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JP 요새에서 YS 특공대 악전고투
  • 대전/청주·崔寧宰 기자 ()
  • 승인 1996.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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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거물들 ‘역전’ 안간힘…자민련 ‘대전·충남 석권’ 장담…충북은 접전
“충청도 사람을 무슨 핫바지쯤으로 알고 있는 YS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이번은 무조건 3번(자민련)이다.” 6·27 지방 선거에서 충청도를 휩쓴 ‘JP 열풍’의 핵심 슬로건이다. 선거에서 그 슬로건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지난 지방 선거는 네 가지 선거를 한꺼번에 치른 선거여서, 유권자들은 난립한 후보자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기 힘들었다. 이를 간파한 자민련의 ‘무조건 3번’ 전략은, 선거 한복판에 뛰어든 DJ의 지역등권론과 맞물려 충청도 민심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로써 JP는 당당히 정치권의 한 축을 차지하며, 또 하나의 지역 정치 세력으로 우뚝 섰다.

이 지역의 올해 총선은, 지역 감정을 최대한 활용해서 ‘충청도 굳히기’에 돌입하려는 자민련과, JP 아성에서 단 몇 석이라도 건지려는 다른 정당의 대립 구도 속에서 치러질 공산이 크다. 벌써 총선 국면으로 접어든 충청 지역 곳곳에서 이런 징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신한국당 “조직 재건하면 해볼 만”

충청 지역에서 어엿한 집권당인 자민련의 선거 전략은 별다른 것이 없다. 자민련 충남지부 선거 책임자 입에서 “결국 ‘핫바지의 본때를 보여주자’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서슴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JP 바람’에 기대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충청도 사람들의 감정을 긁어대는 핫바지론은 정치 논리로는 궁색한 것이지만, 막상 선거 기간에 접어들면 강력하게 작동하리라는 것이 여야를 막론한 이 지역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신한국당 민주계 중진인 황명수 의원(충남 아산)은 물론이고, 심지어 여권이 빅카드로 내세운 홍재형 전 부총리(청주 상당구)도 쉽지 않은 싸움을 치르리라는 전망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신한국당 현역 의원 다수가 ‘그만하면 인물은 괜찮은데, 당 간판이 문제’라는 지역 여론을 의식해서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기지 않겠느냐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천안 갑에서 출마하는 신한국당 성무용 의원은 “명분도 좋지만 당선이 안되면 헛것 아니냐. 지역구에서 나 개인의 인기는 다른 어떤 후보보다 높다고 보지만, 신한국당 간판으로는 어렵다. 자민련으로 당을 옮기라는 구민들의 압력이 대단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물밑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여실히 감지되고 있다. 이는 총선을 앞두고 자민련측은 인물난에 애를 먹고 있는 반면, 다른 당 후보들은 JP 바람에 전전긍긍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즉, 지방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어 기고만장해진 자민련도 내심으로는 ‘여권 성향의 타당 후보’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JP는 대전 동구 갑 조직책 선정을 미루고 있다. 이곳의 신한국당 지구당위원장인 남재두 의원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이다. 남의원은 현재 4선 문턱에 와 있지만, 자민련측의 노골적인 손짓에 마음이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역에서는 남의원이 신한국당 간판으로 나오면 선거에서 떨어진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강창희(대전 중구)·박준병(충북 옥천)·함석재(천안 을) 의원은 충청도의 JP 바람에 이끌려서 진작 말을 갈아탄 경우에 속한다.

물론 충청 지역 총선 결과가 지방 선거 때처럼 자민련 일색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이런 전망은, 지방 선거에서 당시 민자당이 대패한 것은 이 지역 여권 조직이 통째로 자민련으로 이탈하면서 ‘조직 없는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제는 신한국당이 지역구 별로 여당 조직을 복원해 선거를 치를 수 있으므로 그때처럼 판판이 깨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 자민련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관심거리지만, JP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타당 후보들의 ‘이를 악문’ 선전 또한 흥미로운 선거 감상법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JP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YS가 급파한 ‘특공대’의 면면은 벌써부터 지역 언론의 뜨거운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공대 중에서도 대표 선수는 JP의 지역구인 부여에서 출마하는 이진삼 전 육군 참모총장이다. 현역 군인 시절 정치 테러 사건 혐의로 실형을 살고, 상무대 비리 사건에 연루돼 문민 정부에서 감옥살이까지 했던 이씨는 공천 당시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지만, 부여에서 그의 인기는 JP조차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높다.
그는 군에 있을 때부터, 군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수해 복구에 투입하는 등 지역에 남달리 공을 들였다고 한다. 체육청소년부장관 때는 부여 일대에 청소년수련원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씨는 군·관직에 있을 때 자기가 주도한 지역 지원 사업 29개 목록을 만들어 선거에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소속 당이다. 부여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한 운전기사는 “부여 사람들은 이장군이 지역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잘 안다. 존경한다. 그래서 이장군이 저기서 걸어오면 모두 피한다. 당만 아니면 왜 그러겠느냐”고 반문한다.

신한국당은 이밖에도 김홍열 전 해군 참모총장(충남 서천)을 이긍규 자민련 총재 비서실장에게, 최일영 전 공군 소장(충남 보령)을 JP 심복 김용환 의원에게, 그리고 충남 지방 경찰청장으로 근무하던 이완구씨(충남 청양·홍성)를 경찰복을 벗겨가면서까지 조부영 자민련 사무총장에게 맞수로 붙였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역부족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총선에 임하는 이들의 각오는 자못 결연하다. 이들은 군인 출신답게 ‘군사 작전을 하듯’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힌다. 적지에 급파한 특공대들에 본부로부터 가장 먼저 날아온 임무는 무너진 과거 민자당 조직을 완전히 복원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요즘 조직을 복원하느라 여념이 없다. 전쟁을 치르자면 일단 휘하에 ‘훈련된 군사’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도 불리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쟁터의 지형지물(지역 감정)은 방어 태세에 들어간 적군(자민련)에게 절대 유리하다. 게다가 드높은 요새를 공략해야 하는 이들 특공대에게는 언제 불어닥칠지 모를 비바람(JP 열풍)도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 사정 폭이 최대 변수

그래서 이들은 한결같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자며 부하들의 ‘군기’를 잡고 있다. 이들이 부하들에게 하달한 작전은 정공법이다. 집권 여당이기 때문에 화력에서만큼은 자신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신한국당 충남도지부의 한 관계자는 “자민련은 충청도 핫바지론을 들고 나올 것이 분명한데, 우리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막말로 JP가 충청도 지역 발전을 위해서 한 일이 뭐가 있는가. 저쪽이 지역 감정을 들고 나오면 우리는 지역 발전을 선거 쟁점으로 부각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총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직도 변수는 많다. 비자금 사건과 5·18 특별법, 그리고 정치인 사정으로 이어지는 중앙 정치권의 핵폭풍은 이 변방의 정치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JP가 정치 자금 백억 수수설에 시달려온 터여서, 정치인 사정 폭이 어느 선까지 확대되느냐에 따라 현재까지의 총선 구도가 크게 뒤흔들릴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자민련은 JP가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채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도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 사정과 5·18 특별법 제정이 오히려 충청도민에게 ‘야당 탄압’으로 비치는 측면도 있다. 이 지역의 한 언론계 인사는 “비자금 정국을 지나면서 충청도의 지역 감정이 더욱 드세졌다. 자민련 표의 결속력은 예전보다 강해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아직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지금 자민련은 총선에서 충남과 대전을 싹쓸이하고 그 바람을 충북과 청주로까지 확대해 나간다는 꿈을 품고 있다. 자민련 텃밭이라는 충청도에서도 충북은 아직 공략 대상인 것이다. 지방 선거에서 자민련은 충북 도지사를 차지했을 뿐 도의회(전체 40석)에서는 5석밖에 얻지 못했다. 기초단체장에서도 신한국당이 네 군데, 민주당이 두 군데, 무소속이 세 군데를 차지한 반면, 자민련은 고작 두 군데를 차지했다. 지역 여론에 따르면 충북 선거는 자민련과 신한국당이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나머지 두 야당이 한두 석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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