓒ 임준선 기자


 

- 이렇게 생각해보자. 국방의 의무는 납세와 교육, 근로의 의무와 함께 헌법에서 규정한 국민의 4대 의무다. 국방의 의무 외에 종교적 양심에 어긋나는 의무가 또 있다면, 역시 이행하지 않을 건가. 예를 들어 정규교육 과정에 여호와의 증인을 부정하는 내용이 있거나, 이를 탄압하는 정책에 세금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할 건가.

“여호와의 증인은 철저히 성경에 근거해 믿음과 행동의 틀을 잡아 나간다. 로마서 13장 1절엔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하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래서 국가의 규율을 따르려고 한다. 교육 내용이 옳지 않거나 세금이 너무 가혹해도 기꺼이 의무는 따를 것이다.”

- 그런데 왜 국방의 의무에만 순응하지 않는 건가.

“복종엔 상대적인 부분이 있다. 사도행전 5장 29절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게 마땅하다’고 돼 있다. 이처럼 성경의 가르침이 충돌할 땐 하나님을 따르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칼을 잡지 말라고 명령했으니 국가에서 강제해도 따를 수 없다.”

- 현재 국방부가 준비 중인 대체복무안의 골자는 ‘현역 육군 복무기간의 2배인 36개월 동안 교정시설에서 합숙 근무’로 알려져 있다. 찬성하나.

“교정시설 근무는 내가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도 했다. 문제 될 것 없다. 하지만 그 교정시설이 국방부 산하라면 곤란하다. 그 자체가 군대와 관련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순수 민간 대체복무라면 좋을 것이다. 합당한 대안이 마련된다면 근무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유엔은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의 1.5배를 넘을 경우 징벌적 성격을 띤다고 판단한다. 이 부분이 다른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는 있을 것 같다.”

- 그렇게 모두가 대체복무를 하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그 질문은 가정(假定)부터 잘못됐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대체 복무를 할 수 있다면, 다른 나라의 모든 국민도 똑같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니 군대가 필요 없어진다. 또 국방부의 존재 자체도 의미가 없어진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돼도 국방력이 약화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이번 판결에서도 이동원 대법관은 “대체복무를 허용해도 안전보장이 우려되는 상황은 초래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무죄판단을 내린 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친화적인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 최준필 기자

 


- 이번 판결 이후 여호와의 증인 입교에 관한 문의가 빗발친다고 알려졌다. 병역 거부를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만큼 개인의 종교적 양심이 깊다면,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언론을 보면, 종교를 믿게 된 경위와 신앙 기간 등을 종합해 고려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종교적 양심은 타인이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만약 판단의 구체적 기준이 생긴다면, 오히려 진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배제될지도 모른다. 혹은 입대를 앞두고 가르침을 받아 진짜 양심을 갖게 된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 반대로 시간이 흘러 양심이 무뎌지거나 변절할 가능성도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엄격한 규율 때문에 신도로서 진정한 종교적 양심을 갖기가 너무 어렵다. 하지만 끝내긴 너무 쉽다.”

- 그럼 종교적 양심을 내세워 병역 거부를 인정받았는데, 나중에 양심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그러니까 대체복무제의 설계가 중요하다는 거다. 개인의 양심 변화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옥고를 견디다 못해 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다. 단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군복무에 준하는 대체복무를 마쳤다면, 나중에 믿음을 저버려도 그 사람에게 국방의 의무를 다시 지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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