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쿠데타 성공할 것인가
  • 崔 進 기자 ()
  • 승인 199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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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추와 결합해 신당 창당→조 순 민주당과 합당→ 단일 후보 노려…조직·자금 열세 등 ‘난관’ 수두룩
반란이냐, 혁명이냐. 엄청난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출사표를 던진 이인제. 그는 요즘 자신의 모험이 실패하면 반란자, 성공하면 혁명가가 된다는 절박한 인식 아래 ‘이인제 신당’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여의도 신한국당 당사에서 겨우 50여 m 떨어진 안원빌딩 901호. 아무런 간판도 붙어 있지 않은 90여 평 공간이 지금 이인제 후보가 혁명을 꿈꾸고 있는 임시 사령부다. 요즘 이곳은 상근·비상근 요원 30여 명이 전화 받으랴, 컴퓨터 치랴, 신문을 펴놓고 대책회의를 하랴 부산하다. 이들은 머지 않아 근처 미주빌딩 5층에 있는 정발협 사무실로 사령부를 옮겨‘이인제 신당’의 중앙 당사로 삼을 참이다. 이후보 진영은 9월 말까지 신당의 골격을 완성한 뒤 10월 중순 신당을 공식 출범시킨다는 시나리오를 세워놓고 있다.

이인제는 왜 그토록 위험한 모험을 감행했을까. 많은 사람이 이후보가 후보 자리만 빼놓고 어떤 자리든지 다 주겠다는 이대표측의 유혹을 뿌리치고 굳이 형극의 길을 택한 이유를 궁금해 한다.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단순히 이인제가 왜 출마했는가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실마리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인제측 “대쪽보다 DJ가 정권 잡는 게 낫다”

이후보의 출마 논리는 한 핵심 참모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이인제 후보가 가만 있는 상태에서 이대표가 정권을 잡으면 이후보를 그냥 놔둘 리 없다. 반대로 이대표를 도와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별로 실익이 없다. 국무총리를 준다고 해도 길어야 1년6개월이고, 당권을 잡아 2인자가 되더라도 권력생리상 집권자가 가만 놓아두겠는가.”

따라서 이후보는 이대표에게 투항하느니 차라리 독자 출마하는 편이 미래를 기약하는 데 이롭다는 것이다. 이후보가 집권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설사 패하더라도 여권 내부에 잔류하는 것보다 더 큰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후보의 한 핵심 참모는 “어차피 이번 대선에서 DJ가 되든 누가 되든 한 사람이 권력을 독점할 수 없다. 이후보는 대선 전에 캐스팅 보트 노릇을 할 수 있고, 패하더라도 유망한 정치 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후보 주변에서는 심지어 이대표가 정권을 잡느니 차라리 DJ가 잡는 것이 이후보의 미래를 위해 유리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DJ가 정권을 잡아야 세대 교체 깃발을 펄럭이며 내년 6월에 실시될 서울시장 선거와 다음 대선을 대비하기에 더 유리하다는 얘기다.

결국 이인제의 계산법은 이기든 지든 출마하는 편이 낫다는 논리로 귀착된다. 그러나 이기기 위해서는, 그리고 지더라도 대선 이후 유망한 정치 세력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세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 득표율이 형편 없이 낮을 경우 제2의 박찬종 또는 제2의 이종찬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실제로 이후보 지지도는 DJ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집권할 가능성은 이대표에게 크게 뒤지고 있다. 이후보 진영이 외부 인사 영입과 다른 정파와의 연대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후보 진영이 오래 전부터 영입하려고 공을 들여온 사람은 이수성·박찬종 고문이다. 이후보측은 이들이 복잡한 여권의 속성 때문에 망설이고 있지만 신당이 출범할 때 막판에 합류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이후보가 외부 인사 영입과 함께 힘을 쏟고 있는 1순위 작업은 민주당 조 순 총재와의 연대. 이후보측은 조후보의 민주당이 개혁 지향이고 3김 청산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세대 정치 그룹을 형성할 최상의 파트너로 보고 있다. 9월 중순, 양측 관계자들이 저녁을 함께한 자리에서 이인제와 조 순의 지지 기반이 중첩되므로 두 사람은 둘 중 한 사람이 출마해야 득표력을 배가할 수 있는 대체재라는 얘기까지 오갔다고 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이후보의 20%대 지지율과 조후보의 15%대 지지율을 합하면 30%를 껑충 뛰어넘어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추월하게 된다. 지지 기반이 중첩되는 양자가 결합할 경우 이탈표는 거의 없으리라는 관측이다.

이후보측이 조후보와의 연대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민주당을 고스란히 접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보의 한 측근은 “전국에 지구당 조직을 갖고 있는 민주당과 손을 잡는다면 전국 조직망을 새로 짜야 하는 번거로움과 물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조후보 진영 역시 어차피 혼자 싸워서 이기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어 양측이 연대할 가능성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문제는 누구로 단일화하느냐 하는 점이다. 두 사람의 지지도 차이가 5% 정도여서 어느 한쪽이 선뜻 후보를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단일화는 우열이 뚜렷이 갈라지는 DJP 단일화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후보측이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는 또 다른 진영은 김원기 대표의 국민통합추진위. 이후보는 9월18일 여의도 6·3빌딩에서 통추의 김대표와 몰래 만나 1시간 동안 깊숙한 대화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후보는 집권하면 당과 정을 철저히 분리한다는 권력 분점안을 제시하면서‘손잡자’고 제안했다. 이에 김대표는‘시간을 달라’고 일단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조 순 후보를 영입할 때 민주당에 선수를 빼앗긴 통추가 서둘러 이후보측과 손잡을 가능성도 있다. 이후보 진영은 10월 중순 창당 전에 1차로 통추와 결합하고 창당 이후 2차로 민주당과 합당하는 수순을 상정하고 있다. 이른바 ‘민주 대연합’ 그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통추와 민주당 간의 감정 대립, 민주당 내부의 견해 차이라는 험난한 과제가 남아 있다.
합당 실패 땐 민주산악회 업고 단독 출마

이인제 진영은 이도저도 안되면 2백만 회원을 자처하는 민주산악회(민산) 조직을 지구당 조직으로 개편해 단독으로 출마할 계획이다. 민산 지도부는 지난 8월 이회창계인 황명수 회장을 제명하고 이인제계인 박태권 전 충남지사를 새 회장으로 추대했다. 박회장이 민산을 이인제 지원군으로 몰고가기 위해 발벗고 나섰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난관은 있다. 일부 핵심 회원이 민산이 이인제를 지지하는 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12일 오전 11시께 서울 서교호텔 4층. 민산 전국 시도협의회장단 3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박태권·유성환 등 이인제 지지파는 서청원 의원을 새 회장으로 추대해 이인제를 밀어주자고 강력히 제안했으나, 경기도협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반대파가 민산의 중립성을 주장하며 반발했다. 민산은 지난 경선 때 이수성·이인제·김덕룡·이한동 지지 세력으로 4분되었다가 경선 이후에는 크게 이인제파와 중립파로 양분되어 있다.

민산의 분열 외에도 이인제 후보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은 많다. 우선 위기에 몰린 이회창 대표가 대반격의 일환으로 ‘보수 대연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대표를 비롯해 김명윤·김윤환·이한동 등 당 원로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는 보수 대연합은 대선 정국을 보수 대 진보의 싸움으로 몰고가면서 이후보 진영을 진보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후보측에 불리하다.

그동안 여권 핵심부는 추락하는 이대표를 끌어올릴 방법은 현재의 다자 구도를 ‘김대중 대 이회창’양자 구도로 몰고가는 길뿐이며, 동시에 JP를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렇지 않아도 DJ가 1위를 달리고 있는 판국에 DJP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는 날에는 DJ 대세론이 굳어지고, 역전할 기회는 물 건너 가기 때문이다.

이대표 진영이 보수 대연합을 시도한다면 이인제 신당은 본의 아니게 진보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이때 이인제 진영은 민주당과 통추·민산·정발협을 망라하는 개혁 연합 세력을 형성해 싸움을‘수구 대 개혁 세력’의 대결 구도로 몰아간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대표 진영의 보수 대연합은 시도도 하기 전에 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내부 반발에 직면하자 이대표가 한발짝 물러선 것이 바로 프랑스식 대통령제, 즉 이원집정부제 형태라는 분석이다. 이는 현상태로는 승산이 적다고 판단한 이대표측이 어떻게든 현재의 판세를 흐트러놓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래저래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대표 진영이 내심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은 YS의 소극적인 태도다. 이대표 측근들은 지금도 YS가 이인제를 주저앉히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는지 일말의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대표의 한 참모는 그 증거의 하나로 이인제의 부인이라고 자처하는 전화 부대가 주로 영남 지역에 전화를 걸어 YS가 이인제 출마를 묵인했으며, 상황이 변하면 YS가 이인제를 막후 지원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대표 진영을 자극하는 소식은 또 있다. 예를 들어 권력 만들기의 귀재라는 별명을 듣는 전병민 전 청와대 정책수석이 얼마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대표의 대안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전씨는 최근 이대표의 한 핵심 참모에게 찾아와 대선 정국과 관련해 다양한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회창, 이인제 침몰시킬 특단 조처 강구

아무튼 위기에 몰린 이대표가 이인제호를 침몰시키기 위해 몇 가지 특단의 작전을 구상 중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과연 이인제 신당은 성공할 것인가. 그 해답은 당장 눈앞에 닥친 몇 가지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우선 조직 규모다. 9월19일, 원외 지구당위원장과 전직 의원 15명이 이후보 진영에 가담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 없다. 이후보측은 이대표가 총재 직을 물려받는 9월 말, 이대표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2차 집단 탈당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지만, 과연 몇명이나 더 참여할지 의문이다.

대선 자금도 문제다. 이후보측은 텔레비전 토론과 대중 접촉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예로 볼 때 개인의 인기가 그대로 표로 연결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각에서는 이인제 지지 의원들이 선뜻 이후보를 따라나서지 않은 것은 사실 자금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뿐 아니다. 감사원이 난데없이 서울시와 경기도에 대한 특별 감사에 들어감으로써 이인제·조 순 두 사람을 압박하고 있다. 과거 비리 여부에 대한 내사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앞으로 돈줄을 차단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관측이다.

결국 이후보 진영의 정치적 파괴력을 가늠하는 분수령은 신당이 출범하는 10월 중순이다. 요컨대 신당에 얼마나 많은 세력을 끌어들이느냐와 다른 정파와의 연대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이후보의 위상과 미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인제 신당이 반란군이 되느냐 혁명군이 되느냐 여부는 1차로 10월 중순까지 어느 정도 전과를 올리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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