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⑤] 가해자 향한 피해자의 아픈 외침 ‘미투’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8.12.21 11:44
  • 호수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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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분야] 미국서 시작된 ‘미투운동’, 국내선 서지현 검사 폭로 후 문화·예술·정계까지 확산

‘Me, too(나도 피해자다)’.

이른바 ‘미투운동’은 2018년 한 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든 진앙(震央)이었다. 미투운동이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으로, 2017년 10월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의 제안으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했다. 당시 밀라노는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을 폭로하면서, 자신의 트위터에 “사람들에게 그 문제(성폭력)의 규모를 알리기 위해 해시태크(#) 미투(MeToo)에 동참하라”고 독려했다. 이후 불과 24시간 만에 약 50만 건의 트윗이 뒤따랐으며, 미투 물결은 미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검찰 내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가 2월4일 저녁 서울 송파구 동부지검 내에 설치된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에서 피해자 및 참고인 조사를 받은 후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미투 도화선은 ‘법조계’

미투의 도화선이 한 배우의 폭로였던 만큼, 미투의 충격파가 가장 먼저 휩쓴 곳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을 처음 보도한 이후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들 사이에서 성폭행·성추행을 당했다는 증언이 줄지어 나왔고 기네스 펠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톱스타들도 이에 가세했다. 가수 레이디 가가가 동참했으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스캔들로 유명한 모니카 르윈스키도 참여했다.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이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고, 가해자를 지목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지켜보던 일반인들도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

국내에서는 법조계가 미투운동의 첫 타깃이 됐다. 지난 1월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자신의 상관이었던 안태근 전 법무부 국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것이다. 서 검사는 안 전 검사장에게 지난 2010년 성추행을 당했으며, 이후 인사상 불이익이 있었다고 밝혔다. 가장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집단으로 불리던 검사 사회, 그 중심에서 자신의 상사와 조직의 치부(恥部)를 드러낸 서 검사. 서 검사는 지난 12월7일 국내 미투운동을 촉발한 공로로 한국투명성기구가 수여하는 투명사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서 검사는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제18회 투명사회상 시상식’에서 “수많은 피해자가, 불의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왜 고통을 겪는지, 무슨 잘못이 있길래 고통 속에 사는지 참 많이 고민했다”며 “고통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입을 열지 못한 것은 그들의 두려움과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들을 배신자, 꽃뱀, 창녀로 부른 공동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 검사는 “이 과분한 상은 이런 비정상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부정부패를 덮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이자 혹독한 추위를 녹인 뜨거운 의지”라며 “공포와 수치로 피해자와 약자의 입을 틀어막은 잔인한 공동체는 바뀌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법조계에서 촉발된 국내 미투운동은 이후 문단계와 연극계 등 문화·예술계, 그리고 정계까지 번지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연극연출가 이윤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발이 이어졌으며 김기덕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인 배우 조재현도 성폭력 가해자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기에 유력한 차기 여권 대권주자로 꼽혔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까지 수행비서 성폭행 의혹에 휘말리며 정치생명 최대 위기에 몰렸다. 진보진영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정봉주 전 의원 역시 지난 3월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중 미투 논란이 불거지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정치·예술계로 번진 미투…대책엔 ‘물음표’

미투운동은 교육 현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용화여고 졸업생 7명이 SNS를 통해 교사들의 성폭력 사실을 알린 ‘스쿨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학교는 성폭력에 연루된 교사 18명을 징계했다. 이후 전국 중·고등학교 등으로 스쿨미투가 확산했다. ‘학생의 날’이었던 지난 11월3일에는 서울 등지에서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는 스쿨미투 집회가 열리면서 학생들이 직접 거리로 나오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는 중·고등학생과 학부모 등 100여명이 참여했다.

미투가 우리 사회 곳곳을 관통하는 사이, 정부도 부랴부랴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섰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월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보완대책’을 발표하며 권력형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업무상 위계,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서 7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됐고, 추행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됐다.

국회에서도 ‘미투 법안’이 쏟아졌다. 지난 2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미투 1호 법안’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이 12월7일 통과됐다. 이 법안 주요 내용은 △여성폭력 개념 규정 및 피해자 지원·보호체계 강화 △여성폭력방지 기본계획 및 연도별 수행계획 수립 근거 마련 △일관성 있는 국가통계 구축 △여성폭력 특수성 반영한 피해자 지원 시스템 마련 △여성폭력 예방 위한 폭력예방교육 체계 재정립 등이다.

그러나 아직 미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투 운동 초기에 비해, 지금은 정부의 지원 의지와 열의가 많이 꺾였다는 얘기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지난 11월29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투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국회를 규탄했다. 백미순 상임대표는 “미투 법안이 국회에 많이 올라가 있는데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미투 예산도 내년 반영이 명확하지 않고 각 부처에서 ‘우리는 하려고 하는데 다른 부처에서 안 해 준다’는 식의 ‘핑퐁’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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