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공화국⑤] 민영화 철도, 국철 시대보다 사고 줄었다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4 15:51
  • 호수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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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국철 민영화 31년, 노선 폐지 불편 해소 등 공공성 확보는 과제

2005년 4월25일 월요일이었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에서 운행 중이던 급행열차가 곡선 구간에서 탈선해 철로 옆 아파트와 충돌했다. 기관사를 포함해 107명이 숨지고 562명이 다친 JR후쿠치야마(福知山)선 탈선 사고다. 일본 철도 역사상 7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참사였다. 사고 이후 효고현 경찰과 항공·철도 사고조사위원회는 2년여에 걸쳐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그 결과, 열차가 시속 70km 이하 속도로 진입해야 하는 곡선 구간을 시속 116km로 진입해 탈선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직전 역에서 기관사는 정차 위치를 초과(오버런)했고, 그 바람에 출발이 예정보다 1분20초 늦어졌다. 징계 처분을 받을 것을 우려한 기관사가 무선교신에 정신을 빼앗겨 제때 속도를 줄이지 못한 것이 사고의 직접 원인이었다.

 

일본은 지난 1987년 철도를 민영화했다. 일본의 철도 민영화는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적자 노선 등의 문제가 과제로 남아 있다. ⓒ EPA 연합


민영화 이후 실적·안전성 모두 개선

그렇다면 간접적 원인은 무엇일까. JR니시니혼은 같은 지역을 운행하는 민간 철도와의 경쟁을 위해 열차 운행일정을 빡빡하게 짰다. 오버런 등의 잘못을 저지른 기관사는 징벌성 교육을 받도록 했다. 수익을 창출하려다 보니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효율’이 제일 중요한 가치가 됐다. 배경으로 국철 민영화에 따른 경쟁 심화와 인원 삭감이 지적되기도 했다. JR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로부터 13년, 일본 국철 민영화로부터 31년이 흘렀다. 일본 국철 민영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일본 국철 민영화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이 실시한 행정개혁의 일환이었다. 일본 국유 철도(국철)를 각 지역을 담당하는 6개 여객철도 회사와 1개 화물철도 회사로 나눈 뒤 JR(Japan Railway)로 이름 붙여 민영화했다. 이들 회사는 1987년 4월1일 발족했다. 민영화의 가장 큰 계기는 국철의 만성 적자였다. 흑자로 운영되던 일본 국철은 1964년 도카이도 신칸센 운행을 시작으로 적자로 전환했다. 1980년 이후에는 매년 정부로부터 수천억 엔의 보조금을 지급받으면서도 1조 엔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 1986년에는 장기채무가 25조1000억 엔에 이르는 등 실질적으로 경영파탄에 이른 상태였다.

고속도로 정비와 자가용 자동차 보급에 따라 철도 이용이 감소한 데다 지방 노선 신설을 위한 비용 지출이 늘면서 적자를 키웠다. 일본 국토 전반을 관리하는 거대 조직의 비효율성, 경영 자주성 결여에 따른 책임 소재의 불명확화, 불안정한 노사관계, 사업범위의 제약에 따른 탄력적 사업 전개가 어렵다는 점 등이 경영악화 원인으로 꼽혔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효율적이고 책임 있는 경영, 지역 특성을 반영한 운영을 통한 철도 사업 재생을 위해 민영화를 단행했다. 국철 관련 채무의 60% 이상을 정부가 떠맡았고 많은 국철 직원들이 JR에 채용되지 못하고 직장을 떠나야만 했던 뼈아픈 개혁이었다.

민영화 31년, JR은 어떤 변화를 맞이했을까. 대체로 민영화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2015년도 연결결산기준 JR 경상 흑자가 1조1000억 엔을 기록했다. 국철 시대 채무를 모두 상환하려면 아직 40년 정도가 남았지만,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때를 생각하면 아주 큰 변화다.

경쟁을 통해 전반적인 서비스가 향상된 것도 승객들이 다시 JR을 찾게 된 계기였다. 기존 민간 철도와의 경쟁뿐만 아니라 JR화물을 포함한 7개사가 서로 경쟁하게 된 것이 주효했다. 차량 속도와 승객 서비스, 화장실 환경까지 개선했다. 경쟁 심화가 안전 소홀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물론 있었다. 앞서 언급한 JR후쿠치야마선 탈선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국철 시대에 비해 민영화 이후 철도 사고가 감소하고 있다.

JR니시니혼의 경우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를 기점으로 안전 최우선을 기업 풍토로 만들고 있다. 열차 운행시간을 여유롭게 조정했다. 안전상황기록장치 확충 작업도 진행했다. 2008년에는 철도 업계에서 최초로 사고 전조현상을 수치화하고 관리하는 위험도평가(risk assessment)제도를 도입했다. 2016년에는 기관사의 징벌적 교육제도를 폐지해 실수에 대해 징계 처분을 받지 않도록 했다. 실수를 보고하기 쉬워지면 오히려 해이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기관사의 심리적 부담감을 던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었다.

승객의 교통수단 선택 이유에는 빠르고 정확한 운행시각, 편리성뿐 아니라 ‘안전성’도 포함된다. 열차의 안전한 운행 또한 철도 회사를 선택하는 주요 요소다. 다른 교통수단과의 경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효율만을 중시한다면 결국 승객들은 외면할 것이 분명했다.


흑·적자 노선 격차, 지역 격차는 ‘심각’

민영화에는 ‘명(明)’도 존재하지만 분명 ‘암(暗)’도 존재했다. 인기 있는 노선은 큰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적자를 내는 비인기 노선, 승객 수가 적은 지방 철도는 폐지 위기에 놓였다. 몇몇 지방 철도 노선은 이미 폐지됐고 운행 수는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자동차 운전이 어려운 고령자들이 주로 철도를 이용했지만 노선 폐지로 생활에 곤란을 겪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자체 연계로 노선버스를 확충하고 지속 가능한 공공 교통기관을 모색하고 있지만 지역 주민의 불편함은 물론 지역 기반 쇠퇴 또한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JR홋카이도는 2017년도 416억 엔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8년도에도 비슷한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민영화 후 홋카이도 내의 고속도로 정비와 인구 감소에 따른 승객 감소가 주요 원인이다. 1997년 홋카이도척식은행이 파산하면서 지역 경제가 어려워진 점도 적자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동절기에는 출발 1시간 전부터 난방을 해야 한다는 점, 제설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이 다른 JR사에 비해 비용을 높이기도 했다. 계속되는 경영난으로 안전 투자를 게을리한 결과가 연이은 사고로 이어지면서 신뢰를 잃기도 했다. 삿포로역에 JR타워를 건설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2020년에는 자금이 바닥나게 된다. 이미 몇몇 노선은 폐지됐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이 입게 됐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철도 민영화 31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아직 철도 재생은 끝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JR 7개사의 실적을 단순 계산해 보면, 국철 시대에 비해 모든 면에서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흑자 노선과 적자 노선의 격차, 지역 격차는 심각하다. 철도는 결국 국토의 균형 발전과 이어질 때 성공적으로 재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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