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감 1위, 이인제…한화갑ㆍ고 건, 2ㆍ3위
  • 이숙이 ()
  • 승인 2000.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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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원 1003명 여론조사/전국에서 고른 지지 획득, 2위 한화갑에 크게 앞서…고 건·정몽준,3·4위
요즘 나라 돌아가는 사정이 워낙 안 좋아서일까? 민주당 대의원들은 정권 재창출 가능성을 상당히 비관하는 전망을 내놓았다. ‘민주당이 차기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어떤 경우에도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한 완전 비관론이 17.3%나 된다. 여기에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65.6%)는 유보적인 답변까지 합하면 무려 80%가 넘는 응답자가 재집권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무조건 재집권할 수 있다’는 낙관론은 15.8%. 이런 비관론 우세 흐름은 지역 별로 고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부산·경남 지역에서 ‘무조건 안 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26.4%).

재집권 가능성에는 82.9%가 “글쎄요”

재집권의 전위부대인 민주당 대의원 사이에서조차 비관론이 우세한 것을 두고 정가에서는 DJ 정권의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지금의 정국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당 지지도가 탄탄하면 누가 후보가 되든 집권 여당의 프리미엄을 한껏 기대할 수 있으나 지금은 언감생심이다. 심지어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이대로 가다가는 재집권이 힘든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실정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최근 몇몇 여론조사에서는 현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여야 지지도가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나 민주당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민주당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정치권 안팎의 관심은 더욱 더 ‘누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느냐’에 쏠리고 있다. 당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할 경우, 결국 선거전은 후보의 ‘개인기’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의원 여론조사에서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정권 재창출 여부가 달라진다’는 응답이 유난히 많았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특히 DJ 정권의 산실이자 차기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핵심 지지 세력이 될 호남권에서는 응답자의 무려 70.7%(광주에서는 81.8%)가 ‘후보’를 정권 재창출의 최대 변수로 꼽았다.

그렇다면 민주당 대의원들은 어떤 인물을 차기 대선 후보로 점찍고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2000년 12월 현재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는 이인제 최고위원이다. ‘만약 내일 민주당 차기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전당대회가 열린다면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1.8%가 이위원을 선택한 것이다. 2위는 10.5% 지지를 얻은 한화갑 최고위원이, 3위는 8.7% 지지를 얻은 고 건 서울시장이 차지했고, 다음은 정몽준(6.6%)·김중권(6.5%)·노무현(4.2%)·김근태(3.4%)·정동영(2.3%)·이한동(1.5%)·정대철(1.3%)·박상천(0.2%) 순이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얻어 명실상부한 차기 선두 주자임을 입증했다. 그는 대구·경북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든 권역에서 그 지역 맹주를 자처하는 다른 후보를 앞섰다. 특히 ‘이인제 비토론’이 높다고 알려진 부산 지역에서 26.3% 지지를 얻어 이 지역 다크호스로 불리는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10.5%)을 압도했고, 광주·전남에서 각각 15.2%·18.6% 지지를 얻어 DJ 이후의 호남 맹주를 노리는 한화갑 최고위원(6.1%·14%)을 앞질렀다. 지난 8월 최고위원 경선 때 충청권을 뺀 전지역에서 다른 후보들에게 뒤지거나 고전했던 데 비하면 괄목상대할 도약이다.

반면, 당시 대의원들로부터 과반수가 넘는 지지를 확보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던 한위원은 이번 조사에서 ‘약한 2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위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10.5%)을 얻는 데 그쳤을 뿐 아니라, 호남을 비롯한 어느 한 지역에서도 이위원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대의원들이 당권과 대권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구별해 주었다고 풀이했다. 한마디로 한위원은 당권용 인물이지 대권 주자감은 아니라는 것이 대의원들의 정서라는 얘기다. 다음 두 가지 설문 결과는 이인제 대세론을 뒤집기가 수월치 않으리라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우선 그가 지난 11월9일 차기 대선 후보와 관련해 언급한 ‘모두가 불행’ 발언에 대한 대의원들의 평가다. 그는 당시 한 강연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대선 후보가 되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김근태 최고위원을 비롯한 차기 경쟁자들은 “국민과 당원에 대한 협박이나 다름없다” “정당 민주주의의 핵심인 전당대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대의원들은 이 발언을 그리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당연하다’는 지지성 응답이 48.3%로, ‘후보가 안되면 탈당하겠다는 의미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성 응답(42.7%)보다 많았다. 비록 그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당시 이위원의 발언을 접한 정치권의 반응이 상당히 ‘부정적’이었던 데 비하면 의외의 결과인 셈이다. 반이인제 진영의 한 관계자는 “이위원 지지자들이 이 발언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무조건 이위원 편만 들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러다가 경선 복종 원칙 자체가 흔들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걱정했다.

이인제 위원 진영을 더욱 고무하는 대목은 차기 대선 후보 가능성에 대한 설문 결과다. ‘당신의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누가 민주당 차기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의원 25.1%가 이위원을 꼽았다. 이는 단순 지지도보다 3.3% 늘어난 수치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당선 가능성’의 경우 미래의 지지도를 예측할 수 있는 선행지수라는 점에서 현재 지지도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일수록 부동층의 지지가 그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해석대로라면 민주당 예비 ‘용’ 가운데 이위원만이 ‘희망적’이다. 그나마 2위인 한위원이 현재 지지도와 당선 가능성이 비슷하고, 나머지 후보는 모두 당선 가능성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의원들 사이에 이인제 대세론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본선 경쟁력’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맞서 이길 만한 인물이 이위원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대안부재론 때문에 대의원들이 딴 데로 눈을 돌리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몇몇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이회창 총재와 여당의 예비 주자들이 1 대 1로 붙었을 때, 이위원만이 비슷하거나 우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가 이인제 대세론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차라리 일찌감치 판 벌여줘야”

하지만 여권 핵심부에서는 내심 이인제대세론이 뿌리 내리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인물이 누구냐를 떠나 특정인이 지나치게 일찍 대세를 장악할 경우 후보 경선의 상승 효과가 줄어들고 레임 덕 현상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여권 정책 참모들 사이에서는 너무 늦기 전에 다른 예비 주자군의 활동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미 출발선을 떠난 당내 예비 주자들의 잰걸음은 대통령이 나서도 막을 수 없으므로, 불공정 경선이라는 뒷말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찌감치 판을 벌여 주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고려대 임혁백 교수는, 재집권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오히려 레임 덕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면서, 대권 후보군 조기 가시화를 적극 주장했다.

초반 대세론을 굳히려는 이인제 최고위원과 ‘아직 남은 시간이 많다’며 전세 역전을 꾀하는 5룡, 6룡의 물고 물리는 양상이 마치 5년 전 신한국당판 ‘용들의 전쟁’을 재연하는 듯하다.
8·30 최고위원 경선에서 영·호남 화합의 다리가 되겠다고 주장해 상당한 지지세를 확보한 김중권 최고위원은 이번 조사에서도 TK 대표 주자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대구·경북권에서 19.6%라는 높은 지지를 얻어 12.7%를 얻은 이인제 위원을 가볍게 제친 것이다. 대구·경북은 영남 후보에 대한 열망이 가장 높은 지역(60.8%)이다. 김위원은 이런 영남후보론을 등에 업고 차기 주자의 꿈을 착실히 키워 가고 있다. 정가에서는 차기 주자가 불가능할 경우 그가 가장 영향력 있는 킹 메이커가 되리라고 전망한다. 민주당 차기 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든 영남 지지 기반이 튼튼해야 하므로 결국 김위원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선두 주자인 이인제 위원의 경우 최대 취약지가 바로 대구·경북이다. 이위원이 유난히 TK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과 김근태 최고위원 지지도가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장관은 텃밭인 PK 지역에서만 7% 지지를 얻었을 뿐, 전지역에서 5% 미만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영남과 여론 주도층 사이에서 유력한 차기 주자로 대우받고 있는 그가 정작 대의원 사이에서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9월 시사 주간지 <한겨레 21>이 조사한 대중 경쟁력 조사에서 노장관이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이나, 10월 초 <경향신문>과 현대 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노장관이 이인제 위원에 이어 여당 차기 후보 2위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만큼 ‘대중 지지도’와 ‘대의원 지지도’ 사이에 편차가 크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노장관은 <시사저널>과 가진 최근 인터뷰에서 “석달이면 대의원과 국민 모두로부터 지지도 1위를 차지할 수 있다”라고 장담했다. 아직 본격적인 차기 주자 레이스에 뛰어들지 않아서일 뿐, 일단 날개를 달면 경선 1등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주장이다.

김근태 위원측도 대동소이한 논리를 편다. “그동안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대중과 대의원을 설득하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던 만큼, 조금만 지나면 김위원의 확실히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김위원은 이미지 변신의 첫발을 ‘이인제 때리기’로 내디뎠다. 그동안 지나치게 몸을 사린 것 아니냐는 주변의 비판도 털어내고, 당내에서 가장 앞서가는 주자를 공격함으로써 반사 이익을 얻고자 하는 전법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정동영·정대철·박상천 최고위원과 이한동 총리는 아직 유의미한 지지도를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번 대의원 여론조사는 민주당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도 지역주의가 핵심 변수로 작용하리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충청후보론·영남후보론·호남후보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인제’로 집약되는 충청후보론에 견주어 영남후보론이나 호남후보론은 아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호남 후보가 얻은 지지율을 다 합해도 이인제 위원을 앞지르지 못하고, 영남 후보가 얻은 득표율을 합해도 마찬가지다. 이위원의 한 핵심 참모는 ‘바야흐로 이인제 대세론이 당내에 뿌리 내린 증거’라며 이제는 굳히기만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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