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포기하고파" 혼란 빠진 호남 유권자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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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유권자들, 민주당·우리당 공천 행태에 실망
지난 1월30일, 열린우리당 광주시지부 사무실에는 낭보가 잇따랐다. 그 날 아침 <광주일보>와 광주방송(KBC)이 광주·전남 유권자를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발표에서 지난해 10월 이후 계속 열세를 면치 못하던 열린우리당 지지율(24.8%)이 민주당(23.2%)을 처음으로 앞섰다. 오후에는 정동영 당의장이 광주 양동시장을 방문했는데, 상인들이 정의장과 악수하려고 서로 손을 내밀 정도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열린우리당 광주시지부 당직자는 “광주에서 우리가 민주당을 이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텃밭이 흔들리는 조짐이 보이자 민주당은 2월3일 광주 구동 실내체육관에서 당원 1만2천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 노무현대통령과 정동영 당의장을 규탄하기로 했다. 민주당 광주시지부 반정환 상황실장은 “열우당이 박광태 시장과 박태영 도지사에게 민주당 탈당을 획책하고 협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주당 지지층이 눈에 띄게 재결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간부 박 아무개씨(35)는 “민주당의 행태는 김대중 정부 때 한나라당이 걸핏하면 부산으로 대구로 달려가 정권 규탄 대회를 열었던 지역주의 정치를 연상시킨다”라고 비난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호남지역 유권자들을 볼모로 삼아 벌이는 영토 싸움에 광주시민들은 “관심 없다. 지겹다. 혼란스럽다”라는 말을 쏟아냈다. 광주의 한 대학 교수는 “광주가 선택한 노무현이 민주당을 깨고 나가면서 상당수 시민들이 괘씸하게 여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구태 정치는 척결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권자 정 아무개씨는 “어차피 민주당과 우리당은 나중에 합쳐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꼭 투표할 생각은 없다”라며 투표 불참 의사를 밝혔다.

유권자들은 특히 두 당의 무성의한 인물 공천에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을 듣는 대표적 사례는 광주 동구와 전남 여수 선거구이다. 광주 동구는 현재 민주당에서는 김경천 의원·김대웅 전 광주고검장·광주평화개혁포럼 구해우 대표가, 열린우리당에서는 노인수 변호사·양형일 전 조선대 총장·이윤정 전 광주시의원·박 현 전 청와대 행정관이 공천을 신청했다. 동구 유권자 한 아무개씨(39)는 “현역 의원은 지역 발전에 소홀했고, 김대웅씨는 이용호 게이트 때 검찰 간부로서 망신을 당한 사람이다. 신인이라는 구해우씨는 한화갑씨 계보라고 하더라. 우리당의 노인수·양형일·박 현 씨도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전남 여수 선거구는, 민주당 공천을 신청한 김충조 의원과 신순범 전 의원, 정당인 신장호씨 등 6명 모두가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단골이다. 열린우리당으로 옷을 갈아입은 주승용 전 여수시장이나 김성곤 전 민주당 의원도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다. 시민운동가 이 아무개씨(42)는 “주승용씨는 선거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았고, 선거 때마다 ‘경선 불복’ 전력이 있는데도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이번에 열린우리당 전남도지부장에 선출되었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나 행태가 똑같다”라고 혹평했다.

현역 의원 물갈이와 참신한 인물 공천을 바라는 호남 지역 유권자들의 기대는 지난해 10월 여론조사에서 50%, 12월에 57%, 올해 1월에는 72%로 점점 높아가고 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과감한 인물 공천에 실패한다면 40%나 되는 호남의 부동층은 아예 투표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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