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책,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나요?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3 10:07
  • 호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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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 주신 책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나요?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으면 안 되나요?” 이미 오래전 강의실에서 들었던 질문이다. “고전이 무엇인지는 알고 계시나요? 좋은 책이란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랍니다”란 유머도 학생들로부터 들었다. 과연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었던 적이 있기는 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신세대는 검색세대임이 분명한데, 요즘은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구세대요, 신세대는 유튜브로 이동해 갔다는 이야길 들은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이미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이 눈부시게 변화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책만이 유일한 지식과 정보의 원천이라 주장하는 꼰대짓(?)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네 강의실 풍경의 현주소를 돌아보며 진지한 반성을 할 필요는 있으리란 생각이다.  

 

ⓒ pixabay


최근 명문대 출신의 인턴기자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 강의실 풍경을 스케치한 기사를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의 학생이 강의실에 노트북을 가지고 들어가는데 노트북을 켜놓고 무엇을 하는지 관찰한 내용의 기사였다. 노트북을 열고 담당 교수가 올린 강의 자료를 띄워 놓는 학생은 상대적으로 소수였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학생,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학생, SNS 삼매경에 빠진 학생, 노트북 아래 고개를 숙인 채 잠을 청하는 학생, 심지어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는 학생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교수의 강의 내용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대부분 학생들의 변명이었다고 한다.

처음 PPT를 활용한 강의가 시작되자 “적자생존” 곧 ‘적는 자만이 생존한다’는 농담이 등장한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손을 써야 머리를 쓰게 되고 머리를 써야 생각하는 법을 훈련할 수 있다는 나름의 심오한 뜻이 담긴 농담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대학생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검색을 통해 즉각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만큼, 굳이 암기나 필기를 해야 한다거나 책을 손에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한데 이들 검색세대가 필히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검색을 통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과 해당 정보를 오롯이 나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은 완전히 별개의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맹목적이거나 무조건적인 암기는 버려야 할 습관이지만,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의미 있는 과정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검색이란 것이 검색란에 단어 서너 개 치면 주르륵 뜨는 기사나 개인 블로그에 등장하는 내용을 수집하는 것에 그치면 곤란하다. 자신이 원하는 지식과 정보가 집적돼 있는 사이트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인데, 검색세대는 검색이 특기라면서 정작 검색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더욱 중요한 건 검색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진짜 지식이나 알짜 정보는 검색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명 ‘전략적 정보’는 여전히 아날로그 형태로 존재하고 있기에 직접 경험을 통해 획득하거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탐색에 나서야만 한다.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엔 3년 동안 읽은 도서 목록이 포함돼 있다. 이 목록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전문가들조차 읽기 어려운 고전에서부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자기계발서가 뒤섞여 있고, 본인이 작성한 간단한 서평은 출판사의 책 소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책읽기의 기쁨은커녕 책 선택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채 대학에 입학한 후, 책을 가능한 한 멀리하면서 필기조차 마다하는 21세기 대학생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도 좋을지 의구심이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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