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원 “농구는 팀워크…실력보다는 인성이 중요”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30 10:31
  • 호수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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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자농구의 전설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 “나이 어린 선수들 가르칠 때 많은 보람 느껴”

1990년대 정은순·유영주·정선민 등과 함께 여자농구의 간판스타로 군림했던 전주원(46). 실업농구 현대산업개발 시절에는 ‘천재 가드’로 이름을 날렸고, 프로 출범 후에도 그 명성을 견고히 해 나갔다. 신인왕 수상을 시작으로 8년 동안 베스트5에 7차례나 오른 전주원은 국제대회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신화를 이끌며 대한민국 여자농구의 살아 있는 전설로 인정받았다. 선수 시절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유일한 선수였고 2011년 4월 21시즌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며 유니폼을 벗었다.

선수 은퇴 후 곧장 신한은행의 코치를 맡았던 전주원. 2012~13 시즌을 앞두고 위성우 코치가 춘천 우리은행 한새(아산 우리은행 위비)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우리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한은행 영구결번의 주인공이기도 한 전 코치의 소속팀 이동은 당시 여자농구계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전 코치는 위성우 감독과 함께 우리은행에서 무려 통합 6연패를 달성했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는, 여전히 현역 같은 외모의 전 코치를 11월27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한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났다.

 

ⓒ 시사저널 임준선



선수 시절부터 코치 생활까지 거의 쉼 없이 달려오지 않았나요. 여전히 숙소 생활을 하고 있고요.

“절 필요로 하는 팀과 감독님, 선수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죠. 제가 물욕은 없는 반면에 일 욕심이 많아요. 어릴 때부터 승부의 세계에서 살다 보니 가끔은 지칠 때도 있습니다. 매일 이기고 지는 싸움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속에 있어야 마음이 편해요. 만약 제가 이 일을 떠난다면 금세 우울증에 걸릴 거예요. 농구가 제 삶이고, 제 삶이 농구인 셈이죠.”

휴가와 휴식 등 승부의 세계를 벗어나 있을 때는 어떻게 보내나요.

“물론 가족들과 함께 있지만 가끔은 고요하고 적막한 시간들을 견디지 못할 때도 있어요. 탕탕 튀기는 농구 공 소리를 들어야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요. 이 정도면 병인 거죠(웃음)?”

농구 없는 전주원은 상상이 안 되는 거네요.

“그렇죠. 전주원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려줬으니까요. 전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좋아요. 제 지식과 경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제가 갖고 있는 걸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지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해요. 선수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찾아주길 바라요. 그래야 제가 더 열정적으로 코치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난 5월에 우리은행 위비와 4년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물론 위성우 감독도 재계약했고요. 성적 부진으로 하차하는 지도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이례적인 장수 감독과 코치입니다.

“위 감독님 덕분에 편하게 하고 있어요. 사실 코칭스태프한테 계약 기간은 큰 의미가 없어요. 속된 말로 감독, 코치는 파리 목숨이거든요. 성적을 내지 못하면 팀을 떠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동안 열심히 한 부분을 보상받았다고 생각해요. 우리은행에서도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미리 재계약 소식을 전했어요. 조바심 내지 않고 마음 편히 선수들과 함께 갈 수 있게 됐습니다. 4년 재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변화된 건 없어요. 조금 느슨해져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더 치열해지더라고요. 매년 우승을 목표로 선수들과 지지고 볶다 보니 우리은행에서 일곱 번째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시간이 금세 가요. 정신없이요.”

이 질문은 자주 듣는 내용일 텐데요, 코치로 우승도 여섯 차례 경험하고 나이도 마흔 살 후반을 내달리는 상황에서 감독 자리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제가 아직은 감독을 맡기에 부족함이 많아요. 더 배워야 할 것도 있고요. 위 감독님을 보면서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코치는 맡은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지만 감독은 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저로선 그걸 직접 지켜봤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이 없어요. 제가 어설프게 감독 맡았다가 실패해서 나중에 여성 지도자가 설 자리가 없어지면 안 되잖아요. 지금은 후배들에게 농구만 가르칠 수 있으면 돼요. 감독이란 자리는 아직 관심 밖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그 관심이 생길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가 중요하겠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면 50세 전에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준비가 안 된 경우라면 50세 넘어서도 코치를 하는 것이고요. 위 감독님이 요즘 제게 ‘제발 떠나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세요. 주위에서 감독님한테 압박을 많이 주나 봐요. 전주원을 잡고 있으면 안 된다고요. 다른 팀에서 감독 할 수 있게 놔줘야 한다면서요. 지금은 제가 못 가요. 아니 안 가요. 좀 더 감독님 밑에서 배우고 싶어요.”

(전 코치는 농구를 잘했다고 해서 좋은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지도자는 농구 외에 선수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균형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한다. 선수들이 잘 따라오고 좋은 결과를 냈을 때 보람이 크지만 그 반대의 상황이 됐을 때 절망감이 큰 부분을 이겨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 코치의 설명이다.)

위성우 감독과는 신한은행 코치, 선수로 만나 지금까지 14년간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얼굴 표정만 봐도 감독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요. 감독님이 겉으로는 강한 면이 부각되지만 그 속에 부드러움을 갖고 계세요. 감독은 주관이 흔들리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운동과 관련해서 타협하지 않는 부분, 항상 자신이 말했던 부분을 그대로 지키는 정확함 등은 본받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농구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도 대단하시죠. 다른 건 몰라도 위 감독님과 농구 궁합은 정말 잘 맞는 것 같아요.”

우리은행은 2011~12 시즌까지만 해도 최하위를 면치 못했어요. 그러다 2012년 4월 위성우 감독이 선임되면서 완벽하게 다른 팀이 됐습니다. 2012~13 시즌 통합 챔피언에 올랐고요. 꼴찌에서 우승을 이룬 신데렐라 스토리를 만들었죠.

“이젠 옛날 얘기 같지만 우리은행은 위 감독님이 팀을 맡기 전까지 처절하게 못 했던 팀입니다. 5년 동안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40게임 중 7승에 머물렀던 팀이 6연패(六連)를 이뤘으니 대단한 일인 거죠. 처음 우리은행 선수단을 만났을 때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오랫동안 패배에 익숙했던 팀이라 선수들의 의식구조를 변화시키는 게 급선무였거든요. 여수로 지옥훈련을 떠나면서 감독님이 ‘한 번에 변화시키지 못하면 난 그만둔다. 그다음은 없다’라고 선전포고를 하셨어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심하게 선수들을 밀어붙였었죠. 그때는 운동시간 외에는 모두가 누워 지냈어요. 움직일 기력이 없었으니까요. 감독님은 선수들을 혹독하게 내몰고, 전 감독님을 따라가면서 선수들을 안아주고, 제가 안아주는 데 한계가 보이면 그제야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우승할 수 있는 정신력과 힘을 갖추게 되었더라고요. 만약 위 감독님이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우리은행은 정상에 오르기 어려웠을 겁니다.”

 

2017년 1월20일 구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구리 KDB생명과 아산 우리은행 경기에서 아산 전주원 코치가 양지희(왼쪽)에게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감독과 따라가기 버거워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꽤 어려운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힘든 적도 많았어요. 하소연할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선수들이 울면서 운동 못 하겠다고 얘기할 때마다 회유하고 설득하느라 지칠 때도 있었어요. 한두 번은 선수들이 울 때 저도 너무 힘들어서 같이 운 적도 있었고요. 저도 선수생활을 해 봐서 그들이 어떤 부분에서 힘들어하는지 잘 알거든요. 위 감독님은 용납할 수 있는 틀과 용납할 수 없는 틀이 있습니다. 선수들의 기분을 맞춰주고 타협하면서 부드럽게 팀을 이끄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가끔은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두는 선수도 나와요. 하지만 운동시간 외에는 더없이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나타내십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감독님의 진심을 이해하기 때문에 저도 선수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어떤 선수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남자 코치보다 여자 코치가 더 어렵다고. 자신들의 생활을 꿰뚫고 있어 더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랬을 테니까요. 선수들이 여자 코치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뤄야 하는데 그건 여자 코치가 해결해야 할 몫이에요. 선수 때의 모습을 무조건 버려야 해요. 코치로서 선수들, 감독님과의 관계, 다른 스태프들과의 관계도 잘 해 나가야 합니다.

시간 날 때마다 농구에 대한 공부, 연구를 꾸준히 해야 해요. 선수로 뛸 때는 나만 챙기면 됐지만 지금은 여러 명의 선수들을 챙겨야 하잖아요.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서 단점을 보완시키기 위해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도 얘기해 줄 수 있어야 하고요. 요즘에는 나이 어린 선수들을 가르칠 때 많은 보람을 느껴요. 그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자세히 얘기해 주고 잡아줘야 하거든요. 그러면서 저도 또 한번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전 코치는 팀에서 코치 역할과 관련해서 감독과 선수 사이의 가교와 여과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여과’라는 단어가 귀에 쏙 박힌다. 전 코치가 앞에서 말한 내용들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남자농구도 그렇지만 여자농구도 전주원, 정선민 코치를 능가하는 스타플레이어가 눈에 띄지 않아요. 꾸준히 제 몫을 해내는 선수들은 있지만 레전드급의 실력과 인기를 얻고 있는 선수가 없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공감합니다. 여자농구에도 스타플레이어가 나와야 해요. 우리 세대에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을 능가하는 선수가 보여야 합니다. 그건 선수들 잘못보다 저와 여자 코치들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요. 스타가 될 수 있도록,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우리가 제 역할을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KB스타즈의 박지수 같은 선수가 여러 명 나왔으면 좋겠어요. 비록 경쟁팀의 선수지만 여자농구를 위해서라도 박지수가 지금보다 더 성장하길 바랍니다. 지금도 보물이지만 여자농구의 대들보로 성장하려면 선배들도 힘이 돼 줘야 해요.”

실력은 뛰어난데 인성이 좋지 않은 선수와 인성이 좋은 반면에 실력이 뒤떨어지는 선수 중 한 명만 택하라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요.

“전 실력이 좋고 인성 나쁜 선수보다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인성 좋은 선수가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농구는 팀워크를 중시하는 종목이잖아요. 실력이 부족한 부분은 노력으로 채울 수 있지만 인성이 좋지 않은 건 노력으로 가능한 부분이 아니니까요. 팀플레이를 앞세우는 농구에서 인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2008년 12월19일 삼성생명과의 경기에서 신한은행 전주원이 3점슛을 성공시킨 뒤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은행이 6연패를 하면서 우리은행의 우승 독식으로 여자 농구가 재미없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8~19 시즌도 11월28일 현재 7연승을 질주하며 전승 행진을 벌이고 있는데요.

“우리은행이 계속 최하위에 머물러 있을 때도 재미없다고 했어요. 똑같이 재미없다면 차라리 우승하고 재미없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재미없다고 탓하지 말고 우리은행을 이기려고 모든 팀들이 노력해야 되는 거죠. 벌써 KB스타즈가 치고 올라오잖아요. 왕좌를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싸움이 치열해야 팬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겠죠. 지금은 KB스타즈가, 이후에는 하나은행, 삼성생명이 올라오는 등 모든 팀들이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승은 해도 해도 또 하고 싶은 목표가 되겠죠.

“그럼요. 힘이 닿는 한 계속 우승하고 싶습니다. 선수들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우승을 이루지 못한다면 상실감이 클 것 같아요. 사람들은 이변을 바라겠지만 직접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은 절실함을 갖고 농구를 대하거든요. 땀 흘린 보람이 우승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여자프로농구 6개 구단에 3명의 여성 코치가 있는데 그중 아이가 있는 코치는 전 코치가 유일합니다. 대부분 숙소 생활을 하는 터라 집에 자주 못 갈 것 같은데요.

“선수단이 외박하는 날에는 저도 집에 가는데 최근에는 경기가 이틀에 한 번씩 열리는 탓에 집에 가지 못했어요. 딸이 중2가 됐어요. 사춘기의 감성이 충만한 시기인데 항상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떨어져 지냈으니까요. 엄마로서는 낙제점이에요. 그래도 가족들의 이해와 배려 덕분에 계속 농구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농구가 좋긴 좋은가 봐요. 가정을 두고 오랫동안 코치 생활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해 나가는 걸 보면요. 한때는 인생의 전부였는데 지금도 가족 외엔 제 전부나 다름없습니다.”

가식 없는 솔직함, 당당함을 무기로 여자농구 선수들의 롤모델로 자리한 전주원 코치.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지도자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멋지게 깨트린 그의 행보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요즘 전 코치한테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바로 ‘여자 위성우’. 그의 현재를 가장 잘 표현해 준 별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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