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도입 의사 결정, 너무 느리다
  • 김당 기자 ()
  • 승인 199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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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도입 의사결정 늑장 부리기 일쑤… 전력화 차질·예산 낭비까지
 
飛虎사업은 30㎜ 대공자주포 사업의 암호명이다. 30㎜ 대공자주포를 국내업체가 양산해 2002년까지 육·공군에 배치하는 무려 1조수천억원 규모의 사업이다. 육사 교장 출신 장준익 전 의원은 지난 14대 국회에서 자신이 국회에 있는 동안 “목숨을 걸고 비호를 막겠다”라고 공언했다. 당시 장의원은 비호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 현지와 일본, 미 2사단 등을 직접 가서 수집한 자료와 국방부가 제출한 국감 자료 등을 토대로 △ROC(군작전 요구 성능) 미달 △무기 획득 절차 무시 등을 내세워 비호를 저지했다. 외국에서 도태되어 가는 대공포를 전력화하는 사업을 뒤늦게 벌이는 것은 막대한 예산 낭비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사업 보류(국방부 전력정비위)와 재검토(국방부 특별감사) 등 난항을 겪고, 말도 많던 비호사업은 장의원이 15대 선거에서 떨어진 탓인지는 몰라도 현재 별다른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대우중공업(차체·포탑 등), LG정밀(레이더), 삼성전자(전자광학 추적기) 등이 참여하는 비호사업의 요체는 유효 사거리 2.5㎞짜리 대공포를 한국형 장갑차에 얹는 것이다. 그러나 비호는 가고 있지만 거기에 돈을 쏟아부어 보아야 북한의 장사정포와 스커드에는 ‘게임’이 안된다는 지적과 자동화 운용 체계의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해 11월 국방예산 심의 상임위에서 비호사업 등 주요 사업은 여야 합의로 국회 승인을 받고 집행하는 조건으로 예산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위 사업을 4∼5월 전력증강위원회를 거쳐 집행하기 직전에 황명수 전 국방위원장의 결재만 받고 사업을 강행했다. 이같은 처사는 국방부가 올해 초에 발표한 ‘방위력 개선사업(율곡사업) 개선방안’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이정린 국방부차관은 당시 방위력 개선사업의 국회 검증제 도입 등을 포함한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조처는 “지난 20여 년간 추진되어 온 방위력 개선사업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일대 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차관은 또 구체적으로 비호사업과 공군 KTX-Ⅱ 사업 등의 진행 과정을 우선적으로 국회에 보고해 검증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론 국방부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국방중기계획(97∼2001)을 언론에 공개한 데 이어 방위력 개선사업 추진 내용에 대한 정례 브리핑을 실시해 오는 등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또 방위력 개선사업 개선방안을 제시한 자체가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선안은 투명성을 강조한 나머지 효율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곧 율곡사업의 비리 그 자체보다는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의미한다.

국방위 임복진 의원(국민회의)에 따르면 가장 큰 문제점은 무기체계 획득 의사결정 기간이 장비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방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연구개발사업의 경우 소요 제기부터 채택까지 평균 11년 7개월이나 걸린다. 이중 실제 연구개발 기간은 6년인 데 비해, 행정 및 의사 결정 소요에 허비되는 시간이 총사업 기간의 48%나 된다. 또 해외 도입(기술도입 생산 및 직구매)의 경우에도 무기 체계 선정부터 채택까지 4년 5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기경보기 사업은 6년 동안 재검토·재결정 반복

그 결과 최근에 국방부가 사업을 확정 발표한 금강·백두 사업 등 정보통신 관련 사업만 보더라도, 임의원에 따르면 △금강·백두 사업은 전력화 목표 시한에 3년이 순연되었고 △조기경보통제기는 89년 무기 체계 선정 이후 6년이 지나도록 기종 결정→재검토→재결정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한 채 아직도 기종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자전 장비는 5년이 순연되어 전력화에 차질을 빚을 뿐만 아니라 잦은 대상 기종 변경과 ROC 변경으로 인해 사업 자체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의사결정 과정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이 전력화에 차질을 빚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예산 낭비의 직접 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하나의 사업 관련 행정 서류가 약 40개 부서의 책상과 책상을 옮겨다니는 동안 새는 예산에 대해서는 챙기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비리로 이어질 구멍이 크다는 뜻이다. 이같은 부조리는 율곡사업 관리 시스템을 설치한 육군보다는 국방부·합참의 율곡사업 관련 부서에서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최근 국방부와 합참이 경전투 헬기(일명 스카우트 헬기)에 대한 소요를 사용자인 육군의 건의를 무시한 채 독단으로 결정한 것도 그같은 부조리 의혹의 한 예이다. 88년부터 야전에 배치된 코브라 헬기의 지원 전력으로 육군이 86년부터 소요 제기한 스카우트 헬기는 10년이 넘도록 기종 결정조차 안되어, 육군이 두 번(95년 11월 및 96년 2월)이나 사업 삭제를 합참에 건의했으나 합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또 이 사업은 장비 성능 면에서도 대상 기종인 이탈리아제 A-109와 독일제 BO-105가 모두 ROC에 미달되고, 사업 타당성 면에서도 지난 1월 육본·국방과학연구소·국방연구원으로부터 타당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임복진 의원은 이 사업이 국방부·합참 의견대로 강행될 경우, 총 36대 확보에 소요되는 예산 약 9백27억원 또한 낭비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임의원은 그런데도 소요군이 원치도 않고 경제성도 없는 기종을 국방부·합참 고위층이 ROC를 수정하면서까지 사업을 강행하는 배경에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덩지가 큰 사업이 대개 그렇듯 방위력 개선사업의 과제 또한 투명성과 효율성의 조화이다. 효율성이 보장되는 시스템이라면 투명성은 절로 커질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비리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구멍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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