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분야] 김추기경 ‘예언적 권위’ 유지
  • 김 당·蘇成玟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5.10.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할 말 하는 성직자’ 높이 평가… 법조는 윤 관, 시민운동은 서경석 1위
한국 천주교 최고 지도자인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민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종교 지도자’로 나타났다. 김추기경의 압도적인 영향력(95.7%)은 지난해보다 10% 가량 커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종교인은 대한불교조계종 송월주 총무원장,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영락교회 한경직 원로 목사 순으로 나타났다.

불교계를 대표한 송원장이 영향력 있는 종교인으로 새로 떠오른 것은 가장 특기할 만한 일이다. 조계종단 관계자들은 송원장이 2위로 떠오른 까닭을 그가 사회 정의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지난해 이른바 4·10 법난과 종단 개혁이라는 산고를 겪은 불교계 처지에서 송원장의 영향력 증대는 고무적인 일로 평가 받을 만하다.

교단이 다양한 개신교의 경우 천주교나 불교에 비해 지도자에 대한 응집도가 낮게 나타나고 있으나 조용기·한경직·문선명·강원룡 목사는 지속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를 응답자 특성 별로 살펴보면, 김추기경은 중소기업인(99%)과 대기업 임원(98%)이 상대적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고, 송원장은 정치인(65%)과 언론인(43%)이 높은 응답률을 보인 것이 이채롭다.

염수정 신부(서울교구 사무차장)는 “추기경의 예언자적 자세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사는 것 같다. 예언이란, 단순히 미래 일을 말한다기보다는 복음 정신에 입각해 현재 맡겨진 일들을 해결하려는 증언의 뜻을 내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추기경이 세인의 마음 속에 폭넓게 자리잡는 까닭은,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이나 검찰의 5·18 불기소처분 같은 사건에서 정부의 결정이 부당하다는 판단이 들 때마다 할 말을 하는 성직자상에 있다는 것이 각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추기경은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영향력 조사에서도 4위(‘3김’을 빼면 1위)로 나타났다.

법조인 중에서 법을 집행하는 데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는 인물을 조사한 결과는 대법원장(45.1%), 검찰총장(31.3%), 법무부장관(15.9%), 헌법재판소장(4.8%), 대한변협 회장(3.6%) 등으로 법조계의 주요 자리가 고르게 분포되었다. 특이한 점은 아무런 ‘보직’이 없는 재야의 이회창 변호사가 3위(16.3%)를 차지한 것이다. 이변호사는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영향력 조사에서도 법조인으로서는 유일하게 10위권에 들었다.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 추월, “검찰 국가” 비아냥도

지난해 조사와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검찰총장의 영향력 확대이다. 지난해 5위(7.1%)였던 검찰총장의 영향력은 올해 2위(31.3%)로 약진했다. 지난해에는 법무부장관(김두희 7.0%)과 비슷했던 검찰총장의 영향력이 올해는 안우만 법무부장관(15.9%)을 크게 앞지른 것도 눈에 띈다. 이같은 결과는,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가 아닌 ‘검찰 국가’라는 세간의 비아냥거림에서 알 수 있듯, 12·12 및 5·18 사건에 대한 불기소처분 결정과 정치인 사정 등에서 나타난 검찰의 막강한 힘을 반증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 결과를 응답자 특성 별로 보면 윤 관·김기수·안우만 씨는 법조인한테서 상대적으로 높은 응답률(68%, 45%, 40%)을 보인 반면 정치 참여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회창 변호사는 정치인들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영향력(28%)을 지목받았다.

언론인에 대한 영향력 집중도는 다른 영역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10위권 안에 <조선일보> MBC KBS 3사가 2명씩,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중앙일보>가 1명씩 들어가 있다. 그중 권근술 <한겨레신문> 회장,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과 유근찬 앵커는 이번 조사에서 새로 등장한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다. 소속 사가 없는 박권상 전 <시사저널> 주필이 지난해(4위)보다는 떨어졌지만 여전히 영향력이 건재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를 응답자 특성 별로 살펴보면, 방우영 회장은 언론인(28%)과 정치인(31%)에게서 상대적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고, 김대중 주필은 법조인(35%)과 언론인(24%)에게서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특기할 만한 것은, 예년에 이어 올해도 <조선일보> 주필과 사주가 순위만 서로 바뀌었을 뿐 나란히 1,2위를 차지함으로써 ‘막강 <조선일보>’의 위력을 과시한 점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조선일보> 사주와 주필의 영향력은 각각 11%, 6%씩 높아졌다.

MBC의 영향력이 지난해에 비해 커진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KBS 사장과 앵커의 영향력 순위는 각각 지난해보다 두 단계씩 떨어진 반면에 MBC 엄기영 앵커(4위)와 강성구 사장(6위)의 순위는 지난해보다 높아졌다. 특히 엄앵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위권에 오른 유일한 앵커이다. 이같은 결과는 경쟁사의 박성범·이윤성(KBS) 맹형규(SBS) 앵커가 올해 모두 여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사 시점을 기준(일부 인사는 당시 현역 언론인이었음)으로 볼 때, 또는 현역이 아니어도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응답한 다른 분야의 조사 결과로 볼 때, 정부·여당이 별로 영향력이 없는 앵커만 뽑아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법하다.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운동 지도자 3인은 서경석 전 경실련 사무총장, 유재현 경실련 사무총장, 최 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으로 나타났다. 경실련의 전·현직 사무총장이 1,2위를 했다는 점이 관심을 끈다.

시민운동 진영, 정치세력화 경향

이를 응답자 특성 별로 살펴보면, 이른바 ‘개혁 신당’ 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서경석 목사(22.4%)는 정치인(43%)과 언론인(37%)에게서 상대적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인 반면 교수 출신 유재현 사무총장(11%)은 교수·학자(21%)와 공무원(19%)에게서 상대적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역시 개혁 신당 참여 의사를 밝힌 최 열 사무총장(9.5%)도 언론인(20%)과 정치인(15%)에게서 비교적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같은 결과는 이들의 정치 참여와 연관지어 볼 때 의미심장하다. 즉, 설문조사 시점이 이들이 정치 참여를 결정하기 전이었고, 일부 인사는 정치 참여를 극구 부인했는데 정치인과 언론인 들이 이들의 영향력을 크게 지목한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이같은 결과는 그간 일부 인사에 대한 ‘언론 다루기에 능하고 정치적 야심이 큰 시민 운동가’라는 관측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함에 따라 그 영향력과 시민운동의 도덕성이 상당히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또 한결같이 세대 교체와 정치 개혁을 주장해온 이들의 정치권 밖에서의 영향력이 정치인으로서의 영향력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이들의 정치 참여 또는 시민운동 진영의 ‘정치세력화’를 둘러싸고 시민운동 단체들이 시기 상조론과 적극 참여론으로 맞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