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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갈래 역풍 만난 ''대권 모험''

공천 둘러싼 당내 동요 심각…부산 공천 후유증·사당화 논란·권력욕 비판 직면

김종민 기자 ㅣ 승인 2000.03.02(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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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드디어 ‘창(槍)’을 빼들었다. 선전 포고 없이 감행된 이른바 ‘2·18 기습’으로 한나라당 내부는 물론이고 4·13 총선 판도 자체가 요동치고 있다. 이총재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번 기회에 이회창당을 만들지 못하면 2002년 대선은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이번 공천에는 이런 강박관념과 함께 자신감도 가세했다. 그동안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반DJ 단일 전선이 확고해졌다고 보고, 자기가 공천권을 장악한 이번 기회에 대권 가도에 걸림돌이 될 당내 비주류 중진들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이다. 아울러 이러한 ‘숙청’이 여론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개혁적 흐름을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수도권에 개혁적인 386 세대를 대거 배치했다. “3김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

이회창 총재의 이번 공천은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전반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비록 비주류 제거라는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기는 하지만 김윤환 고문과 이기택 고문 등 구정치인으로 상징되는 거물들을 단호하게 밀어낸 것이나 수도권에 개혁적인 젊은 인사들을 대거 배치한 것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에 비판적인 편이었던 네티즌들 가운데도 이번 한나라당 공천을 ‘3김도 하지 못한 개혁적 물갈이’라고 지지하는 층이 절반에 이르고 있다. 여권에서도 한나라당의 공천 후유증이 확산되기를 바라면서도 내심으로는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의 물갈이 공천이 미칠 파급력에 대해 적지 않게 우려하고 있다. 만일 이총재의 이번 ‘거사’가 성공으로 끝난다면 이총재는 총선 승리와 당 장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탁월한 정치력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나 이총재의 승부수가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라 해도 역풍이 만만치 않다.

첫 번째 역풍은 영남 민심이다. 한나라당 공천 발표 후 당 주변에서 가장 많이 나온 얘기는 이총재가 영남 민심을 오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번에 이총재측은 영남의 반DJ 정서가 한나라당에 대한 확고한 지지로 굳어졌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총선 이후 영남권의 독자 세력화를 막기 위해 김윤환 고문을 제거하고 이기택 고문을 무력화하는 한편 YS계에 대해서는 독자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수준에서 타협을 시도했다.

그러나 문제는 영남 민심이 그동안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를 지지해 온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한나라당 자체나 이총재 개인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한나라당과 이총재가 반DJ 단일 전선을 별 차질 없이 이끌어 온 데 있다는 점이다. 즉, 이총재가 김윤환·이기택 고문 등 구정치인을 퇴출시킨 것 자체에 대해서는 큰 반대가 없을 것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물갈이가 아니라 대권욕을 위해 반DJ 전선을 약화·분열시킨 행위로 비친다면 영남 민심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부산 공천 문제이다. 김윤환·이기택 고문의 공천 탈락 자체는 이총재측이 예상했던 대로 영남 민심의 동요를 일으킬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러나 YS측까지 배제한 것은 무리수라는 평가가 많다. 일부에서는 YS측 인사들이 전국적으로 20여 명이나 공천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상도동의 분위기는 다르다. 특히 YS측이 최소한의 요구로 제시했던 부산 해운대 기장 갑의 김광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역구를 옮겨 공천하고, 사하 갑의 최 광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것에 대해 YS측 인사들은 이총재가 YS와 결별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YS 진영이 부산 공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이번에 부산에 공천한 이른바 ‘함량 미달 3인’ 때문이다. 이상렬 (주)장평 회장(서구)과 권태망 시의원(연제구), 도종이 전 시의회 의장(진구) 등 3명이 공천을 받은 데 대해 부산에서 뒷말이 많다. 특히 서구의 이상렬씨는 DJ 사조직인 연청 부회장을 지낸 인물로 YS측이 비토 대상으로 오래 전부터 거론했던 사람이다. 일단 이들이 부산 지역에서 ‘국회의원감’으로 인정을 못 받는 데다, 이들 모두 부산에서 재력가로 알려져 있어 이총재가 차기 대선 자금줄을 마련하기 위해 이들을 공천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계의 한 인사는 최 광씨를 밀어내고 사하 갑에서 공천을 받은 엄호성 변호사가 이회창 총재의 측근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총재가 부산 민심을 무시하고 부산을 접수하려 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부산 공천이 가장 큰 실수

물론 이총재측도 YS와의 관계 문제를 놓고 고민한 흔적은 보인다. 지역구를 옮기기는 했지만 김광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공천했고, 민주계로 알려진 김무성 의원을 막판에 구제한 것은 YS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점이 YS측 인사들을 화나게 하고 있다. ‘아예 안 주려면 말든가, 주려면 확실하게 하든가 하지 잔재주를 부렸다’는 불만이다. 김광일 전 실장은 오래 전부터 해운대 기장 을의 안경률 위원장에게 지역구를 옮기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다짐해 왔는데, 이번에 이쪽으로 공천을 받고 매우 마음이 상했다. 또 YS측이 ‘우리 사람’으로 특별히 챙기지도 않았던 김무성 의원에게 공천을 준 것은 이총재측이 민주계를 죽이지 않았다는 면피용으로 마지막에 끼워넣은 결과라는 것이다.

이총재가 YS 쪽에 섭섭하게 했더라도 부산 공천에서 지역 민심을 최대한 반영했더라면 문제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천 내용에 대한 부산의 민심이 매우 비판적이고 YS의 움직임이 이러한 민심과 결합될 가능성이 있어 그 후유증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의 ‘거사’를 공천 개혁이라고 보는 흐름과 대권을 노린 사당화로 보는 흐름이 팽팽히 맞서 있는 상황에서 부산 지역의 역풍이 현실적인 힘을 갖출 경우 그 파장은 부산 지역에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구·경북 민심은 아직 김윤환 고문의 탈락에 크게 반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총재의 이번 공천이 ‘영남 죽이기, 사당화 기도’라는 비판이 부산·경남에서부터 탄력을 받게 되면 대구·경북 민심도 동요할 가능성이 있다. 김윤환 고문측의 한 인사는 “이총재 캠프가 복잡한 영남 정서의 핵심을 읽을 줄 모르고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마치 자기에 대한 절대적 지지인양 탁상공론 식으로 너무 비약했다”라고 지적했다.

이회창 시나리오를 위협할 두 번째 역풍은 이번 공천이 명분이 약한 ‘정략 공천’이라는 여론이다. 김윤환·이기택 고문 등 구정치인에 대한 물갈이를 표면에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철저하게 차기 대권을 노린 ‘대권 공천’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은 것이다. 조 순 명예총재가 이번 공천은 공천(公薦)이 아니라 사천(私薦)이라고 쏘아붙인 것은 이총재측에게는 뼈아픈 일격이다. 특히 조명예총재가 서울 종로 지역 공천을 반납한 것은 이총재측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 사건’이었다. 조명예총재의 경우, 정치 기반은 거의 없지만 여론의 향배를 좌우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인사라는 점에서 당내에서는 그를 끌어안고 가야 했는데 너무 과욕을 부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총재측은 이번 총선을 계기로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예고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혁명의 필수 요소인 ‘살신 성인의 자세’보다는 ‘어설픈 권력 의지’가 너무 많이 드러났다는 당 안팎의 비판적 평가에 부닥쳤다. 이총재가 그동안 여권의 파상 공세와 당내 비주류의 흔들기에도 불구하고 제1 야당 지도자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지켜온 정치적 생명의 원천은 집권당의 독선을 견제할 수 있는 단일 야당의 대표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에 야당의 분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그 원인이 이총재의 대권욕 때문이라는 비판이 여론의 힘을 얻게 되면 이총재로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총재를 위협하는 세 번째 역풍은 이총재의 정치 성향에 대한 비판적 평가다. 여당도 아닌 야당에서 당내 비주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은 포용력 없는 독선적 리더십이라는 비판이다. 김덕룡 부총재가 “여당이 야당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당내에서 비주류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총재는 뭐가 다르냐”라고 날을 세운 것이나, 지난 대선 때 이총재의 ‘핵심 7인’으로 활약했다가 관계가 소원해져 이번에 공천에서 탈락한 백남치 의원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이총재를 믿고 같이 정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흥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이들의 항변에는 사적인 감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김윤환·이기택 고문 퇴출은 구시대 정치인에 대한 물갈이라고 쳐도 비교적 개혁적이라는 평을 들어온 김덕룡 부총재·조 순 명예총재와 민주계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칼을 휘두른 것은 ‘대권욕에 집착한 무리수’였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총재에 비판적인 수도권의 한 한나라당 의원은 “이총재가 좋아서가 아니라 선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이다. 선거 끝나면 이총재와 같이 대선까지 가지 않겠다는 사람이 적잖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논란은 있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공천 재심 등의 방법으로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는 상황은 이미 아니다. 이제 김대중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를 위해 한나라당으로 힘을 모으자고 호소하는 이총재측과, 이총재가 대권욕에 집착해 당을 사당화했다고 비판하면서 대안 세력을 모색하는 세력 사이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한나라당에서 거세된 비주류 연합군은 예상과 달리 신당 창당을 목표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월20일 김윤환·이기택·신상우·조 순 씨 등 이총재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신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그동안 새로운 정치 세력 결집을 도모했던 이수성·김용환·장기표·정호용 씨 등과도 활발히 접촉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신당 추진 움직임 역시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총재측이 주장하는 대로 명분이 약하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구시대 정치인들의 생존 전략으로 비쳐 여론의 힘을 얻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내에서 차세대 지도자 이미지가 있는 김덕룡 부총재나 대구의 강재섭 의원 등이 당에 남아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나선 것도 신당 추진은 명분이 약하다는 고민 때문이다. 또한 이들 신당 추진 세력은 정치 성향도 매우 다르고, 확실한 지역 기반을 가지고 있는 인사들도 별로 없다. 총선까지 시간이 없다는 점과 자금도 문제다.
YS 움직임이 관건

역시 관건은 YS를 중심으로 하는 PK 지역의 움직임이다. YS는 이번 기회에 이총재와 확실하게 선을 긋고 부산·경남 지역 총선에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김광일 전 실장의 공천 반납은 그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YS가 움직인다면 반DJ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이총재가 DJ의 독재를 따라 가고 있다’고 치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김광일 전 실장이 탈당 기자회견에서 이총재를 독재자라고 규정한 것 역시 YS의 어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YS는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신당 추진보다는 부산·경남 지역의 무소속 연대 쪽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신당의 경우 명분이 약하고 YS의 본격적인 정치 재개로 받아들여져 여론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공천에서 밀린 김광일 전 실장, 최 광 전장관 등 중진들과 오규석 전 기장군수, 김용철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등 30∼40대 젊은 인사들을 무소속으로 내보내 간접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신당 추진 흐름이 여론의 호응을 얻게 되면 YS가 신당을 지원하는 쪽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PK 지역의 무소속 연대와 관련해서는 박찬종 의원의 움직임이 변수다. 박씨는 최근 문정수 전 부산시장과 무소속 연대를 모색하기로 합의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박씨는 특히 YS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한나라당 공천 발표 후 김해 선영에 갔다 오는 길에 마산에 들러 YS의 부친인 김홍조 옹에게 인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는 김옹이 YS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YS와 박씨가 직접 통화를 했다고 한다. YS의 지원을 업고 그가 나서는 무소속 연대라면 부산 지역에서 파괴력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다. 이 경우 김운환·서석재 의원 등 여당으로 갔던 민주계 인사들도 여기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비주류 연합의 신당 창당 움직임이든 YS 쪽의 움직임이든 일단 여론과 지역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며칠 사이에 결론이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측은 반발 기류가 힘을 더하기 전에 부산의 이상렬씨 등 일부 공천 인사를 교체하는 선에서 사태를 매듭짓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개혁적 물갈이 공천이라는 점을 여론에 호소하며 빨리 선거전으로 돌입함으로써 비주류의 도전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진정한 개혁인가, 권력욕인가

결국 문제는 여론의 흐름이다. 한나라당 공천에 대해 영남 민심을 비롯해 일반 여론이 어떻게 판정하느냐에 대해 이총재는 물론이고 비주류 중진들과 YS측 역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공천 발표 이후 이 문제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이총재측 한 인사는 이번 공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동안 개혁과 물갈이가 국민 여론 아니었는가. 이번에 여러 어려움과 후유증을 무릅쓰고 구정치인에 대한 물갈이를 단행했고, 수도권에 개혁적이고 참신한 젊은 인사들을 파격적으로 공천했다. 작은 문제는 있겠지만 크게 보면 개혁을 위한 몸부림인데 왜 이것을 비판하는가.”

이에 대한 비판은 이렇다. “이총재가 부분적으로 개혁과 물갈이를 위해 노력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정형근 의원을 과도하게 감싼 것이나 시민단체들의 정치 개혁 요구에 부정적이었던 점 등으로 볼 때 이총재의 개혁 의지를 온전하게 신뢰하기 어렵다. 개혁을 대권을 위한 정략에 활용한다는 의심이 든다.”

이 두 가지 주장 가운데 국민들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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