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난에서 조우한 공자와 생강차
  • 서영수 차(茶)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4 11:14
  • 호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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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Tea Road] 몸과 마음 깨우는 생강은 ‘신이 내린 약재’

지난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대만(타이완)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타이난(臺南)은 대만 최초의 수도였다. 타이완이라는 지명도 타이난 해안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 타이워완(臺窩灣)족과 그들이 살던 커다란 만을 지칭하던 대완(大灣) 또는 대위안(大員)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대만을 이주(夷州)로 기록했다. 한족이 이주했다는 첫 기록은 ‘진시황이 원하는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실패한 서복(徐福)이 죽음을 피해 이주에 정착했다’는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나오는 사례가 처음이다.

 

ⓒ pixabay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타이난

대한민국 광주광역시와 자매도시인 타이난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답게 ‘최초’가 붙은 유적지가 많다. 1665년 대만 최초로 세워진 타이난 공자묘(孔子廟)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동시에 대만 최초의 교육기관이었다. 대만 국가1급 고적으로 지정된 공자묘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반드시 말과 탈것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라는 ‘하마비’가 있다. 대만은 공자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제정해 매년 9월28일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大成殿)에서 공자의 직계종손이 주관하는 석전대제(釋奠大祭)를 거행한다.

1949년 장제스(蔣介石)가 77대 적손(嫡孫) 공덕성(孔德成)을 대만으로 모셔온 이후 공자의 직계적손은 대만에서 대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역대 황제들에게 권력을 인증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졌던 공문(孔門)의 적손이 장제스와 함께 왔다는 것만으로도 장제스는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중화권에서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로 인정받는 공자 가문의 79대 적손인 공수장(孔垂長)과 부인 오석인(吳碩茵) 사이에서 2006년 1월1일 태어난 80대 적손 공우인(孔佑仁)은 성인이 되면 공자의 제사를 관장하고 전통문화 계승의 임무를 수행하는 ‘대성지성선사봉사관’이라는 관직을 세습받게 된다.

관직세습제도는 중국과 대만에서 모두 사라졌지만, 송나라 인종황제 때부터 관직세습을 인정받은 공자 가문만 예외다. 공자 가문을 중화권에서 천하제일가로 이끈 공자가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거르지 않고 먹은 대용차가 있다. 공자의 일상생활을 제자들이 기록한 《논어(論語)》의 향당(鄕黨)편에 따르면, 공자는 평생 동안 매일 생강(生薑)을 먹었다. 이 대목에 성리학(性理學)의 집대성자 주자(朱子)는 ‘생강은 정신을 맑게 하며 나쁜 기운을 없앤다’고 주석을 달았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字典)으로 알려진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생강을 ‘습기를 조절하는 식물’로 묘사했다. 《동의보감》에도 몸의 냉증을 없애고 소화를 도와주며 구토를 없앤다고 나온다. 생강차를 늘 가까이했다는 다산 정약용은 “생강차를 마시면 몸이 더워져 감기를 다스린다”고 했다. 생강이 주원료인 진저에일(ginger ale)을 서양인이 마시는 이유도 구토와 멀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다. 신체면역력을 높이고 감기증상을 호전시키는 생강은 장에 직접 작용하고 뇌에 영향을 주지 않아 졸리는 부작용 없이 통증을 완화시켜준다.

 

공자묘 대성전 ⓒ 서영수 제공


생강의 원산지는 인도다. 5000년 이상 활용돼 온 인도 전통의학서인 《아유르베다(Ayurveda)》는 만병통치약으로 생강을 소개하며 신이 내린 약재로 묘사했다. 균형이 무너지면 질병이 생긴다고 믿는 《아유르베다》의 대표적 치유법이 요가(Yoga)와 식물성 기름을 입에 머금은 뒤 뱉어내는 오일풀링(Oil pulling)이다. 생강에서 추출한 기름을 오일풀링 할 때 사용하면 소화 촉진, 독소 배출, 관절 통증 완화 효과를 볼 수 있다. 생강의 맵고 알싸한 맛을 내는 진저롤(Gingerol)과 쇼가올(Shogaol)이 강력한 살균작용과 진통효과를 발휘하는 성분이다.

《아라비안나이트》에 정력제로 등장하는 생강은 젖산을 분해하는 비타민D가 풍부해 근육통증 감소와 관절염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감초(甘草) 다음으로 한방약에 많이 사용되는 생강은 25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재배됐다. 한반도에는 고려 현종 9년(1018년) 때 ‘생강이 왕의 하사품으로 올라왔다’는 기록이 최초다. 조선시대에도 귀한 향신료였던 생강을 좋아한 율곡 이이는 후학을 향해 “남과 어울리면서도 개성이 분명한 생강처럼 돼라”고 훈시했다. 생강을 섭취하는 방법은 날것, 익힌 것, 절인 것과 생강청, 편강 등 매우 다양하다. 생강을 말린 건강(乾薑)은 한약재로 많이 사용된다.

생강을 차로 마실 때는 생것과 말린 것 모두 좋다. 생강 특유의 맵고 강한 맛이 부담스러우면 홍차와 섞어 마시면 향도 좋고 효과도 배가된다. 레몬과의 조화도 훌륭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생강차의 1일 적정량은 공자처럼 꾸준히 소량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청나라 말기까지 많은 지식인을 배출한 대만 최고의 인재양성소였던 타이난 공자묘 건너편에 있는 푸중제(府中街)는 푸청(府城)이라는 옛 이름을 가진 타이난을 상징하는 문화거리다.

 

자이먼 카페 입구가 마냥 신기한 사람들 ⓒ 서영수 제공



공자가 즐긴 생강 가미한 녹차와 홍차

젊은 예술가들이 만든 창작물과 다양한 먹거리로 인기 있는 푸중제는 주말에만 길거리 좌판이 허용된다. 밤 10시까지만 영업이 허가되는 푸중제는 술 판매가 금지돼 있어 찻집이 성업 중이었다.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디좁은 골목 안에 있는 자이먼(窄門·좁은 문)이라는 2층 카페로 올라가면 의외로 넓은 시야가 펼쳐지며 공자묘가 한눈에 들어왔다. 공자가 평생 즐겼다는 생강을 가미한 녹차와 홍차를 팔고 있었다.

자이먼 카페와 붙어 있다시피 한 옆 건물은 배낭족을 위한 독특한 캡슐형 민박이었다. 1층 로비를 개방형 북카페로 운영하며 차와 음료를 투숙객뿐 아니라 방문객에게도 무료로 제공하는 주인의 안내로 대형 거미 조형물이 눈길을 끄는 지하에 꾸며진 서가와 2층 숙소를 볼 수 있었다. 복도와 벽 사이를 가득 메운 책꽂이 사이에 틈틈이 배치된 캡슐형 잠자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 그 자체였다.

푸중제 끝자락에 있는 ‘타이완 넘버원 오뎅’은 다양한 꼬치 오뎅을 균일가에 판매하고 있었다. ‘소확행’을 찾아 주말 나들이 나온 연인과 가족들로 붐비는 맛집은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먹는 사람이 더 많았다. 어둠이 내리는 거리에서는 흑설탕과 생강을 끓인 생강차를 팔고 있었다. 시음용 생강차를 권하는 아가씨의 밝고 적극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생강차는 추위로 인한 오한도 쫓아내지만 일교차가 크거나 덥고 습한 날씨에 무기력해지는 몸과 마음을 일깨우는 데도 효과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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