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있는 ‘文의 통일 운전대’
  • 손기웅 한국DMZ학회장·前 통일연구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30 11:15
  • 호수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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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의 통일전망대] 미국의 비핵화와 한국의 목표 분명히 달라

올해 한반도 정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끌었다. 온갖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력 완성에 전력을 기울였던 김 위원장은 돌연 평화공세로 나섰다. 신년사에서 변화의 단초를 보여준 그는 평창동계올림픽에의 대대적인 참여를 신호탄으로 판문점·개성·평양으로 이어진 남북 정상회담, 사상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을 펼치면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한·미 양국은 사실상 그가 펼치는 책동(策動)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했다.

한참 고조됐던 국면은 현재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 기대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데 대한 김 위원장의 불만이 크기 때문이다. 남한을 디딤돌 삼아 미국을 향해 화해의 몸짓을 보냈던 그가 미국은 물론이고 남한으로부터도 얻은 것이 별로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제 우리가 나설 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김 위원장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는 여전히 ‘수령 외교’를 펼치고자 한다. 북한에서 김 위원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의 말이 곧 법이고 총알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복할 수 없다. 무조건 따라야 하고 거부는 죽음이다. 이러한 정치행태가 국제사회, 국가 간 외교에 통용될 리 없다.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쇄,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내가 이렇게 결단하고 보여주었으니 나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지 말고 그 대가를 주어야 한다’는 식은 북한에서나 통하는 방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1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남북 정상회담 기간 동안 환대해 준 평양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金, 외교에서 “내 말이 곧 법” 시각 안 통해

국가 간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정착된 외교적 의례(protocol)가 존재한다. 선언이나 합의를 실제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이며 객관적으로 동의될 수 있는 내용이 따라야 한다. 세 번의 만남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를 역설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북한을 흔들거나 흡수 통일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전달했다. 김 위원장도 그것을 알았기에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의 대중연설을 허용했다. 지금 상황에서 문 대통령 외에 누가 김 위원장에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핵무력을 이미 완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핵실험장과 핵실험이 필요 없다고 그 스스로가 공개적으로 밝힌 마당에 단순히 그걸 폐쇄하고 중단한 것을 비핵화 의지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게 맞는 것일까.

핵 문제 해결과 더불어 김 위원장이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가 실현되는 사회로 북한을 이끌어갈 것을 조언하고 격려해야 한다. 해마다 신년사에서 보여주었듯이 북한 인민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칭찬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그러한 방향으로 노력해야만 하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협력할 준비가 돼 있음을 알려야 한다.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고 억압했던 독재자들의 말로가 어찌 되었는가는 자유세계를 경험한 김 위원장이 더 잘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11월15일 유엔에서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에 우리가 제안국으로 동참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되는 데 우리가 일관성을 가지고 요구할 뿐만 아니라 협력할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걸어가야 할 기본이다. 북한의 반응이나 비난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우리의 의지는 동전의 양면이어야 한다. 그것을 김정은 위원장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과 관계로 이끌어야 한다.

동시에 한·미 관계를 군사동맹에서 가치동맹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군사적 차원에 양국 관계를 한정한다면 갈등이 일어날 개연성이 상존한다. 엄연하게 존재하는 정치·군사적 위상의 차이, 지정학적 차이로 인해 양국이 추구하는 정치·군사안보적 목표가 동일할 수 없다.

북핵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북핵 문제의 초기에 완전한 해결이 어느 정도 가능했던 상황과 달리 현재 CVID(완전하고 불가역적이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한 해결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주장하는 CVID한 해결이 미국의 진정한 국가 목표일까. 아니면 당면한 국익 해결을 위한 정치적 수사일까.

CVID한 해결을 염원하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북한 핵능력의 제거,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핵확산 방지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임자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유가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했고 돈벌이를 위한 핵능력 확산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이 날린 트윗이 ‘전 세계 시민들이여 이제 발 뻗고 자라’가 아니라 ‘미국민들이여 이제 발 뻗고 자라’였지 않은가.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우리 목표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하게 제거하고 군사도발을 하지 않는 평화적 우량국가가 되는 것이 과연 현 시점에서 미국의 국익일까. 한국과 일본에 무기 수출을 어떻게 할 것이고,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며, 불량국가가 없는 마당에 세계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한국과 미국은 헌법에 못 박고 공통으로 지향하고 있는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의 가치동맹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제사회가 미국을 지도국으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이러한 가치들의 실현 때문이며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목표가 이들 가치가 한반도 전역에 실현되는 상황임을 서로가 재확인해야 한다.

비핵화 자체가 아니라 북한에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가 실현되기 위해서 CVID한 비핵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에 공감해야 한다. 통일 자체가 아니라 이들 가치를 한반도 전역에 실현시키기 위해 통일돼야 한다는 사실을 양국이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실현을 양국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대북제재하 남북 교류협력의 진전에 관한 공감대를 국제사회에 형성해야 한다. 남북 교류협력은 북한 주민에 대한 접근에 다름 아니다. 북한 주민들이 외부세계를, 대한민국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자신들을, 북한체제를 되돌아보고, 무엇이 옳고 그름을, 무엇이 좋고 나쁨을 그들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해 변화를 위한 노력을 스스로 행하도록 하는 과정이 교류협력이다.

그것은 또한 비핵화의 동력이다. 핵무장에 대한 그들의 명분이었던 미국과 대한민국이 군사적으로 선제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깨닫고, 핵무장에 환호했던 북한 주민들이 핵무장으로 인한 국제제재로 오히려 고통을 겪고 있음을, 핵무장이 김정은과 그 일파들의 권력유지에 목적이 있음을 깨닫고 그 변화를 요구하게 하는 과정이 교류협력이다.

대북 국제제재보다 좀 더 앞서 나가려는 남북 교류협력에 이러한 의미가 있음을 미국과 국제사회에 이해시킨다면 남북 교류협력에 대한 그들의 시각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정부가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정부가 남북 교류협력에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아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인가. 우리가 지금 운전대를 잡을 시기이자 제대로 잡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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