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제주 귤 보낸 날 北 "인권결의안 채택 가담 격분"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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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 회부·최고책임자들 제재 검토 권고" 11월15일께 처리 전망

북한 비핵화 협상 교착기를 맞아 남북간 물밑 신경전도 커지고 있다. 정확히는 북한이 남한의 평범한 행보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모습이다. 

 

2014년 12월18일 북한 인권 결의안 투표가 이뤄지기 직전 유엔 총회 본회의장의 회의가 진행되는 모습 ⓒ 연합뉴스


 

北매체 "南, 깊이 생각해야 할 것"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유엔에 상정된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움직임과 관련해 "그러한 망동이 차후 어떤 파국적인 후과를 불러오겠는가 하는 데 대해 남조선 당국은 심고(深考)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11월11일 밝혔다.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논평을 통해 "최근 남조선 당국이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예정된 북인권결의안 채택놀음에 가담하려는 동향이 나타나 온 겨레의 격분을 자아내고 있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유엔총회에서 인권문제를 담당하는 제3위원회 홈페이지에 최근 올라온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는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과 북한 인권 침해에 가장 책임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 대한 맞춤형 제재를 검토할 것을  '권장한다(encourage)'는 내용 등이 담겼다.

 

ICC 회부와 인권 침해 최고책임자들에 대한 제재 내용은 2014년부터 줄곧 북한인권결의에 적시된 내용이다. 올해도 들어가는 것으로 확정되면 '5년 연속'이 된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오는 11월15일께 북한인권결의안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결의안이 제3위원회를 통과하면 유엔총회로 보내져 12월 중순 채택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유엔총회는 2005년부터 매년 북한인권결의를 채택해 왔다. 2016년과 2017년에는 2년 연속 표결 없이 회원국들간의 합의 방식(컨센서스)으로 결의안을 채택했다.

 

우리 정부는 올해 결의안 마련 과정에 참여해온 만큼 표결로 가든, 컨센서스 형식이 되든 기본적으로 결의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혹시라도 남북 대화 국면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할 여지에 관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0월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국정감사에 참석해 "기권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찬성하느냐'는 후속 질의에는 "컨센서스로 결정되는 것"이라며 "우리는 결의안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과의 대화는 대화대로, 국제사회와의 협력은 협력대로 추진할 계획이다.     

 

 

'대화는 대화대로'…제주 귤 보낸 文대통령 

 

어찌 보면 우리 정부로서 세울 수 있는 당연한 외교 방침이지만, 북한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는 "불과 얼마 전에 역사적인 평양수뇌상봉(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것을 약속하고 돌아앉아 대화 상대방의 존엄과 체제를 악랄하게 중상모독하는 범죄문서 채택에 가담하려 하는 남조선 당국의 태도를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매체는 "남조선 당국의 온당치 못한 행동은 그들이야말로 미국의 눈치만 보며 그에 추종하는 것으로 연명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남조선 당국은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는 격언도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의 실패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미 북한은 11월8일부터 '려명', '조선의 오늘', '메아리', '통일신보' 등 선전 매체를 통해 이런 취지의 주장을 반복해 왔다. 우리민족끼리의 논평에선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는 분석이다.

 

같은 날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북한 측에 제주산 귤 200t을 선물로 보냈다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오늘 아침 우리 군 수송기가 제주산 귤을 싣고 제주공항을 출발, 평양 순안공항으로 향했다"고 발표했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서호 청와대 통일정책비서관이 수송기를 함께 타고 평양으로 가 선물을 북측에 인도한다. 김 대변인은 "지난 9월 평양정상회담 당시 북측이 송이버섯 2t을 선물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남측이 답례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현재까지 수집한 북한 인권 피해 사건은 총 7만1473건, 피해자는 4만2981명이다. 공개·비공개 처형이나 구금 시설에서 폭행 또는 식량·치료 미비로 목숨을 잃은 경우 등을 포괄하는 개념인 생명권 침해가 전체 사례에서 차지한 비율은 1990년대 20.5%였으나 2000년대에는 7.1%로 13.4%포인트 줄었다. 그러다 2010년 이후 사례에선 생명권 침해가 차지하는 비율이 13.3%로, 2000년대보다 6.2%포인트 증가했다. 이에 대해 센터는 "정권 안정, 사회 질서와 치안 유지 정책 강화를 위해 비공개 처형 등의 비율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피의자와 구금자의 권리가 침해된 사건의 비율은 2010년대 전체의 8%로 2000년대(4.7%)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센터는 "김정은 시대 이후 북송된 탈북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처벌 강도가 높아지면서 구금 시설 내 환경이 더 열악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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