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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김 대물림하는 ‘레임 덕’ 현상

전­노­김 임기 말 위기 ‘대물림’…비상구는 민심 따르는 길뿐

李政勳 기자 ㅣ 승인 1997.06.12(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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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은 임기를 8개월여 남긴 상태에서 극심한 레임 덕을 겪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임 대통령의 임기 말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양상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레임 덕 현상은 뒤로 갈수록 더욱 심해져, 최근에는 각 언론이 앞 다투어 ‘대통령 하야’를 주제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 씨는 하야나 사망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대통령직을 물러난 반면 전두환(11대 제외)·노태우 씨는 임기를 채웠다. 전-노-김으로 이어져온 대통령 직 승계는 ‘종신 집권’을 연상시키던 이승만·박정희 시절보다는 훨씬 순조로웠다. 이처럼 대통령 임기제가 정착해 왔는데도 레임 덕 현상이 심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전두환씨는 80년 8월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유신 헌법 체제에서 11대 대통령에 올랐다가 5공화국 헌법으로 개헌한 후 81년 3월 다시 1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79년 12·12사태로 군권을, 5·18 이후에는 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 절대 권력을 장악한 상태였다. 5·18을 계기로 그는 김영삼씨를 가택 연금하고, 김대중씨를 광주항쟁 주모자로 몰아 내란죄로 기소했다. 김종필·이후락 씨 등 박정희 정권 시절의 고위 인사에 대해서는 사회 정화 차원에서 사정의 칼을 휘둘렀다. 언론 통폐합을 실시하고, 12대 대통령에 취임해서는 중화학공업 통폐합 조처를 발표해 재벌까지도 휘어잡았다.

83년 5월 가택 연금 중이던 김영삼씨가 단식에 들어간 것은 전두환 정권의 장악력에 틈새를 만든 대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민추협이 구성되고 신한민주당이 창당되었다. 미국으로 추방되었던 김대중씨가 귀국하면서 더욱 힘을 얻은 신한민주당은 85년 2·12 총선을 통해 제1 야당으로 떠올라 전두환 정권에 압박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전두환 정권, 4·3호헌 조처로 국민적 저항 불러

학생운동권은 행동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선 전위 부대였다. 86년 5월3일 인천 사태가 일어나고 7월2일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일어나면서 학생운동권의 ‘정권 타도’ 외침은 더욱 높아졌다. 임기 말인 87년 1월14일 일어난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도덕성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렸다. 이후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라고 요구하는 구체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이에 대해 전두환 정권은 4·3 호헌 조처로 맞섰다.

국민적 요구와 동떨어진 호헌 조처는 거대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6월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시위 도중 최류탄을 맞아 뇌사하고, 다음날 박종철군 고문 치사를 규탄하는 6·10 시위가 일어났다. 6월18일과 6월26일 연달아 열린 전국적인 시위에는 넥타이를 맨 중산층이 가담했다. 이에 대해 전대통령은 단임 취소와 군부대 동원설 등을 흘리며 협박 전술을 구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는 6·29 선언을 준비시켜 노태우 대표로 하여금 이를 발표케 한 것으로 알려졌다.

6·29 선언은 극적으로 상황을 반전시켜 전두환씨도 살고 국민도 승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는 5·18을 주제로 한 정치학회 심포지엄에서 “80년 5월 광주항쟁 없이 87년 6월항쟁을 생각할 수 없다. 독재 권력에 저항하는 광주항쟁이 신군부에 의해 좌절됐다가 그 에너지가 7년 후 터져 나온 것이 6월 항쟁이다”라고 정리했다. 그의 주장을 따른다면, 전두환 정권의 레임 덕은 광주 항쟁으로 상징되는 민주화 요구를 억압한 데서 말미암았고, 6·29선언으로 이를 인정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난 것이라고 정리할 수가 있다.
직선제로 당선되었지만 노태우씨는 서울올림픽 때를 제외하고는 영일(寧日)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수많은 도전에 시달렸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불과 두 달 후 치른 4·26 총선에서 여소야대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가 처한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찍부터 체제 불안정에 직면한 노정권은 90년 1월22일 3당 합당을 시도함으로써 반전을 꾀했다. 이로써 여대야소 창출에는 성공했으나, 퇴임할 때까지 그는 당을 장악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민자당을 탈당해 다시 정국 주도권을 국회에 넘겨주었다. 레임 덕 현상을 수용하는 듯한 그의 탈당 조처는 자신도 살고 정치권도 사는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권한을 축소하는 방법으로 살 길을 찾은 노대통령의 조처는 ‘물태우’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행태였다.

문민 정부는 출범 초부터 개혁 의지가 넘쳐 흘렀다. 공직자 재산 공개를 시작으로 사정의 칼을 휘둘렀다. 재임 기간에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한 선언과 청와대의 칼국수 점심은 김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상징했고 국민적 갈채를 받았다.

현재의 상황, 5·6공 말기보다 더 나빠

개혁의 클라이맥스는 군 사조직 척결이었다. 북한 핵 위기가 계속되고 김일성이 사망하는 등 안보 상황이 불분명한데도 김대통령은 과감히 군 개혁에 나섰다. 93년 8월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 역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김영삼 정부는 재벌들과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김영삼씨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기득권층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체제 안정을 바라는 보수 세력들이 서서히 멀어지면서 ‘문민 독재’라는 비판이 나왔다. 문민 정부에서 4성 장군을 지낸 한 인사는 “사정은 결국 전부 썩었다는 느낌을 국민에게 준다. 너무 오래 개혁을 추진하면 국민들은 ‘온통 세상이 썩어빠졌다.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건설을 위한 개혁이라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국민 정서를 파괴한 것이 문민 정부의 개혁이다”라고 평가했다.

문민 정부의 위기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서서히 시작되었다. 경제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한보 사건이 터지고 대기업들까지 동시 다발로 휘청거렸다. 경제가 나빠지자 금융실명제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그래도 전두환씨는 흑자 경제를 만들고 올림픽을 유치해 국민으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게 해 정권을 넘겨줬다. 그런데 개혁에 도취된 문민 정부는 그 좋던 경제와 국민적 자신감을 불과 4년 만에 다 까먹었다”라고 혹평했다.

95년 10월에 터진 노태우 비자금 사건은 정권 핵심부의 의도와 달리 문민 정부의 도덕성을 훼손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노씨 비자금 사건 이후 야당과 언론이 대선 자금을 문제 삼자 김대통령은 5·18 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씨를 잡아넣음으로써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선 자금과 광주항쟁 문제는 애초부터 교환될 성질이 아니었다. 올해 1월7일 연두 회견에서 그는 대선 자금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했고, 5월30일 담화에서는 대선에 막대한 자금이 들었으나 가려내기 어렵다고 말을 바꾸었다. 김대통령의 행태는 남의 과거만 단죄하고 자신의 허물은 밝히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5공 말기는 흑자 무역을 구가하리만큼 경제가 좋았고, 1년 후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었다. 또 전대통령은 군과 경찰 등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6공 말기는 그보다는 사정이 나빴지만 김영삼이라는 확실한 차기 주자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문민 정부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고 여당의 차기 주자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전·노·김 세 대통령은 똑같이 레임 덕을 겪었지만 그 원인은 서로 다르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시절과 같은 방법으로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려다 레임 덕을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노태우 정권의 레임 덕은 뚜렷한 방향성도 없이 5년 내내 흔들리기만 한 것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경제 문제를 도외시하고 사정에 치중하다 민심 이반에 부딪힌 것이 문민 정부이다.

취임 초 국민적 지지가 높았던 문민 정부가 심각한 레임 덕을 맞은 것은, 정권의 정책은 5년 내내 한 방향으로 달릴 수 있지만 국민적 요구는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바뀌는 국민적 요구를 최고 권력자가 따라가지 못할 때, 정권 불안은 순식간에 확대된다. 최근 하야 문제가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정치학자는 “최고 권력자는 독선에 빠져서는 안된다. 다른 세력의 주장과 여러 개의 가치를 동시에 검토하고 추진하는 화합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 전두환씨가 6·29로 국민 요구를 수용했듯이 김영삼 대통령도 화합적인 자세를 보여야 임기 말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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