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과 뚝심으로 ‘빅뱅식 개혁’ 추진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8.05.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빅뱅식 개혁’ 악역 떠맡아…역할·자격 시비 등 맞물려 돌파력에 관심
요즘 정부의 섣부른 구조 조정으로 금융권과 기업들이 애를 먹는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 위원장(58)은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치 못들을 얘기를 들은 사람처럼 짜증을 내지만, 결코 회피하지는 않는다. “언론들이 언제는 한보와 기아 문제를 너무 끌어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더니, 막상 부실 기업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니까 또 제동을 걸고 나선다.”

지난 5월10일 열렸던 국민과의 텔레비전 대화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천명한 이른바 ‘빅뱅식 구조 조정 방침’(5월 안에 퇴출 기업을 정하겠다)에 일제히 비난을 쏟아부은 언론을 겨냥한 말이다. 동시에 언론을 충동질하는 금융·기업계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런 투의 불만은 요즘 김대중 정부에 참여하는 모든 경제 전문가들로부터 듣게 되지만, 금융과 기업 구조 조정의 정부측 창구를 맡고 있는 이위원장의 불만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구조 조정이란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경제 정책이다. 한국의 경제 구조에서 최대 과제로 떠오른 구조 조정이란, 당장은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을 해소하고, 일부 금융기관과 기업의 문을 닫게 하는 일이다. 한 언론인은 이 일을 노르망디 상륙 작전처럼 어렵고 위험한 군사 작전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작전의 선봉에 설 것인가.

누가 하든, 어떤 방식으로 하든 욕을 먹기는 한가지다. 70년대와 80년대에 있었던 부실 기업 정리만 해도 그렇다. 당시의 조처가 훗날 재평가되기도 했지만, 주역들은 줄곧 특혜 시비와 법적 공방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80년대 초 부실 기업 정리를 주도했던 정인용 전 부총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실 기업 처리 얘기만 나오면, 몇 상자는 될 만한 분량의 당시 자료를 놓고 격론을 벌일 준비를 하곤 했다. 누구나 구조 조정에 대해 말은 하면서도, 누구도 함부로 손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구조 조정이라는 말이 경제 정책의 핵심어가 된 김대중 정부에서도 상황은 다를 바 없다. 새 정부 출범과 거의 동시에 벌어진 구조 조정과 실업 대책 우선 순위 논쟁 이후에도, 구조 조정의 속도와 방법을 둘러싸고 숱한 논란이 벌어졌다. 인위적으로 단기간에 해치울 것이냐(빅뱅식 구조 조정), 아니면 시간을 두고 자율적으로 시행할 것이냐. 또 금융기관과 대기업 중에서 어디부터 구조 조정을 할 것이냐 하는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부분적으로 경제팀 간에 손발이 안 맞는 것으로 외부에 비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논란의 흔적은 여러 군데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4월 초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작성한 한 보고서는 ‘대기업 구조 조정을 정부가 주도할 경우 대량 실업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맞는 분석이기는 하지만, 앞뒤를 재는 품으로 보아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금융연구원은 구조 조정 대상의 우선 순위를 둘러싸고 공개적이지만 공허한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 이 문제는, 구조 조정은 단기에 추진하되, 효율적인 금융기관 구조 조정을 위해 기업 구조 조정도 동시에 추진하기로 매듭을 지은 상태이다. 비록 4월 중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세계은행)의 비공식 권고가 일조하기는 했지만,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것은 이헌재 금감위 위원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쳇말로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은행과 기업을) 이런 상태로 계속 끌고가면 정말 큰일 난다. 누군가 욕을 먹더라도 해야만 할 일이다.” 그의 말이다.
“금융과 기업에 관한 한 최고 전문가”

금융과 기업에 대한 확신에 찬 태도는 그의 경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68∼79년 10여 년을 예전의 재무부에서 보냈다. 그는 당시 34세 나이로 국장급 자리에 오를 만큼 재능을 인정받았다. 금융정책과장 시절에는 8·3 사채 동결 조처나 부실 기업 정리처럼 그 후 한국 경제의 모양새를 바꿔 놓은 굵직굵직한 정책을 주도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재무부를 떠난 사연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그 무렵 재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율산그룹과 관련이 있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당시 재무부장관으로 이위원장을 유독 아꼈던 김용환 현 자민련 수석부총재와 연관짓는 시각도 있다. 율산그룹 신선호 회장은 이위원장의 행정고시 동기이자 재무부에 같이 근무하던 신명호 현 주택은행장의 실제(實弟). 또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김종필 총리를 거세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경제 관료 생활을 마치고 나서, 그는 대우그룹에 들어가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그의 대우그룹행은 자신의 상관이던 김용환씨와 절친했던 김우중 회장의 배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85년부터는 기업 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한국신용평가 사장으로 일했으며, 90년대 들어서는 주로 정부의 각종 위원회 위원과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다. 그를 잘 아는 한 경제학 교수는 “관계·기업체·금융기관을 두루 거친 경험 덕에, 그는 금융과 기업에 관한 한 국내에서 가장 정통한 전문가가 됐다”라고 평했다. 이는 이위원장이 97년 대선 때 자신의 경기고 선배인 이회창 진영에 관여했는데도 김대중 정부에서 금감위 초대 위원장에 임명된 배경이다. 더욱이 그는 자민련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기도 하다.
‘아이디어 위주·조직 장악력 문제’ 비판받기도

그가 금융기관과 기업의 자발적 구조 조정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다.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과 일정을 정해 주는 식의 일처리 방식 또한 그런 믿음에서 나온다. 이 점은 종종 언론이나 현 경제팀 일각으로부터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한다. 김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이후 시일이 지나치게 촉박하다는 비판적 여론이 제기되면서 한 달 이상 늦추어졌지만,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 조정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 일정을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일정에 따르면, 은행들은 5월 말까지 회계법인과 외국 전문 컨설팅 기관으로부터 경영 진단을 받는다. 반면 은행은 늦어도 6월 말까지 거래 기업의 부실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부실화 정도를 파악한 후 자체 정상화가 힘들거나 도저히 회생 불가능한 기업은, 은행들이 부채 구조 조정을 해 기업의 구조 조정을 주도한다는 것이 그의 아이디어이다. 이 과정은 은행 처지에서 보자면, 부실 자산 정리 작업이 된다(구체적인 기업 구조 조정 방법에 대해서는 36∼37쪽 딸린 기사 참조). 이 때 은행은 주주와 자신들의 부담 비율을 적절히 정해, 궁극적으로 납세자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되는 공적 자금 투입을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금감위 자체 추정에 따르면, 이 작업에는 81조원이 소요되며, 이 중 절반인 40조원만을 국민 부담으로 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20년 만에 관계로 돌아온 이위원장에게는 다양한 자격 시비가 따라붙는다. 우선 금융기관 구조 조정과 부실 기업 처리 문제를 금감위가 전담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당초 금감위가 설립된 취지는 금융 감독의 독립성을 유지하자는 것이었으므로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는 곤란하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조언하는 한 경제학자의 말이다.

반면 이런 시각이 현 경제팀의 주류를 이루는 이른바 개혁파 경제학자의 질시 어린 시선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헌재 위원장의 한 측근은 “그런 경제학자들은 구조 조정이라는 빛나는 작업을, 자신들이 아닌 외부 인사가 전담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단점이지만, 행동보다는 아이디어나 말이 앞서는 행태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대기업들의 부채 비율을 내년 말까지 200%로 낮추라는 그의 요구는 현 경제팀 내에서조차 다양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급격한 구조 조정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식 시장을 비롯해 금융권이 흔들리자, 당초 퇴출 기업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린 것이 좋은 예다(이위원장은 기업 구조 조정의 목표가 살생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생부를 만드는 것이라고 물러섰다).

금감위 주변에서는 경제 관료로서는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재무부 차관 직을 거치지 않은 데다가 너무 오랫동안 관계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조직 장악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우려하는 소리도 흘러나온다. 은행감독원·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 외에도 신용관리기금을 통합해 만든 이 막강 권부의 부위원장은 흔히 개혁파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윤원배 전 숙명여대 교수이다.

이위원장에게 따라 붙는 이 모든 시빗거리는 정작 구조 조정 대상이 되는 이해 집단의 노골적인 반발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수도 있다. 언론·재벌 기업·금융기관 들은 단기간 구조 조정에서 파생될 갖가지 부작용을 들어 파상 공세를 펼 수도 있다(38쪽 딸린 기사 참조). 이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금융과 기업을 안다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위원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그가 그런 목소리에 익숙해 있다고 했다. 80년대 한국신용평가 사장으로 일할 때 그는 연결 재무제표를 작성하게 해 재계로부터 반발을 산 적이 있다. 특히 당시 재무 구조가 나빴던 대우그룹 관계자들로부터는 ‘대우그룹에 몸 담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원성을 들은 적도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다. 악역으로서는 그야말로 적격 아닌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