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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 축소, 어떻게 이루어지나

정상회담으로 논의 ‘물꼬’ 트여… 병력 및 5대 공격용 무기 감축이 핵심 의제… 주변국과 이해 조정 ‘잠복 변수’

丁喜相 기자 ㅣ 승인 2000.07.06(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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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남북한 두 정상의 의지 표명은 몇 가지 극적인 삽화와 함께 큰 기대를 모았다. 한국전쟁 50주년을 앞두고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나란히 인민군 의장대 사열을 받았다. 국군 통수권자가 그동안 ‘적군’으로 규정한 인민군 앞에 북한 통수권자와 나란히 선 모습은 앞으로 전개될 남북 관계가 변화할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었다. 조명록 차수를 비롯한 북한군 수뇌부는 사복 차림으로 김대통령 앞에 섰고, 조성태 국방부장관 등 국군 수뇌부가 남측 수행원 일행에서 빠진 데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다. 회담 기간에 김정일 위원장은 인민군 간부들에게 즉각 휴전선에서 인민군이 대남 비방 방송을 먼저 중지하고 그동안 준비해온 6·25 50주년 기념행사를 모두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더 나아가 남북한 군대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 주적 개념만 늘어난다며 앞으로 경의선 철도를 복구하게 되면 맨 먼저 군대를 동원하자고 제안했다.

한반도 군비 밀도 세계 최고

당초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 완화 논의를 매우 까다롭고 접근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여겼던 김대통령 일행은 북한측의 이같은 태도를 접하고 매우 고무된 것으로 알려진다. 회담 기간에 두 정상은 ‘전쟁 종식’ 방안을 둘러싸고 깊은 얘기를 주고받았으며, 그러한 공동 인식은 김대통령의 귀경 첫 일성으로 표현되었다. 남북한 사이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선언이 바로 그것이었다. 북측이 취한 상징적 긴장 완화 조처들에 대한 화답도 뒤따랐다. 휴전선에서 진행해온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단하고, 대대적으로 준비해온 6·25 50주년 행사도 간단한 추모식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렇게 축소해 치른 6·25 50주년 추모식에서 김대통령은 남북한 정상의 공동선언문에 명시하지 않았던 전쟁 종식 방안에 대한 화두 하나를 끄집어냈다. 남북한이 군사위원회를 설치해 긴장 완화와 상호 불가침 등 평화를 위한 조처를 적극 협의해 간다는 내용이었다. 두 정상이 전쟁 종식 의지를 표명하고 상징적인 군사 신뢰 조처를 취한 데 이어 이를 보장할 제도적 장치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언급한 것이다.

전세계가 바라보는 가운데 남북 두 정상이 나란히 전쟁 종식 의지를 표현하기까지는 한 차례 대규모 전쟁과 뒤이어 끝없이 군비 경쟁에 매달린 50년 세월이 필요했다. 그 긴 세월 켜켜이 쌓인 군사적 불신과 팽팽한 긴장감, 남북한에 현존하는 가공할 살육 무기들 때문에 국민들은 두 정상의 선언에 모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에서는 반신반의하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공동선언문에 군사 문제와 평화 정착 조처들이 명시되지 않은 점도 우려를 낳았다. 이에 대해 한양대 리영희 명예교수는 “1991년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에 들어 있는 남북 상호 불가침과 군축 문제가 성명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 평화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어차피 한국 대통령에게는 군사 문제를 해결할 결정권이 없다고 여긴 북한측이 미국과 협의하기 위해 이 문제를 빼고, 다만 남북한 두 정상이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상징적 선언으로 대체했으리라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군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 핵심인데 사실상 무력화한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문제는 남북한만이 합의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1992년 체결된 남북한 기본합의서 체제를 복원하기로 남북한 두 정상이 교감했지만 주변 관련국들의 협조가 없이는 실천하기 어려웠던 역사적 경험을 고려해 성명에는 이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남북한은 실천 가능한 군사적 긴장 완화 조처들을 차근차근 취해 갈 것이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남북 군사 회담이 곧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남북 관계의 경험에 비추어 경협과 교류가 아무리 확대되더라도 군사 면에서 신뢰 구축이 병행되지 않으면 언젠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발적인 한 발의 총성으로도 모든 노력이 일순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 한반도 긴장 상태의 현주소이다. 따라서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의 실천적인 노력은 화해 협력 시대를 뒷받침하는 선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끝없이 재래식 군비 경쟁을 해온 결과 현재 한반도는 전세계에서 군비 밀도가 가장 높은 지대가 되었다. 1백75만여명(북한 1백5만, 남한 70만)에 달하는 남북한 병력은 세계 최강 군사 대국인 미국(1백30만)보다도 많다. 독일 34만5천명과 일본 23만5천명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 병력만이 아니다. 남한은 1970년대부터 율곡 계획을 통한 자주 국방 정책을, 북한은 기동력과 화력 위주의 속전속결 전략을 추구해 왔다. 그 결과 북한은 현재 공세적 기동 전력에 해당하는 38개 전차 및 기계화 보병 여단과 30개 포병 여단, 24개 특수 여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기습 공격하기 쉽도록 개성 이남에 전진 배치되어 있다. 남한은 전술 핵무기를 보유한 미군이 주둔하는 것 외에도 우수한 첨단 공격용 무기들을 끊임없이 증강해 왔다. 남북한이 보유한 대표적인 공격 무기만 보더라도 전차 6천대, 화포 3만여 문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재래식 군비 경쟁을 벌인 결과 남북한은 방어 목적을 훨씬 뛰어넘는 가공할 전력을 유지해 팽팽한 군사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 남한이 무기의 질과 전쟁 수행 능력에서, 북한이 병력과 무기 숫자에서 각각 앞서고 있는 대치 상태에 대해 군사 전문가들은 ‘비대칭적 균형’이라고 표현한다.

남북한 간에 군사비 지출 규모의 격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1995년 남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남한이 1백43억6천만 달러로 52억3천만 달러를 지출한 북한에 비해 2.74배나 높다. 지난해 말 영국 정부 산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군사력 행사 능력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군사력을 평가한 결과 남한이 6위이고 북한은 7위라고 발표했다.

국내외 학계에서는 수적으로 우세한 북한군이 남한과의 재래식 군비 경쟁에서는 완패했다고 판정한다. 인민군의 무기 체계는 이미 노후한 모델인 데다 이마저도 경제난에 따른 연료·부품·보급 물자 부족으로 가동률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북한은 화학·생물학 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또 유사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대구경 포대를 휴전선에 전진 배치했다. 프로그 미사일과 170㎜ 야포, 240㎜ 다연장 방사포를 보유한 이들 포대는 수도권에 분당 1만 발 정도로 포탄을 쏟아부을 수 있다. 사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느 쪽의 군사력이 더 우위인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국이 첨단 정밀 무기와 전쟁 수행 능력에서 북한을 앞서고 있다 해도 북한은 전쟁 발발시 한반도 전체 인구를 세 번 절멸시킬 수 있는 살상 무기와 재래식 전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이 6·25 50주년 기념식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한민족 전체는 공멸한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 이후 펼쳐질 화해와 평화 시대에서 최대 숙제는 군비 축소를 통한 전쟁 방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군비 축소로 나아가는 길에는 걸림돌이 만만치 않다. 그동안 남북한은 군사적 긴장 완화 조처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세우며 팽팽히 맞서왔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군축 문제를 먼저 들고 나온 쪽은 북한이다. 1958년 북한에 주둔하던 중공군 8만명이 철수한 것을 계기로 북한은 줄곧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 왔다. 감군(減軍) 역시 북한이 일관되게 들고 나왔다. 1962년 북한은 처음으로 남북한 양측 군대를 10만명 선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이어 1975년에는 다시 10만명 이하로 감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냉전 시대에 나온 이같은 제안은 평화 공세를 위한 선전 차원에 머물렀다. 당시 정부는 여기에 일절 대응하지 않았고, 국내에서 공론화한 적도 없다. 정부, 5대 군사적 신뢰 구축 조처 추진

이같은 북한의 군축 공세에 대해 한국은 정치적·군사적 신뢰를 먼저 구축한 다음 군축을 논의해야 한다는 단계론으로 맞섰다. 또 수적으로 더 많은 인민군이 먼저 국군 수준으로 병력을 줄인 뒤 상호 감축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북한은 정치적·군사적으로 신뢰 구축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군축이 실현되는 단계이니 신뢰 구축과 군축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자고 주장함으로써 양측은 접점을 찾지 못했다.

군축을 둘러싼 양측의 팽팽한 대립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것은 노태우 정권 당시 남북 고위급회담에서였다. 한국에서 군축이 처음으로 공론화한 이 시기에 민간 통일운동 세력과 학계에서도 비로소 군축 논의가 활발히 일기 시작했다. 1990년 봄 민간 단체들은 ‘한반도 평화와 군축을 위한 300인 선언’을 발표하고 남북한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실천적 조처를 취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북한은 1991년 5월31일을 기해 기존 주장을 대폭 수정한 새로운 군축안을 제시했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뒤로 미루고 남북한 병력을 30만명 수준으로 줄이자는 내용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당시 한국 정부는 북한과 협상해 남북한 군사 긴장 완화에 대한 포괄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남북한 상호 불가침과 무력 불사용, 분쟁의 평화적 해결,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 군사력 단계 감축 등이 그 골자였다. 이 내용은 남북 기본합의서와 부속 합의서에 그대로 담겼다. 군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당시 남북 정부는 군사공동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1992년 11월5일부터 열기로 했던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는 첫 회의조차 열지 못했다. 미국이 북한 핵 개발 의혹을 들고 나오고, 한·미 간에 팀스피리트 훈련이 진행되자 북한이 이에 항의해 불참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 긴장 완화 조처에 대한 중요한 합의서가 휴지조각이 된 채 8년여가 흐른 끝에 이번 정상회담으로 비로소 군축 논의의 물꼬가 다시 트인 셈이다. 김대통령은 최근 들어 부쩍 1991년에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대로만 나아가면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 체제 구축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 기간에는 김정일 위원장과 이 문제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논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야당 시절부터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 방안에 대한 구상을 준비했는데, 여기에는 남북한 상호 군축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기본 구상은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군축을 병행해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핵무기 및 화학무기와 같은 대량 살상 무기와 남북이 서로 보유한 공세적 전력을 우선 감축하고, 나아가 군비 통제를 서로 검증할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이 자기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안보도 존중하는 공동 안보를 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대결 체제를 협조 체제로 전환하자는 것이 김대통령의 구상이었다. 이번 정상회담 기간에 이같은 뜻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하고 상당한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후속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이미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군 당국 간의 직통 전화 설치 외에도 남북한 사이에 논의할 5대 군사적 신뢰 구축 조처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 부대 이동과 군사 연습 사전 통보 및 통제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 △군 인사 교류 및 정보 교환 △대량 살상 무기와 공격 무기 제거를 위한 군축 △군축에 대한 상호 검증 등은 김대통령이 오랫동안 구상해온 조처들이다. 물론 그 대부분은 1991년 체결된 기본합의서에도 반영된 내용이다. 김대통령이 6·25 기념식장에서 운을 뗀 남북 군사위원회는 바로 이같은 조처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실천하기 위한 창구인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남북한 군사회담에서는 신뢰 구축과 군축 방안이 동시에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병력 감축 논의를 우선시했지만 실제 협상에 들어가면 남북한이 보유한 상호 공멸 무기 감축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기를 그대로 놓아둔 채 병력만 감축한다는 것은 진정한 군축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대량 살상용 화생방 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이 그것이다. 병력 35만 수준으로 감축하는 데 의견 접근

아울러 남북한 모두 병력의 70% 이상을 전방에 배치한 상태여서 군사력 재배치를 통한 위협 감소도 주요 현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는 논의는 이런 병력 재배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북한의 경우 대구경 포대가 휴전선에 밀집해 있고, 남한측 역시 병력과 화력의 90% 이상이 대전 이북에 밀집해 있다. 주한미군도 주로 전방에 버티고 있다. 따라서 병력 재배치 협상에서는 주한미군 위상 변화 논의와 함께 후방으로 재배치하는 문제도 현안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24쪽 딸린 기사 참조). 아울러 서로의 공격 능력을 제거하는 차원에서 남북한이 함께 보유한 5대 공격용 무기, 즉 탱크·장갑차·야포·공격용 헬기·전술기 감축이 우선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해상 전력인 잠수함과 전투함을 포함해 보유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감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북한 무기의 질적 차이 때문에 양적인 비교가 곤란할 경우 해당 무기의 화력 지수를 감안해 보유 상한선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동수 감축’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병력 감축에 대해 북한은 오랫동안 주장해온 10만명 수준에서 30만명으로 후퇴했다. 김대통령 역시 그동안 통일 방안 연구 과정에서 남북한의 적절한 병력을 30만이라고 제시해 왔기 때문에 큰 이견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남북한 실무자 사이에서는 병력을 35만명 수준으로 맞추자는 데 의견이 접근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남북한이 서로 과다한 병력을 보유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에 군축 논의에서 병력 감축의 필요성은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한국군의 경우만 해도 해마다 국방 예산의 70%가 인건비와 부대 운영비로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남북 양측은 병력을 감축해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효과와 경제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 한국군의 병력 감축 논의는 소수 정예 과학군이라는 현대 국방 개념에 따라 오래 전부터 군 주변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주제였다. 다만 남북한 모두 단시일에 급격하게 병력을 감축할 경우 현행 병역 제도를 개편해야 하는 데다 일시에 방출되는 유휴 인력이 사회·경제 문제로 떠오를 수도 있으므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감축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정상이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그 후속 작업으로 군축 조처를 서로 추진해 간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남북한의 군축 흐름과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주변 국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는 남북한과 미국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남북 정상회담 직후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이 한반도 평화유지군 기능을 수행한다면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은 문제가 꼬일 소지를 한결 줄여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집요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군사대국화를 추진해온 일본도 한반도 평화와 군축 문제가 급진전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결국 한반도 주변국들의 이해가 엇갈린 상태에서 이들로부터 군축에 대한 보장과 지지를 확보하지 않은 채 논의가 진행되면 커다란 장애에 부딪힐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한반도 전체의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 때문에 남북한 간의 군축 논의는 단순히 창을 녹여 보습을 만드는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주변국들과 어울리는 적정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진행할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남북한이 군축을 하는 목적은 한반도의 안전과 한민족 전체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내외의 모든 위협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북한 군축 문제가 전쟁 방지와 평화 공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필요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김대통령이 오랫동안 강조해온 내용이기도 하다. 남북한과 주변국의 이익을 조화시키지 못하는 군축 논의는 실패한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상황 인식이다. 남북 두 정상이 귀엣말로만 주고받고 공동선언에 포함하지 못한 군사 문제 해법 찾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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